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예(司馬睿, 276-322)는 동진의 초대 황제로 자는 경문이다. 사마의의 증손으로 낭야왕에 봉해졌다. 팔왕(八王)의 난으로 서진 정권이 흔들리자 강남으로 내려가 건강에서 즉위해 동진 정권을 수립했다.

어리석은 혜제의 황후 가남풍의 전횡으로 조정이 크게 위태로워졌다. 그녀는 태부 양준 일파를 제거하고 사치와 음란으로 국정을 혼란에 빠뜨렸다. 황후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사마씨 일족이 거병했다. 8명의 왕이 정권을 놓고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벌였다. 소위 8왕의 난으로 조정이 사실상 붕괴되었다. 초왕 사마위, 여남왕 사마량, 조왕 사마륜, 제왕 사마경, 성도왕 사마영, 하간왕 사마옹, 장사왕 사마예, 동해왕 사마월이 그들이다. 여덟 왕의 혼전은 서진의 통치를 크게 약화시켰다. 사마예는 황태제인 성도왕 사마영의 감시를 뚫고 강남으로 탈주했다. 내란으로 황족은 거의 다 죽었다. 중신 왕도의 의견에 따라 건업을 본거지로 삼은 낭사왕만이 건재했다.

강남 지방의 토호 귀족들은 사마예 정권과 거리를 두었다. 중원에서 남하한 사마예 세력이 자기들에게 어떻게 대할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왕도는 사마예에게 “선비를 대할 때 겸양하고, 씀씀이를 그치고 절검하며, 정치를 청정하게 하고, 새 사람과 옛 사람을 어루만지고 편안하게 해주라”고 주청하였다. 이를 실천하자 강동의 민심이 서서히 귀의했다. 동진 왕조는 사실상 사마씨와 낭사 왕씨가 힘을 합친 연합 정권이었다. 이 왕조는 중원을 회복해 다시 천하를 통일하려는 이념에 바탕을 두었다. 이를 위해서는 북벌(北伐)이 필연적 과제였다. 당연히 군사를 거느린 군부세력의 발언권이 클 수밖에 없었다. 군사력과 행정능력을 겸비한 낭사 왕씨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왕씨와 사마씨가 함께 천하를 다스린다(王馬共天下)라는 일화가 탄생한 배경이다.

교외에서 하늘에 제사지내고 복을 비는 명절에 왕도는 사마예가 가마를 타고 위엄과 의식을 갖추게 하고, 자신은 유명 인사들과 함께 말을 타고 뒤따랐다. 황제의 기다란 행진대열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강남의 사족인 고영과 하순은 왕도와 왕돈이 사마예를 극진히 모시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들은 사마예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왕도는 사마예에게 “고영과 하순은 남방의 귀족 가문이다. 만일 그들에게 벼슬을 내리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를 것이다”고 건의하였다. 이를 계기로 강남의 세족들이 사마예를 지지했고 동진 정권의 지위도 안전해졌다.

남하한 북방의 귀족들은 틈만 나면 양자강 기슭의 신정이라는 곳에서 모여 술을 마시고 시를 지었다. 주의라는 선비가 “풍경은 다르지 않으나, 눈을 들어 보니 산천이 다르구나”라고 한탄하였다. 왕도는 “마땅히 함께 왕실을 위해 힘을 합쳐 중원을 회복해야 하는데, 어찌 마주하고 울고 있는가”라고 정색을 하고 말했다.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거두고 그에게 사죄했다.

이민족이 침입해 장안이 함락되자 서진의 마지막 황제인 민제 사마업이 평양에 포로로 끌려갔다. 민제가 살해된 사실을 알게 된 후 사마예는 317년 황제로 즉위해 연호를 개원이라고 정했다. 그는 왕도를 숙부라 부르며 국정을 함께 논의했다. 왕도는 정치대군을 장악했다. 사촌 형 왕돈은 강주, 양주, 형주, 상주, 교주, 관주 등 6주의 군사력을 장악했다. 그는 정권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측근인 유외와 조협에게 힘을 실어주고 왕도의 권한을 약화시켰다. 노련한 왕도는 불쾌한 심정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미가 괄괄한 왕돈은 “강을 멀리 건넌 다음 다리를 부수는 격”이라며 반발하였다. 왕돈은 322년 무창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유외를 격파하고 건강에 쳐들어가 황제를 위협했다. 왕돈은 더욱 포악하고 오만해졌다. 황실에 보내는 공납을 대신 차지했고 장군, 관료 등이 그의 가문에서 배출되었다.

325년 황제는 근심스럽고 분해 병이 나 죽었다. 사공 왕도가 유조를 받들었다. 황제는 공손하고 겸손했지만 명석함과 결단력이 미흡했다. 그래서 대업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아들 사마소가 뒤를 이으니 진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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