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망(王莽 BC 45-AD 23)은 산동성 출신으로 전한을 무너뜨리고 신(新) 왕조를 세웠다. 극단적인 복고주의자로 주나라를 모델로 한 이상적인 왕조 건국을 꿈꾸었다. 그러나 현실과 유리된 정책과 상식을 벗어난 기행으로 왕조의 명을 단축해 실패한 이상주의자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았다.

그의 집안은 전한 후기의 대표적인 권문세가다. 그는 원제의 외가쪽 사람이다. 원제의 황후는 왕정군으로 원후로 불리고 있었다. 그녀의 소생인 유오가 즉위하니 성제다. 20세 즉위해 26년간 제위에 있었는데 조씨 자매의 미모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였다.

그는 원후의 조카로 일찍이 아버지가 죽어 열후가 되지 못해 초년 시절은 불우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원후 덕에 성제 말년에 대사마가 되었다. 애제가 26세에 요절하자 원후는 9세인 평제를 즉위시키고 그가 섭정토록 하였다. 젊은 시절 공손하고 학문에 정진하는 유학자의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조정 안팎의 신망을 받았다. 특히 조카 왕광을 양자로 삼아 친자식처럼 보살펴 관후정대한 선비라는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그는 보정대신의 신분으로 실권을 장악했다. 국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많은 중신을 파면해 권력을 공고히 했다. 조정내 왕망 세력은 황태후에게 그를 안한공에 봉해줄 것을 주청하였다. 그는 봉호만을 받고 봉지는 반납해 욕심 없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AD 2년 가뭄으로 기근이 들자 각지에서 농민 소요가 일어났다. 그는 백만전의 돈과 삼십경의 토지를 내놓고 이재민 구제에 앞장섰다. 황태후는 크게 감동해 2만경의 땅을 하사했지만 정중히 사절했다. 심복들을 각 지방에 보내 친왕망 여론을 조성했다. 그에게 더 많은 봉지를 내려달라고 상주한 사람이 무려 48만명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스캔들에 연루된 자신의 아들 왕우와 왕획을 자살시키는 등 성인 왕망의 이미지를 심는데 주력했다. 어린 평제를 독살해 두살 짜리 유영을 황태자에 앉히고 스스로 가(假)황제의 자리에 올라섰다. 중신들은 그에게 황제가 될 것을 권했다. “왕망은 하늘이 내린 천자” “왕망에게 제위를 양보한다”는 글들이 발견되는 등 황제 등극을 위한 여론전을 폈다. AD 8년 황제가 되어 국호를 신으로 바꾸었다.

새 왕조는 겨우 15년 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한마디로 격동의 15년이었다. 그는 중국 사상 최초로 선양을 통해 황제가 되었다. 국호를 신으로 정한 것은 그가 신야후라는 열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조의 이름과는 달리 그는 철저히 복고주의적 정책을 채택했다. 관제, 관명도 고래의 것을 썼다. 극단적인 형식주의자라 할 것이다. 농업을 중시해 상업은 경시되고 한무제때 채택된 철, 소금의 전매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특히 여러 차례 화폐를 주조해 대전 소전 도 포 등 28종류의 화폐를 발행했다고 한다. 지방과 관명을 계속 고쳐서 세금 징수나 부역 동원 등 행정에 어려움이 발생하자 원래 지명으로 되돌리는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관계가 개선된 흉노와의 관계도 다시 악화되었다. 왕으로 칭하던 흉노의 지도자를 후로 격하시켜 흉노의 원성을 초래했고 국경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었다.

토지와 노비의 매매 금지 정책이야말로 그를 몰락시킨 결정적 패착이었다. 토지 국유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제후 대신 서민들은 계속 토지와 노비를 매매하였다. 무엇보다도 지방호족들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킴으로써 지지세력의 결정적 균열을 가져왔다. 후한을 건국한 광무제 유수가 명문 지방호족 출신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치된 토지와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도 세금을 거두어 조세저항이 심화되고 도처에 유민이 급증했음은 물론이다.

비현실적 정책은 부정부패와 다수 농민의 기근을 초래했다. 자연재해가 계속 발생하자 녹림군 적미군 등 반란세력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18년 장안에 진입한 두오 군에게 살해되어 시신이 갈기갈기 찢기는 수모를 당했다. 그는 주나라를 모방해 이상적 도덕사회를 건설하려 했지만 오히려 세상을 혼란에 빠트렸다. 그의 몰락은 민생을 도외시한 사이비 이상주의자의 예정된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