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겨울의 끝자락, 느리게 걷는 남도
2026년 02월 12일(목) 17:25 가가
겨울의 끝자락, 남도는 속도를 늦추며 걷기 좋은 풍경을 내어준다. 산과 바다를 잇는 능선길, 철새가 머무는 습지, 강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와 차밭 사이의 오솔길 위에서 겨울의 마지막 장면을 만나본다.
◇산과 바다가 맞닿는 길, 해남 달마고도
달마고도 능선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인다. 능선을 경계로 산과 바다가 선명하게 갈라지고 발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진다. 걷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에 감동이 몰려온다.
달마산 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달마고도는 해남 미황사를 출발해 큰바람재, 몰고리재, 도솔암과 너덜겅을 거쳐 산 능선을 걷는 17.74km의 둘레길이다.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기획해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을 주제로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7년 11월 개통됐다.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낫 곡괭이 지게 등 순수 인력으로만 길을 만들어 자연경관의 훼손을 최소화한 명품 수제길로 알려져 있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동시에 바다를 내려다보는 길, 달마고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능선에 오르면 남해의 섬들이 겹겹이 펼쳐지고 맑은 날에는 들녘과 바다, 산의 윤곽이 한 눈에 담긴다.
전체적으로 완만한 흙길과 돌길이 섞여 있지만 구간에 따라 체력 소모가 큰 구간도 있다. 특히 도솔암으로 향하는 구간은 바위 능선과 경사진 길이 이어져 걷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전날 내린 눈이 바위틈과 능선에 남아 있어 겨울 산 특유의 긴장감이 더해진다. 겨울철에는 미끄럼을 대비한 등산화와 방풍 외투는 필수다.
달마고도의 매력은 ‘천천히’ 걷는 길이라는 점이다. 트레킹이 목적이 아닌 ‘하루를 내어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길 곳곳에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지점이 많다. 도솔암 인근에서는 길이 가장 드라마틱해진다. 암릉 사이로 이어지는 길은 달마산의 지형을 그대로 드러내며 자연스럽게 발걸음과 시선을 멈추게 한다.
달마고도는 제1코스 출가길(미황사~큰바람재), 제2코스 수행길(큰바람재~노지랑골 사거리), 제3코스 고행길(노지랑골 사거리~몰고리재), 제4코스 해탈길(몰고리재~미황사)로 나뉜다. 전체 구간을 모두 걷기 부담스럽다면 미황사에서 도솔암 인근까지만 오르는 코스도 충분하다.
◇겨울이 깊어지는 곳, 순천만 습지
순천만 습지의 한적한 탐조대에 잠시 멈춰 섰다. 마침 먹이주는 날과 일정이 겹쳐 흑두루미와 청둥오리, 가창오리, 저어새까지 수천 마리의 겨울철새들을 20m 남짓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한번 먹이주는 날을 정했으나 올해 순천만 습지를 찾은 철새들의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일주일에 두 번으로 늘었다.
한동안 먹이에 집중하던 흑두루미 무리 가운데 몇 마리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곧 무리는 미묘하게 방향을 바꾸며 조심스레 자리를 옮긴다. 바로 옆에서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진다. 시선을 돌리자 독수리 여러 마리가 한데 엉켜 있고 순간 허공에 흩날리는 깃털을 본 것 같다. 탐조객들 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하늘에서는 또 다른 독수리 한 마리가 다음 타깃을 찾는 듯 원을 그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자연의 질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 순천만 습지의 겨울 풍경이다.
순천만의 겨울은 특히 ‘본래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계절이다. 매년 수천 마리의 철새가 순천만을 찾고 그중 흑두루미는 이곳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나무 데크로 이어진 갈대숲탐방로는 습지를 가로지르듯 이어져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속도가 느려지고 머리 위로 무리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겨울철 순천만 탐방은 비교적 한적하다. 람사르길 1코스-무진교-갈대숲탐방로-순천만 자연생태관으로 이어지는 도보 1시간 코스와 순천만 자연생태관-무진교-갈대숲 탐방로-용산전망대-갈대숲 탐방로로 이어지는 2시간 코스를 선택해 걸을 수 있다.
◇강 따라 흐르는 일상, 순천 동천수변공원
겨울이지만 햇살은 부드럽고 강변 산책로에는 각자의 속도로 걷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며 걷는 노부부, 반려견과 나란히 발을 맞추는 사람, 가볍게 러닝을 즐기는 시민들까지. 이들의 얼굴에는 공통적으로 여유가 묻어 있었다. 동천을 일상처럼 품고 사는 이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순천의 ‘젖줄’이라 불리는 동천은 생태도시 순천을 떠받치는 핵심 공간이자 시민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장소다. 강을 따라 산책로와 잔디밭, 이팝나무 산책길, 둑방 벚꽃길이 이어진다. 동천의 매력은 ‘사계절을 품은 길’이라는 점에 있다. 겨울의 낭만에 빠져들면서도 봄이 되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동천 산책의 또 다른 포인트는 출렁다리를 건너 만나는 오천그린광장과 그린 아일랜드다. 저류지 기능을 하던 공간을 도심공원으로 바꾼 곳으로 넓게 뻗어있는 잔디밭과 맨발로 걷는 어싱길, 바닥 분수 등이 매력적인 곳이다.
무엇보다 이 공간은 국내 최초 ‘도로정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은 잔디가 깔린 넓은 광장이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차량이 오가던 도로였다. 순천시가 시민들에게 강을 더 가까이 돌려주기 위해 순천만국가정원과 오천그린광장을 연결하던 남승룡로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잔디길을 조성했다.
동천 산책의 가장 큰 장점은 별도의 입장료나 절차 없이 언제든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원처럼 열린 공간이라 생각날 때 가볍게 들어와 걷고, 잠시 머물다 돌아가도 부담이 없다. 특별한 목적 없이도 답답한 마음을 식히기 좋은 곳이라는 점에서 동천은 ‘관광지’라기보다 순천 시민들의 일상에 가까운 공간이다.
◇차밭 사이로 겨울 낭만, 보성 옛 차밭길
보성의 겨울은 차밭 사이로 걸어 들어갈수록 더 깊어진다. 보성 녹차밭은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대한다원 외에도 조용히 걸으며 차밭의 결을 느낄 수 있는 산책로들이 곳곳에 이어져 있다. 그중 하나가 봇재에서 영천저수지까지 이어지는 옛 차밭길이다.
봇재~영천저수지 둘레길은 5km,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한 산책 코스다. 길은 녹차밭 능선을 따라 이어지다 수변 데크길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겨울의 차밭은 연둣빛 대신 차분한 색을 입고 있지만 계단식으로 겹겹이 펼쳐진 풍경은 오히려 차밭의 굴곡과 흐름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시야가 트인 구간에서는 영천저수지의 수면과 멀리 제암산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둘레길을 걷기가 다소 부담스럽다면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대한다원에서 율포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무료로 조망할 수 있는 차밭 전망대와 ‘초록잎 다원’이 자리하고 있다. 차를 주차하고 전망대에 서면 부채처럼 펼쳐진 차밭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이고, 계단식 녹차밭 사이로 세워진 이국적인 풍차가 차분한 풍경에 작은 포인트가 된다. 초록잎 다원은 유기농산물 인증과 국제유기인증을 받은 다원으로, 겨울에도 단정하게 정돈된 차밭의 모습이 돋보인다.
전망대 아래쪽으로는 ‘녹차밭 생태탐방로’가 이어진다. 판소리 성지와 영천저수지, 녹차밭으로 향하는 표지판을 따라 흙길이 이어지며, 사람의 손길이 덜한 풍경 속을 걷게 된다. 저수지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볍게 차밭 사이를 거닐 수 있다.
한국차박물관 옆에 자리한 한국차문화공원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한국차와 서편제 보성소리를 주제로 한 이 공간은 누구나 무료로 들어갈 수 있으며 다원과 식물원, 활성산 삼림욕장이 이어져 가벼운 자연 트레킹 코스로 좋다.
/글=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산과 바다가 맞닿는 길, 해남 달마고도
달마산 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달마고도는 해남 미황사를 출발해 큰바람재, 몰고리재, 도솔암과 너덜겅을 거쳐 산 능선을 걷는 17.74km의 둘레길이다.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기획해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을 주제로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7년 11월 개통됐다.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낫 곡괭이 지게 등 순수 인력으로만 길을 만들어 자연경관의 훼손을 최소화한 명품 수제길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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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마산 문바위에 올라선 순간, 능선 아래로 들녘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최현배 기자 |
달마고도의 매력은 ‘천천히’ 걷는 길이라는 점이다. 트레킹이 목적이 아닌 ‘하루를 내어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길 곳곳에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지점이 많다. 도솔암 인근에서는 길이 가장 드라마틱해진다. 암릉 사이로 이어지는 길은 달마산의 지형을 그대로 드러내며 자연스럽게 발걸음과 시선을 멈추게 한다.
달마고도는 제1코스 출가길(미황사~큰바람재), 제2코스 수행길(큰바람재~노지랑골 사거리), 제3코스 고행길(노지랑골 사거리~몰고리재), 제4코스 해탈길(몰고리재~미황사)로 나뉜다. 전체 구간을 모두 걷기 부담스럽다면 미황사에서 도솔암 인근까지만 오르는 코스도 충분하다.
◇겨울이 깊어지는 곳, 순천만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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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만 습지에서 먹이활동에 집중한 흑두루미들. /최현배 기자 |
한동안 먹이에 집중하던 흑두루미 무리 가운데 몇 마리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곧 무리는 미묘하게 방향을 바꾸며 조심스레 자리를 옮긴다. 바로 옆에서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진다. 시선을 돌리자 독수리 여러 마리가 한데 엉켜 있고 순간 허공에 흩날리는 깃털을 본 것 같다. 탐조객들 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하늘에서는 또 다른 독수리 한 마리가 다음 타깃을 찾는 듯 원을 그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자연의 질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 순천만 습지의 겨울 풍경이다.
순천만의 겨울은 특히 ‘본래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계절이다. 매년 수천 마리의 철새가 순천만을 찾고 그중 흑두루미는 이곳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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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순천만 습지. 잎을 떨군 갈대밭 사이로 탐방로가 이어진다. /최현배 기자 |
겨울철 순천만 탐방은 비교적 한적하다. 람사르길 1코스-무진교-갈대숲탐방로-순천만 자연생태관으로 이어지는 도보 1시간 코스와 순천만 자연생태관-무진교-갈대숲 탐방로-용산전망대-갈대숲 탐방로로 이어지는 2시간 코스를 선택해 걸을 수 있다.
◇강 따라 흐르는 일상, 순천 동천수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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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천을 따라 이어지는 강변 산책로. 걷는 사람과 흐르는 물, 고요한 풍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최현배 기자 |
순천의 ‘젖줄’이라 불리는 동천은 생태도시 순천을 떠받치는 핵심 공간이자 시민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장소다. 강을 따라 산책로와 잔디밭, 이팝나무 산책길, 둑방 벚꽃길이 이어진다. 동천의 매력은 ‘사계절을 품은 길’이라는 점에 있다. 겨울의 낭만에 빠져들면서도 봄이 되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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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천 산책로와 맞물린 오천그린광장. 머물고 쉬는 풍경이 일상처럼 이어진다. /최현배 기자 |
무엇보다 이 공간은 국내 최초 ‘도로정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은 잔디가 깔린 넓은 광장이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차량이 오가던 도로였다. 순천시가 시민들에게 강을 더 가까이 돌려주기 위해 순천만국가정원과 오천그린광장을 연결하던 남승룡로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잔디길을 조성했다.
동천 산책의 가장 큰 장점은 별도의 입장료나 절차 없이 언제든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원처럼 열린 공간이라 생각날 때 가볍게 들어와 걷고, 잠시 머물다 돌아가도 부담이 없다. 특별한 목적 없이도 답답한 마음을 식히기 좋은 곳이라는 점에서 동천은 ‘관광지’라기보다 순천 시민들의 일상에 가까운 공간이다.
◇차밭 사이로 겨울 낭만, 보성 옛 차밭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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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식 녹차밭 사이로 탐방로가 이어진다. 그 너머로 영천저수지의 수면과 제암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현배 기자 |
봇재~영천저수지 둘레길은 5km,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한 산책 코스다. 길은 녹차밭 능선을 따라 이어지다 수변 데크길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겨울의 차밭은 연둣빛 대신 차분한 색을 입고 있지만 계단식으로 겹겹이 펼쳐진 풍경은 오히려 차밭의 굴곡과 흐름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시야가 트인 구간에서는 영천저수지의 수면과 멀리 제암산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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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밭 풍경 속에 놓인 빨간 풍차. 차분한 겨울 차밭 사이에 작은 포인트가 된다. /최현배 기자 |
전망대 아래쪽으로는 ‘녹차밭 생태탐방로’가 이어진다. 판소리 성지와 영천저수지, 녹차밭으로 향하는 표지판을 따라 흙길이 이어지며, 사람의 손길이 덜한 풍경 속을 걷게 된다. 저수지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볍게 차밭 사이를 거닐 수 있다.
한국차박물관 옆에 자리한 한국차문화공원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한국차와 서편제 보성소리를 주제로 한 이 공간은 누구나 무료로 들어갈 수 있으며 다원과 식물원, 활성산 삼림욕장이 이어져 가벼운 자연 트레킹 코스로 좋다.
/글=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