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보다 존중될 여성들을 위해”
2024년 11월 23일(토) 15:30 가가
“영화로 여성을 이야기하다” 여성을 위한 영화의 힘
'15회 광주여성영화제' 프로그램팀 스태프의 기록
'15회 광주여성영화제' 프로그램팀 스태프의 기록
“여성의 눈으로 보는 세상, 모두를 위한 축제, 15회 광주여성영화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영화 상영 전마다 이 문구가 영화관에 울려 퍼지며, 한 작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근 ‘15회 광주여성영화제’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일반적으로 15회 차를 맞이하면 영화제 명칭에 ‘제’라는 접두사를 붙이지만, 광주여성영화제는 이 접두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여겨지는 용어를 지양하기 위한 결정으로, 이러한 세심한 배려는 영화제에 참여한 여성, 장애인, 노약자의 노력과 헌신을 반영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영화제를 프로그램팀 스태프의 시각에서 소개한다.
‘made in 광주’ 영화에 대한 취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여성영화제가 시작되기 3달 전쯤, ‘귀니’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귀니’는 호남 지역 방언으로 ‘매력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귄’에서 유래한 단어다. 이 특별한 단어에 호기심을 느끼고, ‘귀니’로 불려보고 싶어 지원을 결심했다.
영화제의 지원 분야는 크게 프로그램팀, 운영팀, 홍보팀으로 나뉘었다. 운영팀은 ‘티켓부스팀’과 ‘행사운영팀’으로 세분화되었고, 홍보팀은 ‘콘텐츠팀’과 ‘굿즈/후원팀’으로 나뉘었다. 그 중 필자는 프로그램팀에 지원해 상영 보조와 GV 기록을 맡았다. 영화 시작 20분 전부터 관객 입장을 돕고, 티켓 확인과 관객 수 집계도 담당했다. 또, 관객들이 영화의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블랙보드를 활용해 영화 정보를 시각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프로그램팀은 관객들의 영화 관람 경험을 더 깊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무엇보다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하며, GV 기록을 통해 감독과 관객 사이의 소통을 남기는 역할도 담당한다. 이러한 세심한 준비는 특히 몸이 불편한 장애인 단체의 관람이나 특정 영화 타깃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 상영에서 더욱 돋보였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취재했던 감독의 작품을 프로그램팀으로서 관람할 기회도 있어, 그 경험은 더욱 의미 깊게 다가왔다.
필자가 GV 기록을 맡은 영화는 여성영화제의 10개 섹션 중 <날선낯선>에 속한 영화 ‘경아의 딸’이었다.
디지털 성폭력을 주제로 한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2019년 한반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N번방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관 한 켠에 마련된 작은 자리에 앉아 영화를 올려다보며, GV 기록을 준비하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직관적으로 살펴봤다.
상영 중 감정에 깊이 몰입해 눈물을 흘리는 관객도 있었고, 얼굴에 분노가 서린 관객도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프로그램팀’ 일원으로서 내 역할이 미미하게 느껴졌으나, 영화 상영과 GV를 거쳐 관객들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감정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순간들을 목격하며 그 역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상영 후에는 여성영화제가 준비한 ‘FOCUS TALK’가 이어졌다. 행사 진행은 N번방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대표가 맡았다. 원 대표는 디지털 성폭력 범죄 피해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이 범죄에 맞선 과정을 소개하며 행사의 문을 열었다. 이어 ‘지인능욕’이라는 용어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관객들의 관심을 이끌어낸 후 자연스럽게 질의응답 시간으로 넘어갔다.
날선낯선의 숨은 의미인 새롭고 날카로운 시선의 영화를 다룬 만큼, 관객들의 질문 또한 예리했다. 한 관객은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법적 대응이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원 대표는 “현재 법적 대응이 미비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다양한 사회적 연대와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또 다른 관객은 “성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라고 물었고, 원 대표는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이, 관객들은 범죄에 대응하는 현실적 방법, 피해자 지원 방안 그리고 법적 제도 개선 등에 대해 질문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날선낯선>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영화를 분류했듯 이번 광주여성영화제는 총 10개의 섹션으로 영화를 편성했다. ▲날선낯선 (새롭고 날카로운 시선의 영화) ▲피어나는 (차별에 맞선 여성들의 희망) ▲선을넘는 (장르를 넘나드는 여성 영화) ▲플래시 아시아 (아시아 여성의 삶을 조명) ▲기억과 기록-되살아나는 목소리 ▲지역여성영화교류전 (여성감독 특별 초청선) ▲메이드 인 광주(광주 기반 영화) ▲귄 당선작 (신진 감독 단편 경쟁작) ▲마스터클래스 ▲리어프리 (화면 해설 삽입 영화) 등이 있다.
이러한 다채로운 프로그램 중에서 특히 주목받았던 폐막작은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였다. 이 작품은 장애인 관객들이 다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영화는 휠체어를 탄 형숙과 그 동료들이 지역사회에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이동하고, 공부하며 일하는 모습을 그렸다. 2년에 걸친 이들의 투쟁을 다뤘지만, 실제 장애인들의 외침과 투쟁은 20년 이상 지속됐다. 이러한 시간적 간극은 관객들에게 더욱 깊은 감동을 안겼다.
김채희 광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의 마지막을 관객들과 함께 영화 제목을 외치며 마무리하고 싶어 폐막작으로 선정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올해 영화 관련 사업 예산이 축소되면서 지역영화제를 개최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다. 광주여성영화제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총 456편의 영화가 제작됐지만 그 중 12편만 상영될 수 있었다. 상영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각 지역 여성영화 기관들의 연대와 응원 덕분이었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힘입어, 여성과 소수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 16회 광주여성영화제도 다시 한 번 ‘카운트 업(COUNT UP)’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사진=정경선 대학생 기자
/정리=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최근 ‘15회 광주여성영화제’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여겨지는 용어를 지양하기 위한 결정으로, 이러한 세심한 배려는 영화제에 참여한 여성, 장애인, 노약자의 노력과 헌신을 반영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영화제를 프로그램팀 스태프의 시각에서 소개한다.
‘made in 광주’ 영화에 대한 취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여성영화제가 시작되기 3달 전쯤, ‘귀니’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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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제 자원활동가 귀니 참가 지원서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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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 금남로점 1관에 위치한 상영관 앞 모습 |
더불어 개인적으로 취재했던 감독의 작품을 프로그램팀으로서 관람할 기회도 있어, 그 경험은 더욱 의미 깊게 다가왔다.
필자가 GV 기록을 맡은 영화는 여성영화제의 10개 섹션 중 <날선낯선>에 속한 영화 ‘경아의 딸’이었다.
디지털 성폭력을 주제로 한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2019년 한반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N번방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관 한 켠에 마련된 작은 자리에 앉아 영화를 올려다보며, GV 기록을 준비하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직관적으로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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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아의 딸’ 스틸컷 <광주여성영화제 홈페이지> |
상영 후에는 여성영화제가 준비한 ‘FOCUS TALK’가 이어졌다. 행사 진행은 N번방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대표가 맡았다. 원 대표는 디지털 성폭력 범죄 피해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이 범죄에 맞선 과정을 소개하며 행사의 문을 열었다. 이어 ‘지인능욕’이라는 용어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관객들의 관심을 이끌어낸 후 자연스럽게 질의응답 시간으로 넘어갔다.
날선낯선의 숨은 의미인 새롭고 날카로운 시선의 영화를 다룬 만큼, 관객들의 질문 또한 예리했다. 한 관객은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법적 대응이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원 대표는 “현재 법적 대응이 미비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다양한 사회적 연대와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또 다른 관객은 “성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라고 물었고, 원 대표는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이, 관객들은 범죄에 대응하는 현실적 방법, 피해자 지원 방안 그리고 법적 제도 개선 등에 대해 질문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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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막작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GV 중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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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딸 질문 요약본 일부 <광주여성영화제 제공> |
김채희 광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의 마지막을 관객들과 함께 영화 제목을 외치며 마무리하고 싶어 폐막작으로 선정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올해 영화 관련 사업 예산이 축소되면서 지역영화제를 개최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다. 광주여성영화제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총 456편의 영화가 제작됐지만 그 중 12편만 상영될 수 있었다. 상영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각 지역 여성영화 기관들의 연대와 응원 덕분이었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힘입어, 여성과 소수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 16회 광주여성영화제도 다시 한 번 ‘카운트 업(COUNT UP)’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사진=정경선 대학생 기자
/정리=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