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法正, 176-220)의 자는 효직이며 우부풍 미현 출신이다. 건안 초 동탁의 난으로 기근이 들자 촉에 들어가 익주목 유장에 귀의해 신도현령과 군의교위를 지냈다. 후일 유비를 익주로 맞아들여 촉한 건국에 크게 기여했다.

유장은 유언의 뒤를 이어 익주목이 되었으나 우유부단하여 사직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다. 처음에는 조조에 기울어 사신을 보내 친선에 힘썼다. 그러나 조조가 중원을 평정한 후 고압적인 자세로 나오자 참모 장송의 건의를 받아들여 조조와 단교하였다. 조조는 한중의 장노를 평정한 다음에는 익주의 유장을 칠 속셈이었다. 유장은 먼 인척인 형주의 유비를 원군으로 맞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법정과 장송은 유비와 힘을 합쳐 조조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는데 그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법정은 두차례 형주를 방문해 제갈량을 만나 뜻을 같이 하였다. 유비를 익주의 새로운 주인으로 맞아들이는 길 외에는 살길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유비에게 “장군의 영웅다운 재략에 의지하고 유장의 유약함을 틈타십시오. 그런 다음 익주의 풍부한 자원에 의지하고 험준한 기세에 기대십시오. 그러면 사업을 이루는 일이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라고 계책을 내놓았다.

유비는 유장의 항복을 받아내어 익주의 새 주인이 되었다. 형주와 익주를 바탕으로 중원으로 나아가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가 갖추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의 공이 컸음은 물론이다. 그는 촉군태수 겸 양무장군이 되었다. 제갈량과 법정은 익주 통치에 관해 생각이 달랐다. 제갈량은 법가주의 입장에서 법률을 엄격히 제정하려 하였다. 오랫동안 유장의 통치로 질서와 기강이 많이 흐트러졌기에 엄정한 기강 확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반면에 그는 “옛날에 한 고조 유방이 관중에 입성하자 약법삼장(約法三章)을 간소히 시행해서 민심을 얻었다”며 공명의 엄(嚴)과 대조적으로 관(寬)을 주장했다.

그는 민심 수습의 일환으로 허정을 중용할 것을 건의했다. 제갈량은 이미 70을 넘긴 허정의 기용을 반대했다. 이름만 높고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그는 “지금 그를 채용하지 않으면 세상이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중원에까지 이름이 난 허정을 쓰지 않은 것을 보니 유비는 속이 좁은 인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기용을 건의했다. 유비는 허정을 좌장군장사에 임명했다.

그는 촉군태수가 되자 과거에 조그만 은혜를 베풀거나 자신을 헐뜯고 다치게 한 사람에게 반드시 은혜를 갚거나 보복하였다. “법정이 지나치게 제멋대로 하니, 형벌과 상을 내리는 그의 행위를 누르게 해달라”는 상소가 쇄도했다. 제갈량은 “그는 주군을 도와 하늘 높이 날도록 하고 다른 사람에게 또 다시 압박을 받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을 금지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했다. 이를 전해 듣고 태도를 바꾸었다고 한다.

217년 유비에게 조조가 장악한 한중 공략을 건의했다. 한중 공략에 종군했고 직접 요충지인 정군산 탈취 작전을 지휘했다. 한중 공략을 건의하면서 상책으로는 조조를 섬멸할 수 있고 중책으로는 옹주와 양주를 얻을 수 있으며 하책으로는 요충지를 굳게 지켜 지구전을 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중은 천하의 요새로서 조조가 이곳의 방비를 굳건히 하면 익주가 고립되고 중원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가 지휘하는 촉군은 조조군과 여러 달 대치하면서 굳건히 지켰다. 조조는 식량도 떨어져가고 사상자가 속출해 결국 회군하기로 결정했다. 한중 싸움에서 노장 황충은 조조측 하우연의 머리를 베었다. 조조는 후퇴하면서 “나는 본래 유비가 이런 일을 할 수 없음을 안다. 틀림없이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유비가 219년 한중왕이 되자 그를 상서령, 호군장군으로 삼었다. 220년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법정의 도움이 있었기에 유비가 익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법정은 일의 성공과 실패를 정확히 예견하며 기이한 계획과 책술을 가졌지만 덕이 미치지는 못했다”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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