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에 인류 지속가능의 답이 있어요”
2024년 11월 26일(화) 11:00
굿모닝 예향 초대석-대중과 과학 사이를 연결하는 이정모 과학 커뮤니케이터
네안데르탈인 시각에서 보는 인간역사 등
자연사를 쉽고 재밌게 체험하는 과학으로
2001년 저서 ‘달력과 권력’ 출간하며
교양과학 작가·과학 커뮤니케이터로 변모

이정모 펭귄각종과학관장은 저술과 강연, 방송활동 등을 통해 누구나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이다.

이정모(61) 펭귄각종과학관장은 어려운 과학과 시민들 사이를 메우는 ‘과학 거간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이다. 저술활동과 대중 강연을 통해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한다. 국립 과천과학관 등 12년 동안 관장직을 맡아 ‘보는’ 과학관에서 ‘하는’ 과학관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신간 ‘찬란한 멸종’을 통해 “자연사(史)는 멸종의 역사”라며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막기 위해 인간 스스로 삶의 방식을 바꿔 탄소배출을 멈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멸종, 새로운 생명 탄생의 찬란한 시작”= “…지난 다섯 차례 대멸종의 원인은 자연이었다. 당시 생명은 속수무책이었다.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 인류세의 원인은 무엇인가? 당신들 인류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화산이 터져서도 아니고, 소행성이 부딪혀서도 아니고, 초대륙이 만들어져서도 아니다. 오로지 당신들 인류의 소행이다. 그러니 해결법도 간단하다. 당신들만 변하면 된다.”

이정모 펭귄각종과학관 관장은 최근 펴낸 신간 ‘찬란한 멸종’(다산북스) 책 구성과 집필방식을 독특하게 했다. 시간상으로는 2150년 홀로 남은 인공지능(AI)에서 45억 년 전 생명의 탄생까지 시간을 거슬러가며, 관점으로는 각 장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범고래와 지구, 네안데르탈인, 털매머드, 삼엽충, 미토콘드리아 등 생명체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관장이 ‘대멸종’된 생명체들과 인공지능, 화성로봇 등을 통해 조근조근 들려주는 자연사는 새롭고, 흥미롭다. 지구역사 45억년 동안 발생한 다섯 차례 대멸종의 원인은 ‘급작스런 기온 변화와 급작스런 대기 산성화, 급작스런 산소농도의 하락’ 등 세 가지였다. 그렇다면 인류는 눈앞에 닥친 기후 위기와 여섯 번째 대멸종에 어떠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까?

‘과학 거간꾼’,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불리는 이 관장을 최근 곡성에서 만났다. 곡성읍 장산리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에서 열린 김탁환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참 좋았더라-이중섭의 화양연화’(남해의 봄날) 북 토크에서 사회를 맡았다. 북 토크를 마친 후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에서 이 관장과 마주 앉았다.

-인공지능(AI)과 네안데르탈인, 검치 호랑이(스밀로돈), 고대 잠자리(메가네우라) 등 1인칭 시점에서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서술하는 방식이 새롭습니다.

“수 십 년간 자연사(史)를 하다보니까 너무 익숙해서 재미가 없는 거예요. 뭔가 좀 낯설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낯설게 하기’(Verfremdung)라는 문학이론이 있어요. 첫 번째로 네안데르탈인 얘기를 썼는데, 나도 모르게 네안데르탈인 시각에서 쓰게 된 거예요. 자연사에 AI가 등장할 리가 없잖아요. 그들(AI)의 시각에서 인간역사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좀 더 낯설게 접근하는 거죠. 책을 쓸 때 내가 다짐했던 게 있어요. ‘공부하지 않겠다!’. 수십 년 동안 자연사를 공부한 사람인데, 이 와중에 또 공부해서 쓰면 독자들은 얼마나 어렵겠나…. 그러지 말고 내가 딸에게,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을 원고지 50매 분량으로 쭉 썼죠. 그동안 무수히 많은 책을 썼는데 아내가 딱 두 번 칭찬을 했어요. 첫 번째가 독일에서 유학할 때 썼던 ‘달력과 권력’(2001년), 두 번째가 이번 책을 읽고서 ‘재미있다’ 했던 거죠. 다행히 독자들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아요.”

지난 10월 12일 장편소설 ‘참 좋았더라-이중섭의 화양연화’ 를 펴낸 김탁환 작가와 북토크를 하는 이정모 관장.
-부제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처럼 126년 뒤 미래인 2150년에서 지구에 생명체가 태어나는 45억 년 전으로 시간을 되밟아가는 구성을 했습니다. 또 지구가 보내는 ‘친애하는 인류에게’ 편지, ‘45억 년 전 달과 바다’의 2인극 등도 자연사를 새롭게 보여줍니다.

“처음에 이렇게 써야지 하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처음에 네안데르탈인을 하고 나니까 결국 거기에 빠졌어요. 가장 마지막에 쓴 챕터가 달과 바다의 대화였어요. 그때 떠오른 장면이 ‘로미오와 줄리엣’이었어요. 내 평생 처음 연극대본처럼 써봤어요. 편집자가 첫 번째 독자잖아요. 재미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이 책은 자연사를 통해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될지 고민하게 합니다. 내 스스로 수작이라고 생각하고 되게 만족스러워요.”

-여섯 번째 대멸종 원인은 오로지 인간의 책임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내년이면 전 세계의 석탄 발전량보다 신재생에너지가 더 많아지게 되는 거예요. 이미 세상에서는 주류가 됐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인도가 새로 확보한 태양광 발전이 12.1기가 와트에요. 원자력발전소 12기만큼을 한거에요. 중국과 인도가 경제개발을 하면서 신재생에너지를 채택하니까 순식간에 세계 표준이 돼버린 거죠. 이 정도 속도라면 우리가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전환율이 전 세계 주요 국가 중에 꼴찌입니다. 그런데 신안군은 전 세계에서 1등이에요. 지구에서 가장 모범적인 신재생에너지 지방자치단체입니다. 우리나라만큼 신재생에너지 생산력이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술도 있고, 자본도 있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거죠. 우리도 빨리 전환해야죠.”

-신간에서 “결국 자연사란 멸종의 역사다. 인류 세라는 극한의 위기에 선 인류에게 자연사는 마지막 지혜의 비단 주머니일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자연사(史)를 왜 배워야 하나요?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뭘까요? 선조들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배워가지고 그냥 으쓱으쓱 하려고 배우는 게 아니거든요.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나라는 다 망한 나라입니다.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수나라, 당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 다 망했어요. 망한 나라를 왜 배울까요? 그들이 왜 망했는지를 배워서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이 더 지속가능할까를 따져보기 위해서 배우는 거잖아요. 자연사를 배우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생대 3억년동안 바닷속에 바글바글 댔던 삼엽충이 왜 멸종했는지, 중생기에 1억6000만년 동안 육상을 지배했던 공룡이 왜 멸종했는지를 배우는 거죠. 그들의 멸종을 배워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멸종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얼마나 더 지속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 자연사에서 배우는 거예요. 자연사에 답이 있습니다. 2015년에 진화와 멸종의 매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공생 멸종 진화’, 올해 대멸종을 역사적·문학적으로 표현한 ‘찬란한 멸종’을 냈습니다. 현재 연재중인 ‘멸종 열전’이 끝나면 내년 말쯤 책이 나오겠죠. ‘멸종 3부작’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서울 구산 도서관에서 진행된 ‘환갑삼이 콘서트’(2023년 4월). <이정모 제공>
◇‘보는’ 과학관에서 ‘하는’ 과학관으로= 이 정모 관장은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본 대학교 화학과에서 ‘곤충과 식물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연구를 했다. 유학 당시 과학자와 시민 사이를 ‘통역’해주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를 꿈꿨다. 1999년 봄, 새천년맞이 퀴즈에 오답을 내고 6개월 넘게 도서관을 드나들며 서양 달력을 공부해 ‘달력과 권력’이라는 첫 번째 책을 냈다.

그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5년)과 서울시립과학관(4년), 국립과천과학관(3년)에서 모두 12년을 관장으로 활동했다. 이때 ‘털보 관장’의 운영 원칙은 ‘보는’ 과학관이 아니라 실제로 ‘하는’ 과학관이었다. 과학관은 과학을 직접 해보는 곳, ‘실패’하는 곳, 새로운 질문을 얻어가는 곳이어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이를 통해 과학관의 역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관장은 ‘독서와 연계한 융합형 독서인문 교육’을 하는 광주교대 국어교육과 최원오 교수와 함께 6~10월 여러 차례에 걸쳐 신안 가거도 등 섬 지역 학교와 면사무소를 찾아 과학강연을 했다.

◇토끼띠 20년 지기 3명, ‘환갑삼이(三李)’=이정모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와 이명헌 천문학자·‘과학책방 길다’ 대표,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1963년생 토끼띠 동갑이다. 지난해 환갑을 맞은 세 사람은 “우리가 평생 도서관과 서점의 은혜로 행복하게 살았으니 환갑에는 작은 보답을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책과 도서관, 과학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당초 토크쇼 10회를 예상했으나 전국적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연말까지 22차례나 강연을 했고, 올해에도 그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총 12년간의 ‘공직’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임한 이 관장은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그의 명함에는 ‘펭귄각종과학관’ 관장이라고 표기돼있다. 그래서 개인 과학관을 운영하느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펭귄각종과학관’은 퇴임 후 경기도 일산에 마련한 이 관장의 개인 사무실 명칭이다. 과학자와 시민 사이에서 ‘과학 문해력’을 높여주는 ‘과학 거간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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