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입고 힙해진 ‘남도 전통주’ 술이 술~술~
2024년 11월 11일(월) 20:40
[굿모닝 예향-우리 술의 매력에 빠지다]
유자·매실 등 전남 특산품 활용…다양한 막걸리·증류주 출시
젊은 남도 양조인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로 MZ세대 입맛 저격
청년 양조장 ‘월광주조’ 광주 최초 지역 특산주 개발
수제 막걸리 만들기·예술가 지원 등 다양한 문화·축제 진행
전통주 비중 1%대…온라인 쇼핑몰 판매 등 시장 확대 나서
전통주 제조·유통시장 보호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 절실해

새로운 감각의 우리 술 ‘이제’(페어리플레이)

남도 전통주, 현대적 술의 진화

쌀과 누룩, 물. 예로부터 전통주는 3가지 재료만으로 술을 빚어왔다. 발효와 증류 과정을 거치며 막걸리(탁주)에서 청주(약주), 증류주로 다양화된다. 지역 특산물과 현대적 감성을 가미한 새로운 감각의 우리술에 인생을 건 청년 양조인들의 술 이야기를 듣는다.

지난 10월 18~20읽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4 광주 주류관광 페스타’.
◇‘광주 주류관광 페스타’, 다양한 우리 술 선보여= =“매우 독특하고 마시기 쉽고, 달콤한 아이스티 같은 맛, 낮은 알코올 맛.(Very unique easy to drink, tastes like a sweet iced tea, low alcohol flaver)”

지난 10월 18~20일 광주시 서구 김대중컨벤션 센터 다목적 홀에서 열린 ‘2024 광주 주류 관광페스타’. 행사 둘째 날 메인무대에 마련된 ‘외국인을 위한 전통주 시음회’에 참가한 30여 명의 젊은 유학생들은 와인과 증류주 등 양조장 5개소에서 빚은 6종의 우리 술을 맛본 후 다양한 시음 후기를 남겼다. 시음회에 제공된 와인과 증류주의 알코올 도수는 6종류(5도, 12도, 15도, 17도, 24도, 40도)였다. 광주광역시관광공사와 글로벌비즈마켓(주)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광주, 전남·북을 비롯한 전국에서 양조장과 와이너리, 브루어리 등 50여개 업체가 참여해 1000여 종의 주류를 선보였다.

전통주와 우리 술이 현대적이고, 젊은 감각으로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전통주의 맥(脈)은 명인들에 의해 이어지는 한편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과 특산물을 이용해 새로운 우리 술들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년 양조인들은 풍미있는 술을 빚기 위해 전통 소줏고리대신 상압 증류기를, 항아리에서 오크통 숙성 등 현대적인 공정으로 업그레이드했다. 행사장 부스마다 우리 술을 빚는 젊은 남도 양조인들의 자긍심과 도전의식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술을 즐기는 MZ세대가 전통주와 우리 술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K-컬쳐’와 ‘K-푸드’의 글로벌 인기에 힘입어 남도 전통주와 우리 술 또한 세계무대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계기다.

‘장보고의 꿈’(고금 주조장) .
◇ 비파·매실 등과 어우러지는 우리 술 =“쌀+물+누룩으로 지극정성 빚습니다.” 행사장내 완도 고금주조장 부스에 걸려있는 문구가 눈에 띈다. 배준현·류은주 부부가 2대째 가업으로 운영하는 고금주조장은 완도 특산물인 비파와 유자, 황칠을 재료로 사용해 ‘완도 유자막걸리’(6도)와 ‘황칠 막걸리’(9도), ‘비파 14’, ‘비파 20’, ‘황칠약주’, ‘황칠 증류주’ 등을 생산한다. 이 가운데 ‘황칠약주’는 조선비즈가 제정한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우리술·약주/청주·전통주류 부문)을 수상했다.

류 대표는 유기농 통밀을 빻아 손수 누룩을 띄우고 완도산 쌀과 유자·황칠·비자를 이용해 고금주조장만의 술을 빚는다. 누룩을 사오지 않고 직접 띄우는 까닭은 ‘내 누룩’이 있어야 ‘내 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씨앗 술을 하고 고두밥으로 밑술을 짓는다. 씨앗술은 젖산이나 잡균이 들어왔을 때 그런 균들을 잡아줘 술이 안정적으로 가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밑술에는 누룩도 들어가지만 씨앗술을 같이 해주면 산패(酸敗)되거나 술이 실패하는 확률이 줄어든다고 한다. 발효가 끝나면 덧술을 두 번 더해 세 번 빚는 술로 마무리한다. 삼양주(三釀酒)이다. 류은주 대표는 우리술을 빚을 때 ‘진정성’을 가장 중시한다고 말한다.

“양조인들이 소신을 가지고 진심으로 술을 빚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뭘 첨가해놓고 첨가하지 않았다, 효모를 써놓고 누룩을 했다 이런 것은 눈속임이거든요. 진심을 다해서 빚으면 드신 분들은 다 아시거든요.”

또한 세계 최초의 오미자 와이너리로 널리 알려진 농업회사법인 (주)제이엘 오미나라는 광양산 매실을 이용한 새로운 매실 증류주를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종기 대표는 경북 문경 특산물인 오미자를 재료로 한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 연(緣·8도)과 결(結·12도), 사과 증류주 ‘문경바람’(25·40도)·‘고운달’(52도)을 히트시킨데 이어 광양 매실을 이용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연구결과 기존 청매실을 소주에 넣어 침출시킨 과일주와 다른 새로운 개념의 매실 발효증류주를 선보였다. 그동안 매실은 당분이 적고 신맛이 강해 발효주 재료로 사용할 수 없었다. 자회사인 농업회사법인 (주)섬진강의 봄에서 출시한 ‘섬진강 바람’(40도)은 황매실과 배 등을 합쳐 발효시킨 뒤 증류한 원액을 6개월 동안 오크통과 항아리에서 숙성시킨 매실 증류주이다.

◇청년 양조인들의 도전…젊어진 우리 술= “포도로 만드는 게 와인(Wine)인 것처럼 배로 만드는 술이 페리(Perry)입니다. 나주 배로 만드는 술과의 인연은 운명적인 것 같습니다.”

(주)페어리플레이 이송미 대표는 나주배를 사용해 만든 과실주 ‘이제’를 생산하는 30대 청년 양조인이다. 배꽃(梨花)을 상징으로 내세운 대학병원에서 태어나고, 배 주산지인 나주가 외가인 이 대표는 배술과의 인연을 운명이라 해석한다.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 중에 우연하게 전통주 클래스 수업을 들은 후 ‘취미인 술을 가지고 재미있는 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고교 친구와 함께 창업했다. 창업 당시 ‘양조와 예술로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국내 최초 페리 전문 브루랩’을 모토로 내세웠다. 지난 2022년 11월 정식 출시한 ‘이제: 배로 만들다’는 나주에서 생산되는 황금배와 추황배 등을 블랜딩해 만드는 스위트 스파클링 페리(배술·5도)이다. 창업 3년차인 올해 초 서울 성수동에서 나주 죽림동으로 본사와 생산 공장을 옮겼다. 그리고 ‘2024 남도 우리술 품평회’에 ‘이제’를 출품해 최우수상(기타 주류 부문)을 수상했다. 연말에는 새로운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월광주’(월광주조).
그동안 광주는 ‘맛의 고장’으로 불렸지만 정작 광주를 대표하는 특산주는 없었다. 청년 양조장 월광주조(대표 정인선)가 지난해 전통주를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광주 최초 지역 특산주를 선보였다. 13도 프리미엄 막걸리 ‘달막’과 22도·42도 증류식 소주 ‘월광주’(月光州)이다. 광주산 쌀을 원재료로 하고 무(無)감미료·무(無)첨가물을 기본 원칙으로 세웠다. 또한 월광주조는 ‘세상 모든 예술가를 위한 양조장’을 표방한다. 매주 수제 막걸리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아트막 클래스)를 열고, 매월 ‘월광주조 예술가’(달+아티스트=달티스트)를 찾아 지원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등 막걸리를 매개로 한 새로운 문화 창조에도 발 벗고 나섰다.

◇MZ세대, 전통주에 매료돼=지역 특산물을 사용해 자신만의 새로운 ‘우리 술’을 만드는 젊은 양조인들과 부스마다 장사진을 이룬 MZ 세대. 이번 행사장에서 전통주와 우리 술을 대하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트렌드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탁재형 EBS PD는 지난 2022년 펴낸 ‘우리술 익스프레스’(EBS 북스)에서 2020년대 이후 불어온 우리술 열풍중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성장과정에서 타국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이나 선망을 느끼지 않고 자라난) MZ 세대가 가지고 있는 문화자신감’을 꼽는다.

그럼에도 전체 술 시장에서 전통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대에 불과하다. 이에 정부는 전통주 제조와 유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정책 아이디어를 적용하고 있다. 나주 다도참주가 등 전통주를 빚는 지역 양조장과 소비자를 연계시키는 ‘찾아가는 양조장’ 프로그램도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2017년 민속주와 지역특산주의 온라인 쇼핑몰 판매가 허용되며 온라인 전통주 시장 또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집에서 술을 정기적으로 배달시켜 마시는 ‘전통주 구독경제’라는 새로운 사업영역도 창출됐다. 당시 트렌드로 자리 잡은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과 ‘혼술’(혼자 마시는 술)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이 전통주 업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전통주 산업 활성화를 위해 막걸리에 제조 원료로 향료와 색소 첨가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에 대해 전통주를 빚는 양조인들은 “향료와 색소를 사용해 생산한 술을 해외에 우리 전통주라고 수출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우리가 힘들게 전통주를 살려놓았는데 향이나 색소를 넣게 되면 소비자들을 실망시켜서 전통주 시장이 죽어버릴 수가 있다”고 반발한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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