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시에 자리한 ‘우파 파브릭’(Ufa Fabrik)과 ‘쿨투어 브라우어라이’(Kultur Brauerei)는 타지역과 차별화된 도시재생 사례로 눈길을 끈다. 과거 영화사와 맥주 공장으로 쓰였던 공간이었다. 한동안 방치됐던 이곳은 생태 공동체 마을과 ‘문화 양조장’으로 재탄생했다.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들 공간이 탈바꿈하게 됐는지 살펴본다.



◇도심 속 오아시스, ‘우파 파브릭’

독일 베를린시 남쪽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우파 파브릭’은 독특한 생태 공동체마을이다. 원래 독일 영화사 ‘우파’(유니버설 영화배우협회)에서 1920년부터 1961년까지 영화편집이나 녹음작업을 하던 공간이었다. 면적이 1만8566여㎡에 달한다.

1961년 영화사가 분단에 따라 사업적·경영적인 이유로 서독으로 이전했다. 베를린 시는 이곳을 매입한 후 우편사업소로 재활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실행되지 않으면서 1961년부터 1979년까지 38년간 빈 공간으로 방치됐다.

1979년 6월 9일에 의미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베를린 시민들과 문화운동가 그룹이 이 공간을 무단 ‘점거’한 것이다. 예술, 체육, 수공업 분야에 종사하던 이들은 ‘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활발하게 활동을 하기 위해 들어왔다. 이런 행동에 대해 베를린 시는 안 좋게 바라봤다. 그러나 시는 이들을 강제 퇴거시키는 대신에 이들과 6개월간 한시적인 계약을 맺으며 상생하는 선택을 했다. ‘시민들에게 문화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장소로 사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시는 반년 간 이들의 프로그램 운영을 지켜본 뒤 이곳에 거주하는 것을 허가했다. 이후 1988년까지 9년 동안 6개월∼1년 단위의 단기 계약을 연장했다. 시와 시의회는 이들에 대해 ‘긍정적이고 효율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1988년부터 2038년까지 50년간 공간을 활용하는 장기계약을 맺기에 이르렀다.

이곳에 상주한 예술가들은 우선 ‘커뮤니티’(공동체) 만드는 것을 우선시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 돌봄 프로그램 등 지역주민과 이웃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예술 가운데서도 문화와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일 수 있도록 세부적인 활동 컨셉을 세웠다.

또한 독일내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참여할 수 있는 국제적인 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윤진철 명창 판소리, 김덕수 명인 사물놀이 등 문화교류가 연간 300회 공연됐다.

이러한 노력 끝에 현재는 주민들에게 다양한 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교육하는 문화공간이면서 ‘생태마을 공동체’로 뿌리를 내렸다. 영화제작소로 사용하던 7개의 건물과 부지를 공동체 자립센터(NUSZ)와 유기농 빵집, 카페, 게스트 하우스, 야외 공연장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상위 행정기관이 빵집과 공연장 등 소규모 단위 기관(개별 사업장)을 운영·관리한다,

특히 공동체 사람과 주민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 자유학교(대안학교)와 어린이 동물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이 돼지나 망아지 등 가축을 직접 만져보거나 놀 수 있는 체험공간을 운영하는 것도 이들의 교육관을 엿볼 수 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녹지공간과 빗물, 태양열을 이용하는 등 환경생태계 운영도 돋보인다. 집집마다 나무나 풀을 심는 ‘녹색 천장’(Green Decke)을 만들어 녹지공간을 형성하고, 1980년대에 선구적으로 빗물을 한데 모아 정화시켜 허드레물로 사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우파 파브릭’에 들어서면 왼편에 유기농 빵집, 오른편에 게스트 하우스가 자리하고 있다. 빵집에서는 친환경 유기농 빵을 자체 생산해 도심에 판매하고 있다.

운영비용의 경우 연방정부와 베를린시 등 외부 지원이 65%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빵집과 공간 임대, 티켓 판매 등 내부 수익사업으로 충당하고 있다.

힌데 프리돌린 행정담당 디렉터는 “베를린 시민과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문화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다른 나라나 타 공간에서 온 이들이 ‘우파 파브릭’의 아이디어가 뭔지를 배우고 교류한다. 그리고 자신의 공간에 돌아가서 활용하는 공간으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양조장 ‘쿨투어 브라우어라이’

독일어로 ‘쿨투어’(Kultur)는 문화, ‘브라우어라이’(Brauerei)는 술을 빚는 양조장을 뜻한다.

옛 동베를린 지역인 프렌즐라우어 베악에 위치한 ‘쿨투어 브라우어라이’는 과거에 맥주를 생산하던 ‘슐트하이스(Schultheiss) 양조장’이었다. 1842년 설립돼 맥주를 생산하던 이곳은 동베를린 맥주시장에서 성공한 맥주 양조장이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동독정부의 소유로 바뀌었으나 1962년 문을 닫았다. 이곳 외에도 다른 맥주공장이 호황을 누린데다 현대화 설비 투자를 제때 진행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맥주회사는 2㎞ 떨어진 곳으로 이전해 같은 브랜드명으로 맥주 생산을 이어갔다.

문을 닫은 맥주공장은 이후 1970년대에 댄스홀(춤 공연장)로 쓰이다 방치됐다. 1977년에 양조장 일대가 문화유산 보호구역으로 선정됐다.

동·서독이 통일된 뒤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에 대한 논의가 일었다. 구 동독지역에 속했던 공공건물 소유권이 민간으로 이양됐다.

이런 흐름에 맞춰 1991년에 민간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로 신탁회사 관리에 놓이게 됐다. 민간으로 이양되는 데는 2가지 걸림돌이 놓여있었다. 1990년대에 민간이 투자해서 보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데다 베를린시와 정치권에서 문화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원했다.

이에 따라 신탁기관에 의해서 1998∼2000년 3년간 50만 덴마크화를 투입해 보수공사를 실행, 2001년 ‘문화양조장’으로 새 단장을 마쳤다.

이곳의 경우 정부는 소유만 하고, 신탁회사에 의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현재 부동산 운영회사인 TLG가 임대를 통해 운영하고 있다.

2000년 이후 공간들을 문화요소로 채울 수 없어 일정 부분은 상업용도로 임대하게 됐다. 문화적인 공간과 기업체 사무실 등 상업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 4만㎡가운데 7000㎡ 정도가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고, 나머지는 상업적인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문화시설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태권도장을 비롯해 극장, 카페, 수공예 가구제작 등 문화와 관련된 상업적 목적으로 공간 80%를 임대해 주고 있다. 슈퍼마켓과 컴퓨터 관련 회사 1곳, 수공예 가구점 2곳, 카페, 400석 규모 콘서트 홀 등이 있다. 문화와 관련된 각종 서비스 제공과 문화예술, 상업공간, 사무실, 비즈니스가 복합적으로 동시에 운영되는 형태이다. 크고 작은 규모의 극장 8개가 운영중이다. 처음에는 예술영화 상영을 고집했으나 요즘은 상업영화도 틀고 있다. 임대료는 월 3000∼1200유로 규모이다.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다. 과거 동독인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연방정부에서 관할한다.

한해 방문자는 200만 명 이상이다. 방문객들은 락과 팝, 재즈 등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비롯해 영화상영과 연극공연, 페스티벌 등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외부인들에게 임대하는 문화 수익행사도 자주 열리는 편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스트리트 푸드 트럭이 운영되고,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장터가 열린다.

과거 양조장으로 쓰였던 공간이지만 양조 체험과 같은 고정 프로그램은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건물 지하에는 옛 양조장 시절에 맥주통을 쌓아 보관하던 창고가 텅 빈 채로 보존되고 있다. 건물 외벽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내부공간 이용은 자유롭다고 한다. 이곳은 의도적인 공간 조성보다 ‘공간 스스로 제안하는 공간화’(化)를 지향하고 있다.

TLG 관계자는 “임대를 상업적 목적으로만 하지 않는다. 문화와 동떨어진 업체에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영역에 속한 기업들에 임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베를린 글·사진=송기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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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