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다방 주방장 염동유는 서방에서 화순 가는 막차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렀다. 다방은 손님이 없어 밤 9시 KBS뉴스가 끝나자마자 문을 닫았다. 아나운서는 전남대 학생들이 도청 분수대에서 14일에 이어 15일에도 질서정연하게 시위를 끝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염동유는 다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으므로 다방 문을 열고 닫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염동유는 가방을 메고 남광주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그는 학생들의 시위 뉴스를 들을 때마다 따분했다. 서울이나 광주나 허구헌날 엇비슷한 시위 뉴스였기 때문이었다. 사는 일이 팍팍했기 때문에 그는 정치에 무관심했다. 먹고 살기 바빴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염동유에게 한 가지 관심이 있다면 가난하게 사는 부모에게 푼돈이라도 모아서 보내는 일이었다. 다섯 마지기 논농사를 짓는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어제, 하루 종일 비가 내린 때문인지 산수동오거리를 지나 남광주로 가는 아스팔트길은 아직도 촉촉했다. 가로등불빛에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이 번들거렸다.

염동유는 목돈을 크게 모으는 것은 포기한 채 살았다. 생활비를 쓰고 부모에게 푼돈을 모아 송금해놓고 보면 저축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생활한 지 10여 년이었다. 학비를 내지 못해 중학교 2학년 때 자퇴하고 광주로 올라와 양장점 심부름꾼, 중국집 배달원, 다방 주방장 등을 전전했다. 염동유는 가방을 고쳐 멨다. 시내버스는 벌써 조선대 앞을 지나고 있었다. 좌회전을 하기 전, 오른편의 우중충한 벽돌건물은 전남대 병원이었다.

염동유가 멘 가방에는 대인시장에서 산 부모님 여름옷 반팔 티셔츠가 들어 있었다. 오랜 만에 드릴 선물이었다. 명절 휴무 때 가곤 했지만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어 평일인데도 찾아뵈려고 했던 것이다. 내일은 토요일이므로 조금 늦게 다방 문을 열어도 되었다.

막차버스는 어김없이 남광주 버스정류소에서 멈췄다. 화순행 버스는 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술에 취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과 교복차림의 고등학생 두어 명이 맨 끝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염동유는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화순 가는 길은 낯익어 정다웠다. 학동을 끼고 흐르는 광주천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오른쪽에 소태동, 배고픈다리, 조선대에서 넘어오는 길이 있고, 증심사, 무등산이 나왔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광주천을 따라 내려가면 왼쪽에 방림동, 백운동, 양림동, 기독병원, 사직공원, 양동시장, 광천동이 나오고, 오른쪽으로는 학동, 적십자병원, 태평극장, 세무서, 임동, 방직공장, 무등경기장 등이 있었다.

운전수가 지원동을 넘어 주남마을 입구에서 버스를 세웠다. 고등학생은 벌써 내린 뒤였다. 운전수가 술에 취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소리쳤다.

“으디서 내리요!”

“당신 누구요?”

“오메, 환장허겄네. 으디서 내리냔 말이요!”

“택시 기사 아자씨, 우리 집 가잔께.”

“뭔 소리여. 이 차는 뻐스당께.”

“빤스라고라.”

운전수는 기가 막혀 운전석으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다. 염동유에게 한 마디 했다.

“화순 가서 터미널에 내려놔부러야제 달리 방법이 ?구만.”

“무자게 취해부렀그만요.”

“청년은 으디까지 가는가?”

“화순터미널이요. 기사 아저씨도 시마이허고 화순에서 자지라우?”

“아니, 차고지가 광주여. 광주로 돌아와야 시마이여.”

막차버스는 어느 새 너릿재 터널을 지나 화순읍 초입을 달리고 있었다. 가로등이 없는 화순읍 초입의 협곡은 컴컴했다. 협곡의 내리막길을 더 달리자 바로 화순읍이었다. 그래도 화순버스터미널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보성, 장흥에서 들어오는 막차버스들이 터미널에서 잠깐 정차하고 있었다. 염동유는 터미널에 내려 변소부터 찾았다. 소변이 진즉부터 마려운데 참고 있었던 것이다. 변기는 암모니아가 덕지덕지 끼어 숫제 누렇게 변색해 있었다. 염동유는 그러거나 말거나 누런 변기에다 오줌발을 갈겼다. 그러고 나자 사타구니까지 시원해졌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으슥한 밤길이지만 부모와 동생들이 사는 도곡까지 십여 리 밤길을 걸어가야 했다. 버스터미널 문을 막 나오려는데 누군가가 염동유를 불렀다.

“어이, 손님.”

“날 불러부렀소?”

“내가 불렀소.”

버스터미널 앞에 자리를 잡은 청년 구두닦이였다. 염동유는 불량기가 있어 보이는 구두닦이에게 봉변을 당할까봐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그러자 구두닦이가 웃으면서 일어나 손짓을 했다.

“폼을 본께 고향에 온 것 같은디 구두가 더러워서 쓰겄소?”

“바쁜께 다음에 닦겄소.”

염동유는 구두닦이를 피하려고 다음에 닦겠다고 얼버무렸다.

“나, 나쁜 사람이 아니요. 마지막 손님일 것 같아서 공짜로 광내준다고 허는디 그라요.”

“마지막 손님은 공짜요?”

“첫 손님은 개시라 돈을 받지만 마지막은 내 기분에 따라 받기고 허고 안 받기도 허요.”

염동유는 세파에 찌든 구두닦이의 모습을 불량한 청년으로 본 것 같아 미안했다. 나이는 이십대 초반으로 같은 또래 같았다.

“날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쇼. 나 이래봬도 의리의 사나이요. 매표소가 바쁘면 매표소 일도 공짜로 거들어주고 구두를 닦는 의리의 사나이요. 하하하.”

구두닦이 청년이 웃자 그제야 그의 선한 모습이 드러났다.

“염동유이요. 도곡에 집이 있그만요.”

“나는 박래풍이요.”

“나이가 엇비슷헌 것 같소.”

“워메, 요것도 신발이요? 아무리 자기 구두라고 허지만 너무 해부렀소.”

염동유는 새삼스레 구두통 위에 얹힌 자신의 구두를 보고는 부끄러웠다. 구두약을 바른 지 1년도 넘어 속가죽이 희끗희끗 드러나 볼품이 없었다. 박래풍은 아무런 말없이 구두약을 두껍게 바른 뒤 진지하게 구두를 닦았다. 이윽고 구두코가 번들번들 터미널 네온사인 불빛을 반사했다. 염동유보다 박래풍이 더 좋아했다.

“새것이 돼부렀소. 인자 집이 가도 되겄소. 이래야 부모님께서 형씨가 객지 삼시롱 고상헌지 모르지라.”

“아이고메, 고맙소.”

염동유가 속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하자 박래풍이 화를 냈다.

“아까 참에 내가 공짜라고 했는디 못 들었소?”

“형씨가 나를 몰라서 그란디 나는 지금까지 공짜로 뭣을 해본 적이 ?소. 십 원짜리 한 장도 누구를 속인 적이 ?고, 누구헌티 신세를 진 적이 ?소. 긍께 받으쑈.”

“공짜로 구두를 닦아주믄 다들 그냥 고맙다고 가는디 형씨 고집도 웽간허요.”

“그라믄 이 돈으로 딱 한 잔만 허끄라우?”

“좋지라.”

염동유가 술값으로 쓰겠다고 하자 박래풍이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포장마차로 들어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소주는 주로 박래풍이 마셨다. 염동유는 밤에 들어가면서 부모에게 소주냄새를 풍기지 않으려고 한 잔도 겨우 마시는 시늉만 했다. 박래풍은 소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알약을 먹듯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음식을 씹듯 오물거리며 소주 맛을 음미한 뒤 목구멍으로 넘겼다.

“고향이 화순이요?”

“광주가 고향인디 어치께 허다봉께 여그까지 와부렀소.”

“화순이 좋은갑소.”

“좋다기보다 우리 엄니가 여그 산께 쪼까라도 가찹게 살라고 화순으로 왔지라.”

박래풍은 소주를 서너 잔 더 입안에 털어 넣더니 화순으로 온 사연을 말했다.

“여섯 살 때 아부지가 돌아가시고 그해 엄니는 나를 고아원에 ?기고 개가하셨지라. 형제도 ?이 그때부터 나 혼자 살았지라. 무등갱생원에서는 월산국민학교를 졸업하던 해까지만 살았는디 원생들은 150여 명쯤 됐지라. 국민학교 때부터 구두닦이나 신문팔이를 함시롱 벌어서 학용품 같은 것은 사서 썼그만.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구역 부근에서 한 4년 동안 구두닦이를 하다가 서울로 가서 장롱에 자개 붙이는 일을 2년 했는디 뼈 빠지게 고상했그만요. 일가친척이 ?응께 공장 기숙사에서 살았는디 지옥이 따로 ?었당께. 그때 엄니가 간절하게 생각납디다. 고향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엄니가 으디서 사시는지 수소문을 했는디 어느 날 고향 어른이 화순에 사신다고 전해줍디다. 그래서 화순으로 내려와부렀제. 엄니와 헤어진 지 13년 만에 만났는디 새아부지와 엄니 사이에 동생이 다섯 명이나 됩디다. 엄니 집에 들어가 살 수 ?는 형편이어서 화순 우리식당에 4년 동안 일함서 묵고자고 했지라. 그러다가 구두 닦는 것이 수입이 쪼깐 더 나은 것 같아 버스터미널 앞에다 자리를 잡았지라.” “고상은 허겄지만 엄니가 옆에 계신께 심은 되겄소.”

“두 말 허믄 잔소리지라. 고아라는 소리를 안 듣고 산께 말이요.”

“그 심정 이해돼부요. 가진 것은 ?어도 엄니가 있응께 객지 험헌 생활도 견딜 수 있드랑께요.”

“사람들이 고아라고 허믄 징그러운 벌레 보데끼 허드란 말이요. 내가 오죽 했으믄 화순까지 내려와부렀겄소.”

염동유가 깍두기를 집적거리다가 말했다.

“그래도 형씨는 효자요. 엄니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을 본께.”

“아이고메, 이런 것이 효도라믄 백년 천년이라도 허겄소.”

“인자 일어나야 허겄소. 부모님 모다 초저녁잠이 많으신디 너무 늦어부렀어라.” 두 사람은 오랜 만에 만난 친구인 양 마음속의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일어났다. 염동유는 조금 넓은 신작로에서는 뛰다시피 했고 지름길을 찾아 논두렁길을 가로지를 때는 광대가 줄을 타듯 긴장하며 걸었다. 멀리 시골집 마을의 불빛이 깜박거렸다. 언제 보아도 마을의 불빛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어쩌면 저 불빛을 보기 위해 시골집에 오는지도 몰랐다. 부모님이 반갑기는 하지만 찌든 데다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 학비가 없어 중학교를 자퇴했던 일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상처가 아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가 되살아나 도지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골집 마을의 불빛은 언제 보아도 가슴이 설?다.

박래풍은 술이 부족한 듯 소주 1병을 사들고 농사꾼 친구 김용호 집으로 찾아갔다. 김용호는 부모님 밑에서 농사를 짓고 살지만 정치평론가 이상으로 시국을 진단하면서 나름대로 평을 잘했다. 정치 평에서는 박래풍보다는 한 수 위였다. 그렇다고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신문 몇 개를 읽어보면 대충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박래풍은 김용호 집으로 가서 골방 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러자 방 안에서 소리가 났다.

“밤중에 누구여?”

“나여, 나.”

“나라니...”

“래풍이란 마시.”

“밤중에 왠일이여?”

“술 한 잔 할라고 왔어.”

술이란 말에 김용호는 방문을 열고 싫지 않은 내색을 했다.

“아따, 이 사람아. 너무 늦어부렀네. 부모님이 주무신께 살그머니 도둑놈 멩키로 들어오소. 으째서 왔는가?”

“자네헌티 우리나라 앞날이 어치께 돌아가는지 들어볼라고.”

“이 사람 보소. 화순서 농사짓는 놈이 뭣을 안당가. 비행기 좀 그만 태우소.”

“히히히.”

박래풍은 오징어 안주와 소주 두 홉들이 1병을 내밀었다. 물론 챙겨온 종이컵 두 개도 방바닥에 내놓았다. 김용호는 소주 한 잔을 훌쩍 먼저 마시더니 말했다.

“소줏값은 해야제. 나가 볼 때는 전두환이가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 같네. 긍께 지금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어. 사회가 더 시끄러워지게 놔뒀다가는 그것을 빌미로 나올 거여.”

“군인들이 총 들고 나온단 말이여?”

“그라고 ?은디 시방은 때가 일러 지달리고 있는 거 같당께. 대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지고 더 난리를 쳐야 나올랑가?”

“참말로? 징그런 새끼네잉.”

“보안사령관 험시롱 권력을 다 잡아부렀응께 지 맘대로 해불 거여.”

“사람들이 박통 때허고 달리 다 똑똑해져부렀는디 가능헐까?”

“군대서 시범케이스라는 것이 있잖여. 으디 한 곳을 시끄럽게 몰고 가다가 북한을 핑계댐시롱 총 들고 나와 지가 대통령 노릇헐 거랑께.”

“니는 참말로 많이 알아분다잉.”

“조짐이 이상해부러. 태풍이 오기 전날은 고요허잖어. 내 눈에 그라데끼 보인당께.”

“자, 고상헌 얘기는 고만 허고 술이나 마셔부러. 전두환이가 수작을 부린다고 해도 우리가 으쩔 거여. 니는 농사꾼이고 나는 구두닦인디.”

박래풍과 김용호는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금세 소주 1병을 비워버렸다. 김용호도 박래풍 못지않게 소주를 잘 마셨다. 김용호가 술이 부족하다는 듯 빈병을 거꾸로 들고 한두 방울 떨어지는 술까지 핥아먹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일어서려는 박래풍을 잡았다.

“여그서 자고 가. 시방 으디로 갈 디가 있다고 그래.”

“못 가게 헌께 고맙그만. 낼 매표소 일 땜시 일찍 일어나 가불틴께 그리 알어.”

두 사람은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았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야심한 밤에 쌍나팔을 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