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고(班固, 32-92)는 후한 시대의 저명한 사가이자 문호다. 자는 맹견으로 지금의 섬서성 함양 지역인 부풍군 안릉 출신이다.

부친은 반표이고 백부는 반사로 둘다 저명한 학자다. 그의 가문이 유학세가가 된 것은 큰할아버지 반백 때부터다. 반백은 용모가 뛰어나고 시문에 능했다. 전한 성제때 황제 비서인 중상시에 발탁되었다. 둘째 큰할아버지 반유도 박학하고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인재로 황가의 장서를 교열하는 책무를 담당했다. 부친 반표 역시 유명한 사가였다. 공사에 최선을 다해 백성들과 관리들이 그를 매우 좋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사기후전」을 저술했는데 사기를 지은 사마천의 업적과 중국 역사 서술의 전통을 계승하려 하였다.

반고는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 9세때 글을 지었고 시와 부를 능숙하게 암송했다고 한다. 당대의 저명한 사상가인 왕충은 반표와 학문적으로 가깝게 교류하였다. 어느날 둘이 부친의 서재에서 토론하고 있는데 반고가 끼어들어 제법 그럴사한 말을 하였다. 깜짝 놀란 왕충은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이 아이는 반드시 왕조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며 대성할 재목임을 예견하였다.

그는 16세에 수도 낙양의 태학에 입학해 경서와 전적을 두루 공부하였다. 54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낙향했다. 부친의 죽음은 “젊은 나이에 홀로되었다”는 한서의 표현처럼 커다란 충격이었다. 58년 명제는 친동생 동평왕 유창을 표기장군에 임명하고 수십명의 참모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그는 동평왕에게 주기를 지어 적극적으로 인재를 추천하였다. 이때 추천된 상당수의 인물이 중앙정부에 발탁되었다.

그는 고향에 칩거하며 부친이 미완성으로 남긴 사기후전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한서를 저술하기 시작했다. 62년 “그가 사사로이 나라의 역사를 편찬하고 있다”는 고발사건이 일어났다. 당시의 국법은 사사로운 역사 기술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그는 낙양으로 올라가 자신의 무고를 상소했다. 명제는 그의 원고를 읽어보고는 재능을 높이 평가해 죄를 면하고 사관에 임명하여 관사 편찬 업무를 맡겼다. 이후 정식으로 어명을 받아 한서를 편찬하게 되었다.

한서는 명제의 뒤를 이은 장제 초기인 83년경 완성되었다. 부자 2대의 염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다만 팔표와 천문지는 그의 죽음으로 누이동생 반소와 마속이 보완하여 최종 완성하였다. 한서는 사기와 마찬가지로 정사인 기전체 형식으로 12제기 8표 10지 70열전으로 전 100권으로 구성되었다. 사기에 이어 두 번째 정사에 해당한다. 전한 시대를 대상으로 한 단대사(斷代史)로 고조 유방에서 왕망의 난까지 12대 230년을 기록했다.

한서의 저술은 중국 문화사의 일대 쾌거로 평가된다. 당시 고관과 지식인들은 앞다투어 한서를 읽고 공부하였다. 역대로 뛰어난 역사서이자 학문의 보고로 인정받았다. 범엽은 후한서 반고전에서 “당시에 학자들 중에서 한서를 암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기술하였다. 위진 남북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사대부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고 사마천의 사기를 능가한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유지기는 「사통」에서 한서는 역사를 편찬하는 기본적인 방식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후대의 관학은 사기를 깎아 내리고 한서를 높이 받드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반고 역시 사기를 “사기의 역사 판단이 성인의 그것과 아주 다르다”며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한서가 사기만 못하다는 후대의 평가도 적지 않은데 주로 다음과 같은 논거를 들고 있다. 첫째로 사기는 수천년의 역사를 단지 50만자로 표현한 반면 한서는 200년동안의 일을 80만자로 서술해 말의 간략함과 번거로움이 미치지 못하다는 점이다. 둘째로 사마천은 역사서를 기술하는 혁신적 방식을 창조했지만 반고는 전통적인 방식을 답습했다는 비판이다.

그는 화제 원년 황제의 외삼촌인 두헌의 흉노 정벌에 참여했다. 흉노 정벌에서 돌아온 이후 두헌의 일당이 화제를 살해하려는 역모사건에 연류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결국 옥리의 고문에 못이겨 61세에 억울하게 옥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