고경(高?, 542-607)은 하북성 경현 출신으로 자는 소현이다. 수문제 양견을 도와 수나라 건국과 천하통일에 지대한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는 북주의 명문 출신으로 부친 고빈은 지방장관인 자사직에 올랐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행동거지가 반듯하며 그릇이 컸다. 17세때 북주의 제왕 우문헌에게 발탁되어 기실 지위에 올랐고 내사상사, 하대부를 역임했다. 양견이 선제의 장인이 되어 대승상의 자리에 오르자 상부상록의 벼슬을 받았다. 위지형이 반란을 일으키자 평장사가 되어 이를 진압했다. 그 공으로 주국의 작위를 받고 상부사마에 임명되었다. 581년 양견이 황실과 조정의 추천을 받아 나어린 정제를 대신해 황제가 되어 수나라를 창건했다. 그는 개국 1등공신이 되고 최고 관직인 상서좌복야 겸 납언에 올랐다. 소위, 양소, 하약필, 한금호 등을 추천해 문제, 양제 시대의 중신이 되도록 배려했다.

양견이 580년 섭정이 되자 경륜과 지략이 뛰어난 고경을 자신의 측근으로 영입하려 하였다. 측근 양혜를 보내 자신의 뜻을 전달하자 양견의 경륜과 영웅적 자질을 높이 사 기꺼이 그의 신하가 되었다. 상주총독 위지형이 양견의 섭정에 반발해 하북성 업성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양견은 위효관과 고경을 파견해 반란을 평정토록 하였다. 581년 양견이 문제가 되자 우경과 함께 내각을 이끌었다. 문제는 수도 장안을 비우게 되면 고경을 남겨 수도를 방위토록 하였다. 그에 대한 황제의 신임이 두터워지자 모함을 하는 자들도 늘어났다. 양견은 “고경은 거울과 같다. 그를 헐뜯는 것은 곧 그를 닦아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울은 닦으면 닦을수록 더 빛나는 법이다”라며 한결같은 신뢰를 과시하였다.

588년 문제는 고경과 강남의 진나라를 토벌할 계획을 논의했다. 고경이 답하기를 “강북은 지역이 추워 밭의 수확이 다소 늦고, 강남은 수전이라 곡식이 일찍 익습니다. 저들이 수확할 시기를 헤아려, 군사와 말을 작은 규모로 징집해 강남을 습격한다고 소문을 내십시오. 저들은 반드시 병력을 주둔시켜 방어할 것이므로 저들의 추수시기를 놓치게 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그 계책을 따르니 진나라가 곤궁해졌다. 양소, 하약필, 고려 등이 다투어 강남 평정 계책을 올렸다. 문제가 고경에게 “내가 백성의 부모가 되어 어찌 옷의 띠와 같은 물줄기 하나에 막혀 강남의 백성들을 구제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589년 수나라는 진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진나라를 멸하는 과정에서 진 후주 진숙보의 후궁 장려화의 목을 베었다. 이 공으로 제국공이 되었다. 그녀를 자신의 비로 삼으려던 문제의 차남 양광은 이일로 고경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고경에 대한 황제의 신임이 더욱 깊어졌다. 고경이 관직을 사양하자 “공은 늘 있는 몸과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했다. 이는 하늘이 내게 주신 것이니 더 이상 긴 말 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수 황실은 문제와 독고황후를 이성(二星)이라고 부를 정도로 황후의 발언권이 강했다. 600년 장남 양용이 정실인 원비를 멀리하고 후궁인 윤씨를 총애하자 독고황후는 “처에 박하고 첩에 관대한” 장남을 폐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고경은 장남을 폐하고 차남을 황태자로 삼는 것은 사직을 불안케 하는 원인이 된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이일로 독고황후와 멀어지게 되었다. 결국 관직에서 파면되었다. 고경이 상처하자 독고황후는 후처를 권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이를 사양했다. 그러나 후일 첩에게서 자식을 보자 독고황후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문제가 후궁 문제로 독고황후와 크게 다투고 궁을 벗어나자 “일개 후궁의 일 때문에 천하의 정사를 파할 수는 없다”고 환궁을 재촉했는데 독고황후를 ‘속 좁은 아녀자’라고 말해 크게 미움을 받게 되었다. 양주총관 왕세적이 죄를 지어 처벌되었는데 고경이 그와 가까워 명마를 선물로 받았다는 모함으로 파직되었다. 607년 양광이 수양제가 되었다. 공신 하약필과 함께 조정을 능멸했다는 이유로 그를 처형하였다. 문제를 도와 천하를 평정한 명신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