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희지(王羲之, 307-365)는 낭야 왕씨 출신으로 자는 일소다. 우군장군과 회계 내사를 지냈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왕우군 또는 대왕이라고 불렸다. 해서·행서·초서의 서체를 완성함으로써 서성(書聖)으로 불리운다.

부친은 왕광으로 일찍이 단양태수를 지냈다. 어릴적 부친을 잃고 성인이 될 때까지 모친과 형의 보살핌을 받았다. “저는 하늘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일찍이 불행을 당해 부친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모친과 형의 양육을 받아 점점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어려서 부친이 소장하고 있던 채옹의 필론(筆論)을 몰래 보며 서법을 익혔다. 13세때 예부상서 주의의 집을 방문했다. 주의는 그와 대화를 나눠보고 장차 큰 인물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당시는 손님에게 구운 소의 심장을 대접하는 것이 최상의 예의였는데 주의는 가장 먼저 그에게 주었다. 이로 인해 그의 명성이 널리 퍼졌다. 그는 집안 어른인 왕도와 왕돈으로부터 큰 기대를 받았다. 왕돈은 늘 그에게 “너는 우리 집안의 기대주로서 손색이 없게 될 것이다”고 칭찬했다. 당시 저명한 학자인 완유는 그를 왕승, 왕열과 함께 세명의 젊은 인재인 삼소(三少)라고 불렀다.

「세설신어」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날 왕돈의 집에 가 방 한구석에 누워 있었는데 왕돈의 일당이 그가 있는 것을 모르고 모반 계획을 논의하였다. 왕돈은 비밀을 알게 된 조카를 살려둘 수 없었다. 그는 살기 위해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구토를 했다. 왕돈은 이런 상태에서는 모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해 살려주었다고 한다.

그의 결혼 이야기도 유명하다. 그의 처는 치선으로 태위 치감의 딸이다. 그녀는 서예에 탁월한 재능을 갖추어 필선(筆仙)으로 불리었다. 치감은 당대의 명가인 낭야 왕씨 집안 자제를 사위로 삼고 싶었다. 치감의 명을 받고 집안사람이 왕씨 집으로 가 왕씨 자제들을 살펴보았다. 모두들 의관을 갖추고 공손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유독 그만이 웃통을 걷어 올려 배를 드러낸 채 걸상에 누워 떡을 먹고 있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치감은 “이 사람이야말로 내 사윗감이다”고 생각하고 사위로 삼았다. 훌륭한 사위를 뜻하는 탄복동상(坦腹東牀) 일화는 여기서 탄생하였다.

그는 관직에 나가 비서랑에서 시작해 실력자 유량의 장사가 되고 우군장군 및 회계내사에 이르렀다. 관직 생활 중 왕돈과 소준의 난을 겪었다. 왕돈은 원제 사마예의 측근인 유외와 조협과 사이가 나빴다. 322년 무창에서 군대를 일으켜 수도를 점령하고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328년 장군 소준의 반란이 있었다. 반란군은 사람들 앞에서 알몸으로 다니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 두 차례 난에서 화를 당하지 않았지만 관직 생활에 깊은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 그가 관직을 그만두게 된 직접적 원인은 왕술과의 갈등이었다. 그가 다스린 회계는 양주자사인 왕술 관할이었다. 둘 사이에 갈등이 심해지자 355년 은둔생활을 결심했다.

오두미교에 심취한 그는 아름다운 회계에서 산수를 유랑하고 낚시질을 즐겼다. 약초를 캐기 위해 천리길을 돌아 다녔다. 양생술을 익혔고 이로 인해 말년에는 약물중독으로 고통을 겪었다. 다시 관직으로 돌아오라는 이부상서 사만의 요청을 완곡히 거절하였다.

그의 걸작인 난정서(蘭亭書)는 내사 재직 중인 353년에 탄생하였다. 난정의 유상곡수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하였는데 참석한 명사들의 시를 모아 만든 책에 서문을 쓴 것이다. 당태종 이세민은 특히 난정서를 좋아해 평생 그 필체를 즐겼다. 일설에 의하면 유언으로 자신의 관에 묻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는 애민사상이 깊었다. 부채에 글을 써 빈민을 구제한 일화는 유명하다. 하루는 즙산에서 늙은 아낙이 육각선을 팔고 있었는데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이를 보고 육각선에 각기 5자씩 큰 글씨를 써주면서 “이것이 왕희지의 글씨라고 하고 100냥에 팔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사 순식간에 부채가 동이 났다고 한다. 시선 이백은 “정묘한 운필은 입신의 경지에 들었다”고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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