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崔浩, ?∼450)는 북위 태무제 때의 중신으로 북위가 하북을 통일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북위의 역사를 편찬한 국사사건에 연루되어 주살되었다.

그는 청하 최씨의 후손이다. 북위에서는 8대 선비가문이 최고 명문으로 인정되었다. 호한(胡漢) 연합정권인 북위에서 청하 최씨 등이 4대 한인 가문으로 존중받았다. 부친인 최굉은 창업군주인 도무제를 보좌해 적극적인 한화정책(漢化政策)을 추진했다.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쓰게 하는 등 한족의 풍습을 받아들이도록 자문했다. 그는 일찍부터 정가에 두각을 나타냈다. 3대 황제 태무제를 도와 하북 통일에 주력했다. 424년 외몽골의 유역 공략을 시작으로 431년 관중 지역을 장악하고 북량·북연을 멸하여 439년 하북 통일의 대사업을 성공리에 완수했다. 2대 명원제에서 태무제 치세까지 북위의 주요 정책은 거의 그의 뜻에 따라 결정되었다.

전승을 기념하는 한 궁중 연회에서 태무제는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고 한다. “이 사람을 잘 보라. 나긋나긋하고 매우 가냘프다. 활도 쓸 줄 모르고 방패도 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슴 속에는 대군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 감추어져 있다. 내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 사람이 나를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명실공히 태무제의 장량이요 왕맹이었다. 부친 최굉은 도무제때 8원훈의 한명이었고 그는 삼대에 걸친 명신으로 삼조원로(三朝元老)로 불리었다.

그에게는 시기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남을 무시하는 교만한 태도를 곧잘 연출했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잡고 있는 선비족에게는 조심스런 자세를 유지했고 황제 앞에서는 극도로 처신에 조심했다. 글을 잘 쓴 관계로 곧잘 묘지명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표현에 극도록 유념하였다. 한번은 강남의 유명한 왕씨 가문의 왕혜룡이 자신의 질녀를 며느리로 맞이하기로 약조하였다. 그런데 주변에서 왕혜룡은 명문 가문이 아니라는 말이 퍼지자 왕혜룡의 신체적 특징을 들어 “왕혜룡은 왕공귀문의 자제가 분명하다”며 강남 명문과의 혼담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북위 사회에서는 오직 선비족만이 귀문(貴門)이 될 수 있었다. 일부 선비사족이 왕혜룡을 귀문의 자제로 인정한 것은 선비족을 무시한 처사라며 태무제에게 고발했다. 분기탱천한 태무제는 그를 호되게 나무랐다.

2대 명원제 시절 남조와의 싸움에 황제를 모시고 종군했는데 전쟁을 마치고 귀경하는 길에 황하의 물줄기를 보고 “진시황과 한무제는 봉건제를 폐하고 군현제를 채택했으니 둘다 커다란 오류를 범한 셈이다”고 심경을 토로하였다. 선비귀족들은 이 말이 진시황과 한무제처럼 황하 유역을 통일한 북위 황제를 빗대어 말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래저래 선비족들의 반감이 깊어갔다.

429년 국사편찬 작업을 총괄하는 사직에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북위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이 본격화되었고 그의 정치적 운명도 국사편찬 작업과 깊이 연루되었다. 한인사족 출신인 그의 사관은 한마디로 사실대로 역사를 기술한다는 입장이었다. 역사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입각한 사실 기록이어야 한다는 한인 사가의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는 선비족의 역사를 가감없이 서술했다. 선비족이 얼마나 미개했는지 얼마나 잔학했는지 등 감추고 싶은 과거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내용 일부를 비석에 새겨 수도인 평성에 세워놓았다. 공금 3백만을 들여 국사를 새긴 석비가 곳곳에 세워졌다.

선비사족의 불만이 폭팔했다. “최호 등이 국정의 치욕을 폭로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태무제도 왕조의 역사를 무시하는 행위를 자신에 대한 반역으로 받아들였다. 하북통일 사업이 완료되었고 최호, 고윤 등 한인사족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점도 크게 부담스러웠다. 결국 삼조원로인 그를 처형하기로 결정했다. 범양 노씨, 태은 곽씨, 하동의 유씨 등 128명이 주살되고 사관제도 폐지되었다. 450년 6월의 일로 소위 국사사건으로 불린다. 최호를 호송한 차에 수십명의 군사들이 소변을 보자 온몸에서 지린내가 진동했다고 한다. 50년 충성을 다한 신하의 비참한 말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