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안(謝安, 320-385)은 동진의 진군 양하 출신으로 자는 안석이다. 북중국을 통일한 전진의 부견이 남하하자 비수대전에서 대승을 거둬 동진정권을 지켰다.

사씨 가문은 동진의 대표적인 문벌로서 낭야 왕씨와 함께 동진 귀족 세력의 중심축이었다. 비수대전에서 큰 역할을 한 사석은 동생이고, 사현은 조카였다. 동진의 유명 여류 시인 사도원은 사안의 형 사혁의 딸이다. 왕씨와 사씨는 혼맥으로 맺어졌다. 왕희지의 둘째 아들 왕웅지가 사도원의 남편이다. ‘왕사가문’ 빼고는 동진의 귀족사회를 논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동진 중기 왕씨 세력이 점차 약해지자 사씨가 집권했다.

그는 대족 사씨 집안의 중심이었다. 명가의 후손으로 일찍부터 명성이 드높았고 서법에도 능해 행서를 잘 썼다고 한다. 당의 이사진은 그의 필체를 자유롭고 활달해 용호(龍虎)의 기세를 갖추었다고 평했다. 관직에 큰 뜻이 없이 시를 짓고 풍경을 즐기는 여유작작한 삶을 즐겼다. 동진 정부의 계속된 요청에도 관직을 거절했다. 회계 동산에 정원을 꾸며놓고 왕희지, 허순, 승려 지둔 등과 교류하였다. 353년 3월 왕희지 등과 난정에서 시문을 짓고 글을 쓰니 후일 천하의 걸작인 왕희지의 난정서가 탄생했다. 나이 40이 넘어 관직에 진출했다. 오랫동안 동산에서 은거하다가 벼슬길에 나선 일을 두고 후일 동산재기(東山再起)라는 고사가 탄생했다. 군권을 장악한 군벌인 환온 휘하에서 사마로 재직했고 효무제 때는 중서감과 녹상서사를 지냈다. 시중 왕탄지 등과 힘을 합쳐 환온의 제위 찬탈을 막았다.

동진의 중심 인물이 된 그에게 가장 큰 현안은 전진의 남하 문제였다. 전진의 부견은 왕맹의 보좌에 힘입어 내정을 개혁하고 외치에 힘써 전연을 멸망시키고 북중국을 통일했다. 그에게는 동진 군대의 양축인 서부와 북부 세력의 균형이 가장 시급했다. 조카인 사현에게 북부를 관장케 하고 서부는 환온의 동생인 환충에게 일임했다. 사현의 북부군은 중원의 팽성 출신인 유뢰지를 맞이하여 군사력을 크게 키울 수 있었다.

비수싸움은 천하를 겨루는 일전이었다. 전진의 부견은 보병 60만과 기병 27만을 동원해 회하의 지류인 비수를 도강했다. 그러나 지위체계에 혼선이 생겨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동진군이 기습을 해 전진의 대패로 종결되었다. “한 마리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백마리의 개가 그 소리를 듣고 짖는다”는 옛말처럼 일부군의 소란이 전체의 혼란으로 이어져 대패한 것이다. 황제 부견조차 부러진 화살을 맞고 부상을 입은채 간신히 수도 장안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결국 이 싸움으로 전진은 무너지고 부견도 절에서 목졸려 죽었다.

당초 동진군의 총지휘를 맡은 사현은 양쪽의 병력 차가 너무 커 불안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친구 장현을 사안에게 보내 계책을 받아오도록 했다. 사안은 온종일 바둑만 두고 일언반구 전략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날이 어둡자 사현, 사석 등을 불러 세세하게 지시했다고 한다. 그의 심모원려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후일 비수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소식을 듣고도 바둑을 멈추지 않았다. 손님의 면전에서 기뻐하는 것은 재상의 체모가 깎인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린애가 마침내 적을 무찔렀구나”라며 별일 아닌 듯이 바둑을 계속 두었다. 그러나 바둑을 마치고 안채에 들어갈 때는 마음이 들떠 문턱에 나막신의 굽이 부러졌다고 한다. 비수의 승리로 동진은 멸망의 나락에서 간신히 살아났다.

공으로 건창현공에 봉해졌다. “부씨가 기울어지고 패배한 것을 틈타 중원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해 동생 사석에게 명해 낙양, 청주, 연주 등을 공격토록 했다. 그러나 이후 동진 조정이 문란해지기 시작했다. 재상 왕탄지의 아들인 왕국보를 사위로 삼았는데 품성이 좋지 않았다. 효무제에게 장인의 험담을 일러바쳤다. 이로 인해 황제는 사안을 점점 멀리하였다. 권력이 사마도자에게 넘어갔다. 385년 사안이 병사했다. “도자가 세를 얻어 진이 이로부터 문란해지다”고 자치통감에 기록되 있듯이 사안 사후 동진은 급속히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