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 30년 한빛원전 진단한다]⑨ 탈핵선언 독일의 고민 <하>
2017년 11월 22일(수) 00:00 가가
“지방정부에 원전규제 권한 넘겨 안전성 확보해야”
우리나라 원자력안전기술원(KINS)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독일의 기술검사협회 TUV는 연방정부의 위임을 받아 실질적으로 원전을 규제하는 막중한 임무를 실행하고 있다. TUV 전경. /하노버(독일)=나명주기자 mjna@kwangju.co.kr
독일의 원전규제에서 TUV(티유비·기술검사협회)는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독특한 위상을 차지한다.
민간 공인시험인증기관이자 기술검사기관으로, 연방정부의 위임을 받아 실질적으로 원전을 규제하는 주(州)정부를 위해 기술지원을 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킨스)과 유사한 조직이다. 독일의 가동원전에 대한 기술검사는 물론 폐로 수순을 밟으면 해체되는 원전에 대한 기술규제 또한 맡을 정도로 원전 규제에 있어서 TUV의 임무는 막중하다.
국내 일부 원전 전문가들은 독일 원전산업이 건전하게 유지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지방정부에 원전에 대한 실질적 규제권한을 주는 시스템’과 함께 독립적인 검사기관으로 평가받는 TUV를 거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남철 교수는 지난 2015년 발표한 논문 ‘원자력발전소 안전규제의 비교법적 연구 -독일-’에서 TUV에 대해 “지난 수십 년간 매우 다양한 영역의 약 1000명의 전문가를 바탕으로 거대하고 능력 있는 원자력전문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김 교수는 같은 논문에서 “전문성과 독립성은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결정적인 기준”이라며 “이는 오늘날 무엇보다도 주행정기관의 일반적 평가자로서 활동하는 TUV(기술검사협회)을 통해 확실시되고 있다”는 언급도 했다.
반면 우리의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영광을 비롯한 원전 소재 지역주민에게는 물론 국회에서조차 “원전 안전규제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지역주민 일부는 “한수원 거수기, 원안위 해체하라”는 거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독일과 한국에서 원전 안전규제기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광주일보가 지난 가을 독일 하노버 TUV NORD를 찾은 것은 바로 여기에 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원전산업과 규제에서 특정그룹 독식은 ‘위험’ = 지난 9월 4일 하노버 TUV NORD 본사에서 만난 올리버 라베 해외사업담당은 TUV NORD가 독일의 원전 안전규제 분야에서 그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 배경에 대해 ▲독립성 ▲다양성 ▲전문성(기술력)을 꼽았다.
2시간 가량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원전 규제에서 검사기관이 독립성, 다양성, 기술력을 충분히 갖췄다면 정치권력이든, 금력이든 어떤 것과도 타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강조하는 지점은 ‘조직 내의 다양성 확보’였다.
라베씨는 “(원전 산업과 규제에 있어서) 특정 대학, 특정 학과가 특정 조직이나 기관을 주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말했다. 원전을 비롯한 원자력 산업을 진흥하는 정부기관이든, 규제하는 기관이든, 원전 사업자이든, 조직마다 또는 조직간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게 힘들기 때문이란다.
그는 “조직 내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독립성을 갖추기도 보유한 기술력도 무용지물”이라며 “TUV NORD 원자력서비스 파트에서는 다양성 확보를 위해 심지어 원전 분야 전공자가 아닌 전문가도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미국기계기술사)는 “국내 원전 안전규제에 있어서 이른바 핵마피아로 불리는 특정대학 출신 세력들이 선후배로 뭉쳐 안전과 진흥을 주도하면서 지난 수십년간 원전 안전 확보의 장애물로 굳어져왔다”며 “원전 운영사인 한수원, 규제기관인 원안위, 안전기술원, 원자력학계에서 특정 세력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있는 ‘그들만의 리그’를 무너뜨리지 않고선 원전 안전 확보는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라베씨는 “물론 TUV NORD라는 기관 자체가 원자력, 교육, 교통, 통신, 기계, 대체에너지, 건강분야 등 서비스 분야가 다양하고 세계 70개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등 거대 조직이라는 점도 원전 검사와 평가에 있어서 독립성을 가질 수 있는 배경”이라면서도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된 것은 법정에 갈 각오로 각종 원전 관련 안전성 평가, 설계 검토, 문서 검토 및 검사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사업자와 다른방식의 보고서로 교차검증=국내 원전 안전 규제에 있어서 문제점에 대해 전문가들은 “교차 검증을 통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원전 인허가, 검사, 안전성 평가 등에 있어서 신청인(원전사업자)이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규제기관이 판단을 주로 한다는 것이다. 신청인이 제출한 보고서와 함께 독립적인 기관(이를테면 원자력안전기술원)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 작성한 보고서를 교차 검증한 뒤 인허가 등 의사결정이 이뤄져야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원전 사업자의 보고서와 함께 독립전문기관인 TUV NORD 보고서가 주 행정기관의 판단을 돕는다. TUV NORD의 원전 1개에 투자하는 시간만 연간 4만시간일 정도라고 한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가 설명하는 독일과 한국의 원전 검사기관의 차이는 아래와 같다.
“최근 원전 격납건물 콘크리트 공극(빈 구멍) 안전성 평가를 사례로 들어보면, 독일의 경우 원전 사업자로부터 안전성 평가를 받는다. 또한 이와 별도로 티유비에게서 같은 평가를 받는다. 별개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지방정부가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원전사업자가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KINS가 검토하고 그 결과를 비전문가인 원안위 공무원이 보고받아 결정하는 체제라서 원안위로부터 KINS의 독립성 마저 약화돼 있다.”
이 대표는 “또한 인적물적 자원이 턱 없이 부족한 현 체재로는 원전 안전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교차 검증을 위한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원전 소재지역이 위험성을 떠안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도 독립된 원전 검사기관을 만든 후 원전이 소재한 지방정부에 규제 권한을 점진적으로 넘기는 방안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지방정부가 주도권을 쥔 독일 원전규제= 김남철 교수의 논문과 TUV NORD측 설명,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의 설명을 종합하면, 독일은 연방공화국으로 법률에서 달리 규정하지 않는 한 연방법률의 집행은 원칙적으로 주(州)의 책임으로 이뤄진다.
이에 따라 법률들은 원자력규제와 관련된 연방법률상의 사무를 연방고유행정과 연방위임행정으로 구분한다.
일부는 연방법률에서 연방이 직접 집행하도록 규정하면서도 그 외에는 주 행정에 위임시켜 주로 하여금 집행하도록 한다. 이런 이유로 독일 원자력안전을 위한 규제기관은 연방과 주의 여러 기관으로 구성된다.
주정부가 원전 사업자에게 인허가를 결정하고 독립전문기관(TUV NORD)과 계약을 통해 원전 검사와 평가 등 업무를 부여한다. TUV NORD의 역할은 사실 독일에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지난 19세기 사설 증기기관감독조합에서 출발한 TUV NORD는 독립적인 감독을 바탕으로 증기시설의 질, 안전성을 개선하는 데 적지않은 기여를 하면서 독일 사회에서 광범위한 신뢰를 확보했다.
원자력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분야에서 TUV NORD가 주(州) 행정기관의 일반적 평가자로서 거의 모든 원자력 분야에 관여하게 된 것도 전문성과 독립성, 오랜 전통에 따른 신뢰성 확보가 밑바탕이 됐다.
다만 주 행정기관은 최종결정에 있어서 전문가의 평가에 구속되지 않지만, 그들의 독립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원자력 관련 의사결정을 수행하게 된다.
원전 사업자가 독립전문기관(TUV NORD)에 원전 관련 검사 및 평가를 요청할 경우 이들은 신청인과는 독립적으로 계산하여 별도의 보고서를 만든다. 주 행정기관이 특정 사안에 관한 의사 결정을 함에 있어서 원전사업자가 제출한 보고서와 독립전문기관이 낸 보고서를 동시에 비교 검토할 수 있는 것이다.
/하노버(독일)=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민간 공인시험인증기관이자 기술검사기관으로, 연방정부의 위임을 받아 실질적으로 원전을 규제하는 주(州)정부를 위해 기술지원을 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킨스)과 유사한 조직이다. 독일의 가동원전에 대한 기술검사는 물론 폐로 수순을 밟으면 해체되는 원전에 대한 기술규제 또한 맡을 정도로 원전 규제에 있어서 TUV의 임무는 막중하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남철 교수는 지난 2015년 발표한 논문 ‘원자력발전소 안전규제의 비교법적 연구 -독일-’에서 TUV에 대해 “지난 수십 년간 매우 다양한 영역의 약 1000명의 전문가를 바탕으로 거대하고 능력 있는 원자력전문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김 교수는 같은 논문에서 “전문성과 독립성은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결정적인 기준”이라며 “이는 오늘날 무엇보다도 주행정기관의 일반적 평가자로서 활동하는 TUV(기술검사협회)을 통해 확실시되고 있다”는 언급도 했다.
◇원전산업과 규제에서 특정그룹 독식은 ‘위험’ = 지난 9월 4일 하노버 TUV NORD 본사에서 만난 올리버 라베 해외사업담당은 TUV NORD가 독일의 원전 안전규제 분야에서 그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 배경에 대해 ▲독립성 ▲다양성 ▲전문성(기술력)을 꼽았다.
2시간 가량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원전 규제에서 검사기관이 독립성, 다양성, 기술력을 충분히 갖췄다면 정치권력이든, 금력이든 어떤 것과도 타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강조하는 지점은 ‘조직 내의 다양성 확보’였다.
라베씨는 “(원전 산업과 규제에 있어서) 특정 대학, 특정 학과가 특정 조직이나 기관을 주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말했다. 원전을 비롯한 원자력 산업을 진흥하는 정부기관이든, 규제하는 기관이든, 원전 사업자이든, 조직마다 또는 조직간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게 힘들기 때문이란다.
그는 “조직 내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독립성을 갖추기도 보유한 기술력도 무용지물”이라며 “TUV NORD 원자력서비스 파트에서는 다양성 확보를 위해 심지어 원전 분야 전공자가 아닌 전문가도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미국기계기술사)는 “국내 원전 안전규제에 있어서 이른바 핵마피아로 불리는 특정대학 출신 세력들이 선후배로 뭉쳐 안전과 진흥을 주도하면서 지난 수십년간 원전 안전 확보의 장애물로 굳어져왔다”며 “원전 운영사인 한수원, 규제기관인 원안위, 안전기술원, 원자력학계에서 특정 세력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있는 ‘그들만의 리그’를 무너뜨리지 않고선 원전 안전 확보는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라베씨는 “물론 TUV NORD라는 기관 자체가 원자력, 교육, 교통, 통신, 기계, 대체에너지, 건강분야 등 서비스 분야가 다양하고 세계 70개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등 거대 조직이라는 점도 원전 검사와 평가에 있어서 독립성을 가질 수 있는 배경”이라면서도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된 것은 법정에 갈 각오로 각종 원전 관련 안전성 평가, 설계 검토, 문서 검토 및 검사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사업자와 다른방식의 보고서로 교차검증=국내 원전 안전 규제에 있어서 문제점에 대해 전문가들은 “교차 검증을 통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원전 인허가, 검사, 안전성 평가 등에 있어서 신청인(원전사업자)이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규제기관이 판단을 주로 한다는 것이다. 신청인이 제출한 보고서와 함께 독립적인 기관(이를테면 원자력안전기술원)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 작성한 보고서를 교차 검증한 뒤 인허가 등 의사결정이 이뤄져야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원전 사업자의 보고서와 함께 독립전문기관인 TUV NORD 보고서가 주 행정기관의 판단을 돕는다. TUV NORD의 원전 1개에 투자하는 시간만 연간 4만시간일 정도라고 한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가 설명하는 독일과 한국의 원전 검사기관의 차이는 아래와 같다.
“최근 원전 격납건물 콘크리트 공극(빈 구멍) 안전성 평가를 사례로 들어보면, 독일의 경우 원전 사업자로부터 안전성 평가를 받는다. 또한 이와 별도로 티유비에게서 같은 평가를 받는다. 별개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지방정부가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원전사업자가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KINS가 검토하고 그 결과를 비전문가인 원안위 공무원이 보고받아 결정하는 체제라서 원안위로부터 KINS의 독립성 마저 약화돼 있다.”
이 대표는 “또한 인적물적 자원이 턱 없이 부족한 현 체재로는 원전 안전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교차 검증을 위한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원전 소재지역이 위험성을 떠안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도 독립된 원전 검사기관을 만든 후 원전이 소재한 지방정부에 규제 권한을 점진적으로 넘기는 방안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지방정부가 주도권을 쥔 독일 원전규제= 김남철 교수의 논문과 TUV NORD측 설명,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의 설명을 종합하면, 독일은 연방공화국으로 법률에서 달리 규정하지 않는 한 연방법률의 집행은 원칙적으로 주(州)의 책임으로 이뤄진다.
이에 따라 법률들은 원자력규제와 관련된 연방법률상의 사무를 연방고유행정과 연방위임행정으로 구분한다.
일부는 연방법률에서 연방이 직접 집행하도록 규정하면서도 그 외에는 주 행정에 위임시켜 주로 하여금 집행하도록 한다. 이런 이유로 독일 원자력안전을 위한 규제기관은 연방과 주의 여러 기관으로 구성된다.
주정부가 원전 사업자에게 인허가를 결정하고 독립전문기관(TUV NORD)과 계약을 통해 원전 검사와 평가 등 업무를 부여한다. TUV NORD의 역할은 사실 독일에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지난 19세기 사설 증기기관감독조합에서 출발한 TUV NORD는 독립적인 감독을 바탕으로 증기시설의 질, 안전성을 개선하는 데 적지않은 기여를 하면서 독일 사회에서 광범위한 신뢰를 확보했다.
원자력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분야에서 TUV NORD가 주(州) 행정기관의 일반적 평가자로서 거의 모든 원자력 분야에 관여하게 된 것도 전문성과 독립성, 오랜 전통에 따른 신뢰성 확보가 밑바탕이 됐다.
다만 주 행정기관은 최종결정에 있어서 전문가의 평가에 구속되지 않지만, 그들의 독립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원자력 관련 의사결정을 수행하게 된다.
원전 사업자가 독립전문기관(TUV NORD)에 원전 관련 검사 및 평가를 요청할 경우 이들은 신청인과는 독립적으로 계산하여 별도의 보고서를 만든다. 주 행정기관이 특정 사안에 관한 의사 결정을 함에 있어서 원전사업자가 제출한 보고서와 독립전문기관이 낸 보고서를 동시에 비교 검토할 수 있는 것이다.
/하노버(독일)=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