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우리 병원을 방문하면 의아해 한다. 병원에 조성된 화단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병원 전체 면적 중 3분의 1이나 되는 화단을 거쳐 병원 내부로 들어서는데다 곳곳에 놓여진 수십 개의 대형 화분이 볼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수목들을 보면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병원은 2000년에 개원했다. 고맙게도 많은 지인들이 개원 축하 메시지와 함께 화분을 보내 왔다. 훈훈한 정(情)의 표시였다. 나는 이에 보답하기 위해 성실하게 물과 영양제를 주면서 정성껏 관리해 왔다. 한 3개월 정도 지난 뒤였을까. 상당수 화분의 꽃과 나무가 노랗게 탈색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들은 이내 말라빠지고 고사해갔던 것이다.

비록 화분에 심겼을 망정 나는 나무를 친구처럼 여겼다. 같은 공간 안에 있는 나와 생명의 호흡을 함께 나누는 존재로 믿었다. 개원과 동시에 들이닥친 난관들이 내 삶을 옥죄는 동안, 나는 늘 나무에 의지해 위로를 얻고자 했다. 가까스로 병원을 정상화시키는 동안 내가 가꾸던 화분들은 시들거나 죽어 갔다.

1년여 시간이 지난 뒤 어느 날, 화분을 살피다가 작은 화분의 공간 안에 제법 큰 스티로폼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아! 이것 때문에”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버무려놓은 허구였으며 가식이었다. 나무는 뿌리를 통해 흙에서 양분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화원 주인이 그 눈물겨운 나무들의 사투를 막아 버린 것이다.

이 장애물은 나무를 키우고 성장케 하는 화분의 역할을 명백히 방해하고 있었다. 인간의 상업적인 욕심이 그때만큼 얄팍하게 보이던 때가 또 있었을까.

나는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분갈이를 성실히 해주십시오.” 나무를 살리기 위한 내 의지는 거의 병적인 수준이었으리라. 본의 아니게, 이러한 나의 간절한 요구로 인해 직원들이 해야 할 본연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인지 개원할 때 축하의 의미로 받았던 나무들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건만 여태 늠름하게 살아 있다. 내 삶에서 이 나무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리라. 나는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한 가족으로 오래오래 남고 싶어서 틈 날 때마다 잎을 닦아주고, 물을 주고, 영양제를 놓아 주고, 분갈이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직원들에게 항상 내 생각이 옳다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직원들이 가끔 병원 곳곳에서 숨 쉬는 나무들의 모습에 눈길을 주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시들어 가는 나무에게 한 가닥 안쓰러운 눈길을 쏟을 수 있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할 따름이다.

맨 처음 병원을 설계할 때의 일이다. “병원 전체 면적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부지에 화단을 조성하겠습니다.” 내 말에 건축설계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용적률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대뜸 던진 말이다.

요컨대 병원 부지가 교통의 요지이므로 최대한 상업적으로 설계하자는 의견이었다.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나는 반대했다. 이는 도시에서 건축물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병원은 산부인과 병원이다. 생명이 탄생하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마땅히 푸른 생명이 넘실거리는 화단이 제격이다. 그것이 건축물의 용도에 걸맞은 가장 이상적인 배치가 아닐까.

건축설계사의 조언대로라면 1층에 주거래 은행이나 황금알을 낳는 약국을 입점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나는 상업적으로 써야 할 공간을 모두 정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화초와 나무들은 병원 안의 공기를 맑게 함은 물론이요, 마음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역할까지 한다. 어쩌면 이처럼 엉뚱한 선택으로 남들과는 전혀 다른 병원 건축을 고집한 덕에 지금껏 망하지 않고 버텼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화단의 초록 식물들을 볼 때마다, “건축물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예술품이다”라고 혼자 뇌까리곤 한다. 건축주는 건축을 통해 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건축물을 통해 그 속에 담긴 뜻과 비전을 호흡하는 것이다. 그럴 때라야만 건축물은 자신의 인생 그리고 남아 있는 인생까지도 담아내는 기억의 나이테로 길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