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엔 오곡밥과 나물 한 상
2026년 02월 22일(일) 19:45
[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건조는 농산물 저장·보관 기술의 극치…풍년과 건강 기원은 덤

/클립아트코리아

농사의 취약점 중 하나는 부패(신선도 저하)다. 농업의 진보는 농작물의 상품성 향상을 위해 이러한 손실을 줄이기 위한 기술의 진보와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그중 생산물을 말리는 것, 건조만큼 일상적인 것도 없을듯하다. 오늘날에야 냉동창고가 흔하고 신선도를 유지하는 다양한 방법이 활용되고 있어 문제가 될 것 없지만 한 세기 전만 해도 농작물의 보관과 저장은 농사의 사활이 달린 중요한 과제였다.

이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이 분야에서 뛰어난 민족이었다. ‘나물의 민족’ 이라는 이름을 가질 정도로 야채를 즐기는 동시에 저장해 오래 먹기 위해 건조하는 방식을 잘 활용해 왔다. 스마트팜의 실시간 데이터 기반 관리 등 최신기술이 적용되는 현재까지도 이 방법이 이어져 오고 있어서다. 농사짓거나 야생에서 채취한 것을 말린 나물인데 건조 방법도 자연 친화적이고, 겨우내 그 쓰임새 또한 다양해 놀라울 정도다.

이런 지혜는 우리 조상들의 세시풍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월 대보름날에 오곡밥과 함께 묵은 나물을 먹는 절식이다. 정월 대보름에 오곡밥을 나눠 먹는 것은 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

오곡밥은 이름 그대로 찹쌀, 팥, 수수, 차조, 콩 등 다섯 가지 곡식을 넣어 지은 밥이다. 재료 모두 추수해서 잘 보관했던 것들이다. 풍작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어 귀한 찹쌀도 더했다.

찹쌀에는 아밀로펙틴이라는 전분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끈적한 촉감을 갖고 있다. 곡류 중 크기가 가장 작은 조에는 칼슘과 비타민 B군이 풍부하며 소화율 매우 높다. 수수 안쪽에 있는 전분은 한국인 기호에 맞는 맛이고, 콩은 식물성 식품이지만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 불리듯이 단백질이 풍부하다. 오늘날에도 농촌진흥청이 오곡밥을 작은 주먹밥으로 만들어 구운 가지와 호박을 올린 음식인 ‘가가호호(가지·호박) 오곡 한입 주먹밥‘ 요리법을 공유할 정도다.

건조의 진수는 역시 겨울 묵은 나물인 ‘묵나물’이다. 농가월령가에는 “묵은 산채 삶아 내니 육미와 바꿀쏘냐”라고 노래했고, 동국세시기에는 묵은 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기록돼 있다. 묵나물의 기원은 우리 조상이 채소를 먹기 시작할 때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묵나물은 제철에 채취해 말려 놓았다가 이듬해 먹는 것으로 햇살과 바람이 만들어낸 식재료다.

묵나물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박과 버섯, 호박, 무, 고구마 순, 고사리, 취나물, 가지 등을 말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원도처럼 산이 많은 곳에서는 취나물을,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는 모자반 같은 해초를 말려 두었다가 나물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묵나물은 색깔이 어둡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나물은 삶아 햇빛에 천천히 말리면 어두운색으로 변한다. 그러면 검은색에 풍부한 색소인 안토시아닌이 생성된다. 안토시아닌은 동맥에 침전물이 생기는 것을 막아 피를 맑게 하고 심장 질환과 뇌졸중 위험을 줄여준다고 한다.

농업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 특히 저장·보관 방법의 개선에 따라 신선식품이 주목을 받는 등 우리 식문화가 급변하고 있다. 신선한 채소가 사철 나기에 말리고 찔 필요가 없어진 편리한 시대가 됐다. 하지만 오래 두고 먹기 위해 말리고 저장해 부족할 때를 대비했던 우리 선조의 지혜만은 이어가야 하는 소중한 가치이다. 다가오는 대보름에 달맞이와 함께 오곡밥에 나물 한 상 어떤가. /big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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