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강(224-263)은 초군 칠현 출신으로 자는 숙야다. 완적과 함께 죽림칠현의 대표적 인물이다. 조위 시대의 관리로 조조의 증손녀와 결혼해 조씨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일찍부터 학문이 깊고 거문고와 시에도 능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사마씨를 경멸해 기회만 있으면 조소하고 풍자했다. 조조 집안의 여자를 처로 맞아들인 인연으로 사마씨와는 편한 관계일 수 없었다. 그는 탁주일배(濁酒一杯) 탄금일곡(彈琴一曲)과 같은 작은 소망을 가진 선비였다. 그러나 권력과 정치의 세계에서 이러한 작은 꿈도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결국 세상과 거리를 두고 청담으로 소일하는 은둔적 삶을 영위하려 노력하였다. 세속의 인연을 끊음으로써 자신을 지키려 했다.

촉한을 멸망시킨 장군 종회와의 악연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완적은 술로 위기를 빠져나갔으나 혜강은 그러지 못했다. 종회의 아버지는 위나라에서 태부, 태위 벼슬을 한 종요로 당대의 권신이었다. 서성 왕희지 이전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받았다. 종회도 학문이 뛰어났고 역학에 통달했다. 실력과 가문이 뛰어나 다른 사람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혜강은 그의 질투심의 희생물이 되었다. 어느 날 종회는 자신이 지은 책 사본론을 가지고 혜강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큰 나무 아래에서 대장장이 일을 하고 있었다. 종회가 온 것을 눈치채고는 의도적으로 거들떠보지 않고 대장장이 일을 계속했다. 한식경을 기다려도 응대를 하지 않자 종회는 무안하고 화가나서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그러자 그는 “당신은 왜 여기까지 왔고 또 무엇을 보고 그렇게 돌아가느냐”고 물었다. 난처해진 종회는 “내가 들은 소리를 듣고 왔다가 내가 본 것을 보고 돌아가는거요”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 사건으로 앙심을 품은 종회는 후일 그를 투옥해 주살한다. 종회의 처벌 명분은 다음과 같다. “혜강은 위로는 천하의 신하가 못 되고 아래로는 왕후를 섬기지 못했다. 시대를 가벼이 여기고 세상에 교만해 쓸모가 없다. 지금에 있어서 덕이 되는 바가 없고 세속에도 어긋나는 바가 있다.”

그는 현학(玄學)의 대가였다. 현학은 관학인 유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언어, 사회, 우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강조한 무위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불로불사 추구, 음악에서의 감정 부재, 사심 배제 등의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세속의 일과 명예를 초월해 자기완성을 위해 수양하는 도가적 진인(眞人)을 찬양했다. 벼슬을 사양하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살며 산과 계곡에서 술과 음악에 빠진 청담과 은일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오랜기간 은거한 덕에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4언·5언·6언시, 악부를 지었다. 산문에 능해 「고사전」, 「양생론」, 「성무애악」 등의 작품이 남아있다. 거문고에도 능했다고 한다. 하남성 수무현 근처인 산양에서 20년을 유유자적했다. 친구인 산도가 그를 조정에 천거했는데 이를 불쾌히 여기고 9가지 이유를 들어 절교를 선언했다. 이것이 유명한 산거원과의 절교편지(與山巨源絶交書)다. 한마디로 세속의 예법에 구속받고 싶지 않아 친구의 호의를 거절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편지 내용 중 사마씨 감정을 건드린 구절이 있어 훗날 처벌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는 종회가 고발한 유언비어 날조죄로 처형되었다. 그는 억울하고 참담한 심경을 유분시(幽憤詩)에 담았다. 3천여명의 학생들이 연명서를 올려 처형을 면해줄 것을 간청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 사마씨 집단에게는 그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 거문고를 가져다 달라고 형에게 부탁했다. 현장에서 광릉산(廣陵散)이라는 음악을 연주하며 “광릉산, 이 음악도 오늘로 끊어지는구나”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먼훗날 죽림칠현의 일원인 향수는 그가 은둔한 산양의 옛집에 들러 옛날을 추억하는 사구부(思舊賦)를 지었다. “산양에서 피리 소리를 듣다”라는 산양문적(山陽聞笛)의 일화가 여기서 유래했다. 그는 사마씨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필화(筆禍)의 희생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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