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사람치고 영국의 수필가며 철학자인 베이컨(1561-1625)의 ‘수상록’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지금도 문학 등의 인문학 강의에 빠지지 않고 입에 오르내리는 책 중의 하나가 그의 ‘수상록’이기 때문이다.

그는 “독서는 완성된 사람을 만들고, 담론은 기지 있는 사람을 만들고, 작문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독서건 담론이건 작문이건 사고 활동의 밑바탕은 책이다. 책은 읽혀져야 생명력을 지닌다.

‘밥 먹는 것’이 취미가 될 수 없듯, 독서를 취미라고 할 수는 없다. 여가 활용으로 감흥이나 얻고 시간이나 보내기 위한 것이라면 독서를 강조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독서는 취미가 아닌 필수가 돼야 한다. 꿈꾸는 인생의 도전으로 삼아도 좋다.

책은 인생 행로를 가르쳐주는 훌륭한 교사다. 어떤 삶을 꼭 찍어 성공이라 말할 수는 없어도 나름대로의 지향점은 있어야 하고 그 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 책이다.

오늘날은 돈이 쥐락펴락 사람을 놀리고 처세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럴수록 좋은 스승을 만나야 생이 헛되지 않는다. 사회에 나와 좋은 스승은 만나기도 사귀기도 어렵지만 인생의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스승 될 책을 택하는 일은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사람의 육체 속에는 꼭 채워 놓아야 할 큰 곳간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뱃속이요 다른 하나는 머릿속이다. 뱃속을 채우지 못하면 생이 끝나고 머릿속이 비면 비틀거리고 흔들린다. 두 곳간을 채우는 일은 죽을 때까지, 일생을 두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동물의 가장 하급 욕망은 뱃속 채우기부터 시작된다. 머릿속은 비어 있어도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다. 돼지들의 삶이 좋은 보기다. 뱃속은 돈이 채워주기 때문에 돈이 보이는 곳이면 썩은 시궁창에도 기꺼이 엎어진다. 그걸 추하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나 문제는 충분히 가지고도 더 갖고자 비열하게 온갖 머리를 굴리는 행태다.

지난 3월 28일자 한 중앙지에 아주 흥미로운 만평이 실렸었다. 단 두 컷이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색안경을 쓰고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여인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 정작 본인은 운전석 여인이 몰고 가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다. 청소 로봇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인지하고 나서 움직이는데 꼭두각시는 말 그대로 꼭두각시다. 잘못도 죄의식도 모른다. 머릿속이 비면 판단 의식이 제대로 작동을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한 사람의 머릿속은 온통 돈다발로 채워져 있다. 그냥 돈다발이 아니라 ‘온갖 불법 자금’이란 설명이 이해를 도와준다. 나 같이 머리가 아둔한 사람은 ‘돈’과 ‘불법 자금’을 구별하지 못할까봐 그랬을 것이다. 치졸하게 돈만 쫓다 보면 고갱이가 썩는다.

영국의 수상을 두 차례나 역임한 디즈레일리는 “단 한 권의 책밖에 다른 책을 읽은 적이 없는 인간을 경계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다양한 색깔의 자연이 아름답듯 다양한 책을 읽어야 폭넓은 사람이 된다. 스승으로부터 배우지 못했으면 독서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

지난번 문체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수험서나 교과서, 학습서나 만화 등을 제외한 책 한 권 이상 읽은 사람이 60%도 안 된단다. 참으로 부끄러운 통계다. 문제의 심각성은 재작년보다 떨어졌다는 사실이며 앞으로 더 떨어질 거라는 어두운 전망이다. 백 사람의 몽테뉴가 “독서하는 것과 같이 영속적인 쾌락은 없다”고 해 보았자 말짱 헛소리다.

미국의 전 대통령 오바마가 독서광임은 오래 전부터 익히 알려진 바다. 이 순간도 그분은 어떤 책인가를 펴 놓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성찰하고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품위 있는 지도자가 부럽다.

금년부터 독서에 대한 나라의 교육 정책이 조금 바뀔 모양이다. 7월 1일부터 책과 공연에 지출하는 돈은 소득 공제해준다든가 초등 3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10년간 한 학기 한 권 읽고 토론하기 등으로…. 제도는 강제성을 띠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미래를 책임질 싹들을 키울 자양분을 독서에서 얻으려는 의도가 신선하다.

독서도 시기가 있다.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혀지지 않으면 휴지만도 못하다. 개인을 떠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독서가 애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