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자리한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과 ‘마타데로(Matadero) 아트지구’는 공공 건축물을 재활용한 우수 사례로 손꼽힌다. 과거 병원과 도축장(屠畜場)으로 쓰이다 방치된 공간이었다. 또한 빌바오는 조선·철강산업 위주의 ‘공업도시’에서 미술관 유치와 도시재생 사업에 따라 ‘문화도시’로 재탄생한 경우다.

도시의 역사를 간직한 병원과 도축장 건물을 헐어내는 대신 ‘옛 것’과 ‘새 것’을 조화시켜 도시재생에 나서면서 일자리 창출과 관광객 유입 등 경제활성화 파급효과를 거뒀다. 특히 관(官)과 공공기관, 사회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추진한 장기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쇠락해가던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 '게르니카' 소장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

이곳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대표작 ‘게르니카’(Guernica)를 비롯해 살바도르 달리, 후안 미로, 후앙 그리스와 같은 스페인 출신 초현실주의·입체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소장 작품은 그림 4100점과 조각 1700점, 드로잉 3600점, 판화 5500점, 사진 4230점 등 2만여 점에 달한다.

본래 이곳은 1780년대 지어진 산 카를로스 종합병원 건물이었다. 이탈리아 건축가 프란시스코 사바티니(1722∼1797)가 세웠다. 그러나 1960년대에는 병상을 없애고 환자 진료만 할 정도로 병원 기능을 잃었다.

1975년 독재정치를 편 프랑코가 세상을 떠나자 국가소유인 건물을 두고 철거와 보존 논쟁이 벌어졌다. ‘독재시대 잔재로 철거하자’는 의견과 ‘18세기 문화유산으로 보존하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1977년에 문화유산으로 선정되면서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 활용방안에 대해 고심하던 전문가들과 지역주민들은 ‘건물양식을 볼 때 방치된 병원을 미술관으로 사용하는 게 적절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1982년에 미술관으로 개관해 특별전시 형태로 임시 운영하다 10년 후인 1992년 9월에 본격적인 미술관으로 정식 개관했다. 이때 프라도 미술관에 반환됐으나 사실주의 작품 위주인 그곳 성격과 맞지 않던 ‘게르니카’를 이곳으로 옮겨왔다.

1994년에 연간 71만5200만명 수준이던 방문객이 급증하자 1999년부터 프랑스 건축가 장 루벨의 설계로 신관을 짓기 시작했다. 2005년 9월에 완성된 신관은 주로 강철과 알루미늄, 유리, 합성자재 등 현대식 소재를 사용해 만든 ‘새로운 날개’였다.

그럼에도 석재로 된 옛 건물과 붉은색을 띈 새 건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신관에는 음악당과 도서관, 서점, 커피숍 등을 배치해 복합 문화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신·구 건물은 건축가 이름을 따서 구관은 ‘사바티니(Sabatini)관’, 신관은 ‘루벨(Nouvel)관’으로 불린다. 구관 외벽에 설치된 투명 엘리베이터(영국 건축가 이안 레이첼 설계)도 이채롭다.

소피아 미술관은 올해 9월 현재 350만여 명이 찾을 정도로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부상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건물을 부수지 않고 미술관으로 활용한 결과 일자리 창출 효과와 관광객 유입 등 마드리드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 혐오시설의 변신, 마테데로 아트지구

스페인어로 ‘마타르’(matar)는 ‘죽이다’, ‘지우다’라는 동사이다. ‘마타데로(Matadero)’는 도축장, ‘마타도어’(Matador)는 소 정수리를 찔러 죽이는 투우사를 뜻한다.

‘마타데로 아트지구’는 1927년부터 1996년까지 가축을 도축해 마드리드 시민들에게 공급하던 옛 공영 도축장을 활용한 복합 문화공간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본래 기능을 잃고 방치돼 오던 것을 마드리드 시가 2007년에 전시와 공연, 휴식 등을 위주로 하는 복합 문화시설로 바꿨다. 혐오시설로 여겨지는 도축장을 최대한 보존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밖에서 보면 도로와 나란한 단층 붉은 벽돌 건물이다. 하지만 좁은 입구를 지나 실내에 들어서면 전시공간이다. 과거 도축장으로 사용되던 당시 사진과 건물모형을 볼 수 있다. 안쪽 건물은 식당과 사진 갤러리, 영화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널찍한 광장에는 행사 부스를 비롯해 노천 카페, 푸드트럭이 자리하고 있었다. 음식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주말에는 광장에서 다채로운 공연이 열린다.

마타데로는 정부와 지역자치정부, 마드리드시 등 행정 세 기관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전체 공간 가운데 3분의 1 정도만 개발돼 있고, 나머지 공간은 활용 방안을 모색하면서 보존하고 있다. 건물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관련 위원회에서 ‘어떤 용도로 쓸 것인가’를 판단해 관광객 수용력 또는 친환경적 요소들을 감안하며 개발에 나선다고 한다.

‘마드리드 지속가능성 도시개발부’ 자문위원인 라켈 델 리오 마친(건축가) 씨는 “최근 공공건축물 재생 컨셉이 많이 변화했다. 20세기 초에는 옛 건물을 재생시킬 때 파손된 부분을 그 시대 양식에 맞춰서 복구시키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외부적인 모방뿐만 아니라 ‘옛것’과 ‘새것’을 조합시킨다. ‘옛것’의 외형은 보존시키지만 내부적으로 실용적이고, 현대적인 ‘새것’을 조합시켜서 복구시키는 방향으로 컨셉을 잡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빌바오. 공업도시서 문화도시로 탈바꿈

수도 마드리드에서 북쪽으로 400여㎞ 떨어진 작은 도시다. 인구는 34만5000명 정도. 그러나 이곳은 유명 미술관 유치 등 독특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해 쇠락하던 철강과 조선 위주의 ‘공업 도시’에서 ‘문화 도시’로 새롭게 태어났다. 문화가 도시를 바꾼 대표적인 경우다.

아시에르 어바운사 로벨르스 빌바오 시의원은 “1980년대 들어 아시아권 국가들과 선박수주 경쟁에서 밀리면서 빌바오 조선·철강산업은 경쟁력을 잃고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30%에 달하는 실업률과 마약 중독, 바스크민족 독립운동 등이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또 1983년에는 도시 절반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를 겪었다. 그때부터 빌바오에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빌바오는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발전과 경제부흥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때 빌바오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기로 한 결정은 결과적으로 ‘신(神)의 한 수’가 됐다.

캐나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혁신적인 형상을 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 잉어 같기도 하고 선박 같기도 하다. A3정도 크기의 티타늄 3만3000여 장을 생선 비늘 겹치듯 붙였다.

1997년 10월 개관해 운영 6년 만에 투자비를 모두 회수했다고 한다. 도시 경제에도 많은 변화가 뒤따랐다. 미술관 개관전인 1994년 호텔을 함께 이용한 방문자가 2만4302명에 불과했으나 2015년에는 81만3357명으로 껑충 뛰었다. 전혀 기항하지 않았던 크루즈 유람선이 44회 들리면서 크루즈 관광객 7만497명이 빌바오를 찾았다.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빌바오 효과’라고 부른다.

빌바오의 변화는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만으로 이뤄진 게 결코 아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빌바오 도시재생 2000’(Bilbaoria 2000) 재단이 있었다. 130여 개의 공기업과 민간기업, 800여 명의 전문가로 구성돼 도시재생 사업을 직접 실행하는 공공기관이다. 재단은 도시발전과 경제 부흥을 위해 살릴 수 있는 산업시설은 살리면서, 시민들의 보건과 복지 등 ‘삶의 질’을 높이는데 목표를 뒀다. 성공적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한 빌바오 시는 현재도 ‘앞으로 20년 후에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스페인=글·사진 송기동기자 song@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