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제 소연(蕭衍, 464-549)은 남난릉 출신으로 자는 숙달이다. 남제를 멸망시키고 양나라를 건국했다. 남조시대 가장 뛰어난 치적을 남겼으나 말년에는 불교에 심취해 후경의 난으로 몰락했다.

그는 남제에서 출사해 옹주자사가 되어 군사 요충지인 양양을 지켰다. 그는 잔인하고 포악하며 우둔한 척 하지만 정치적 술수에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다. 남제 말년 조정이 혼란스런 틈을 타 권력을 장악했다. 동혼후가 폭정을 일삼자 쿠데타를 일으켰다. 501년 수도 건강을 장악하고 동혼후의 동생 소보융을 마지막 황제인 화제로 옹립했다. 다음해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그는 남제의 경릉왕 소자량 휘하에 있으면서 지식인 집단과 지적 교류를 계속해왔다. 범문과 심약 등 문인 귀족과 교유하여 팔우(八友)로 불리웠다. 집권하자 이들의 도움을 받아 대대적인 내정개혁에 착수했다. 예제와 법제를 정비해 흐트러진 귀족 신분질서를 새롭게 확립했다. 지방군단의 재원을 통제해 군 지배권을 공공히 하였다. 유송과 남제의 군사정권적 성격을 순화시켜 문이 무를 통제하는 시스템 구축에 노력했다. 즉위 초 수도에 국립대학을 세웠다. 귀족 자제들이 입학하는 국자학과 함께 오경(五經)을 배우는 학교인 오관을 설립해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한 자는 관리로 채용했다. 황태자 소통이 중심이 되어 당시까지 뛰어난 시문을 모은 시문집인 문선(文選)을 편찬했다. 이로 인해 문화가 번성하는 황금시대가 시작되었다. 유신은 ‘애강남부’에서 “50년 동안 강남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태평의 시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수도 건강은 동서남북이 각 40리고 인구가 100만명으로 전국 제일의 도시였다.

양무제 50년은 분명 태평의 시대였다. 송·제·양·진 4왕조 동안 23명의 천자가 제위했고 시역과 찬탈이 되풀이 되는 혼란의 시대에 일종의 예외였다. 그는 뛰어난 학자였다. 유학뿐 아니라 현학·문무·사학에 뛰어났고 유·불·도교를 두루 아우른 육조 사대부의 전형적 인물이었다. ‘주역강소’ ‘효경강소’ ‘공자정언’ 등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지금은 양무제어제집이 남아있다. 그는 공포정치를 극력 피하였다. 왕족과 귀족에 대한 숙청도 최소한에 그쳤다. 학문과 불교에 심취한 그의 인간성 덕분이었다. 유송 남제와는 달리 명문 귀족 대신에 심약 범문 같은 이류귀족을 등용해 문벌정치의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했다.

치세 전기에는 법가식 통치에 따라 공포정치의 어두운 면이 있었다. 한사람이 죄를 짓고 도망치면 전가족이 판결을 받고 고역살이를 하는 법령이 있었다. 이에 따라 해마다 법을 위반해 유죄 판결을 받는 백성이 5천명이 넘어 감옥이 죄수들로 꽉 찼다고 한다. 그러나 치세 후반에는 불교에 심취해 온정적 정치 행태를 보여주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정치에 실증을 느끼고 불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몇 번이나 사신(捨身)을 했고 불사의 노예가 되겠다고 해 군신들이 1억만 전을 주고 되사오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최초의 사신은 66세때 일어났다. 스스로를 황제대보살이라고 칭하며 건강에만 500여개나 되는 불사를 건립했고 승려수가 1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당나라 시인 두목은 강남춘이라는 시에서 “남조 480사 크고 작은 누대는 연우 속에 있구나”라고 묘사했다.

그의 몰락은 북위에서 투항한 장군 후경을 받아들인 사건에서 시작됐다. 547년 무제는 조카인 소연명으로 하여금 북위를 배신한 후경을 지원하도록 했는데 이 싸움에서 북위에 대패했다. 양국이 강화의 조건을 협상하자 자신이 북위로 소환될 수 있다고 우려한 후경은 건강을 치기로 결심했다. 포위된지 6개월만에 궁성이 함락되었다.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시체에서 흘러나온 진물로 개천이 가득 찼다고 한다. 86세의 무제는 궁전에 유폐된채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가 죽고 뒤를 황태자 소강이 이으니 간문제다. 무제는 선명후암(先明後暗)의 대표적 황제다. 죽음 직전의 그에게 남겨진 위안은 그가 통치한 50년 화려한 세월의 잔상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