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태후(馮太后, 442-490)는 5호16국의 하나인 북연의 풍씨가문 출신이다. 북위 문성제 탁발준의 황후로 발탁되어 문성제 사후 헌문제를 폐위시키고 나어린 탁발굉을 효문제로 등극시키는 등 북위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그녀는 북위 궁중의 후궁으로 들어가 태무제의 손자인 탁발준의 황후가 되었다. 그녀의 부친 풍랑은 진주 옹주의 자사를 역임한 귀족으로 하북성 신도 출신이다. 어머니는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 출신으로 교양이 매우 높은 여성이었다고 한다. 환관 종애가 태무제를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경호장군 유니가 하원과 모의해 종애를 주살하고 황손 탁발준을 옹립하니 문성제다. 문성제는 14년 재위하고 465년 26세로 죽었다. 선비족의 관습대로 사흘만에 화장의식이 거행되었는데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중 풍황후가 남편을 뒤따르려고 불길에 뛰어들었다. 남편이 일찍 죽자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해 나온 돌발 행동이었다. 한마디로 열부(烈婦)였다. “새 황제를 도와 사직을 지켜야 한다”는 조정 대신과 황실 어른의 충고에 죽기로 한 마음을 접었다. 북위 궁중법도에는 자귀모사(自貴母死)라는 제도가 있었다. 자신이 낳은 아들이 황제가 되면 생모를 죽이는 고약한 제도였다. 이 제도는 1대 도무제부터 7대 선무제까지 계속 시행되었다. 문성제를 계승할 헌문제를 낳은 이귀인은 법에 따라 죽고 풍태후는 황태후가 되어 권세를 휘두르게 되었다.

헌문제 치세 초기 재상 을혼의 전횡이 심했다. 반대하는 신하들을 독살하는 등 전횡을 해 사직을 위기에 빠트렸다. 466년 역모를 꾀한 을호 세력을 처단하고 정치 일선에 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이어 헌문제를 폐위하고 살해하였다. 헌문제의 아들 탁발굉이 5세에 즉위하니 효문제다. 그녀의 본격적인 수렴청정이 시작되었다.

나어린 황제가 즉위해 정정이 불안한 상황에서 그녀의 존재는 황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만기는 친히 열람했다”는 말이 사서에 기록돼 있듯이 국정을 직접 관장했다. 풍태후 시대 실시된 대표적 개혁조치가 ‘균전제(均田制)’와 ‘삼장제(三長制)’다. 균전제는 호족의 토지 겸병을 억제하고 농민들에게 경작된 토지를 주어 민생을 안정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다. 균전이란 말에서 빈부격차를 해소하려는 의지가 옅보인다. 한인관료 이안세의 상소를 수용한 것이다. 15세 이상의 남녀에게 노전(露田), 마전(麻田) 등의 경작지와 택지를 지급하고 70세에 국가에 반납도록 하였다. 상전(桑田)은 영업전으로 사유가 인정되었다.

삼장제는 호적을 분명히 하기 위한 반상회와 비슷한 조직이다. 5가(五家)는 1린(隣), 5린은 1리(里), 5리는 1당(黨)으로 하는 인보조직으로 인장, 리장, 당장은 임명하여 삼장으로 불렸다. 유민을 최소화 하고 균전제를 실효성 있게 시행하기 위한 제도개혁이었다. 삼장제를 건의한 이충은 “이제 부역에도 골고루 나가게 되고 조세도 적게 바치게 되면 삼장제의 단맛을 알고 백성들이 다 호응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두 제도의 실시로 북위의 농업 생산이 늘어나고 민생이 빠르게 안정되어 효문제 연간의 선정이 실현될 수 있었다. 풍태후의 리더십이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운 개혁으로 볼 수 있다. 호족들의 토지 겸병으로 수도 평성을 중심으로 많은 빈곤층이 생겨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었다. 균전제와 삼장제는 자작농을 육성하고 농촌의 경제질서를 안정시켜 국가재정을 충실히 하고 북위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풍태후 치세 후반들어 최호의 국사사건으로 위축된 한인관료가 서서히 부활했다. 균전제와 삼장제의 실시, 강력한 한화정책 실시 등이 가능케 된 것도 실무능력을 갖춘 한인관료들의 힘이 커졌기 때문이다. 490년 풍태후가 죽고 강남은 유송에서 남제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북위의 문명화(文明化)가 풍태후 사후 친정에 나선 효문제의 치국이념이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수도의 남방 천도로 이어졌다. 풍태후 이래 국력이 충실해진 것이 낙양 천도를 촉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풍태후의 섭정은 북위에 커다란 은혜를 베푼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