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조 유방(劉邦, BC 247-BC 195)은 강소성 패현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한나라를 창건한 인물이다.

그의 출생에 관한 일화는 남다르다. 어느 날 생모가 마을의 늪가에서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주변이 컴컴해지고 천둥과 번개가 내리쳤다. 용이 불꽃을 튀기며 생모 몸 위에 엎드려 있었다.

다음 해 봄 그가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용모가 특이했다. 이마가 튀어나오고 콧날은 높아 얼굴이 용의 형상이었다. 왼쪽 허벅지에는 72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젊은 날은 전형적인 백수건달이었다. 하는 일 없이 마을을 쏘다니며 술 먹고 객기를 부렸다.

여후와 혼사도 한편의 드라마다. 여공이라는 부유한 토호가 잘못을 저질러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패현으로 이사를 왔다.

지방 유지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연회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서 유방과 운명적 만남이 이뤄졌다. 여공은 그 자리에서 사위로 맞아들였다.

백수건달에게 과감히 자기 집안의 운명을 베팅한 것이다. 후에 사가들에게 강의잔인(剛毅殘忍) 하다는 평가를 받은 여걸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사건이다.

BC 209년 그는 패공이 되어 소하, 번쾌 등을 거느리고 거병했다. BC 206년 진의 수도 함양에 들어가 진 왕실의 항복을 받아냈다. 당시 실력자인 항우는 스스로 서초패왕이 되고 유방은 파·촉·한중을 다스리는 한왕으로 임명한다. 이후 수년간에 걸쳐 항우와의 천하쟁패를 위한 싸움이 이어졌다.

팽성 전투에서는 열 배나 되는 군대를 가졌음에도 참패했다. 그러나 경포, 팽월, 한신 등이 항우를 버리고 유방 쪽으로 돌아서면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BC 202년 회하의 전투에서 항우를 몰아부쳐 결국 오강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든다. 그는 한의 제위에 오르고 장안을 수도로 정했다.

황제가 된 이후 거의 매년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한왕신이 배신하고 흉노에 항복했다. 진희가 반란을 일으켜 직접 출병해 진압했다. 양왕 팽월, 회남왕 영포 등이 반란을 일으켜 진압하는데 애를 먹었다. 한신도 진희와 공모해 역모를 도모, 처벌했다. 회남왕과의 싸움에서 빗나간 화살에 입은 상처가 재발되어 BC 195년 장안의 장락궁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그가 패권을 차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황제가 된 것은 탁월한 용인술(用人術) 덕분이었다. 천하통일에 기여한 3대 공신으로 소하, 장량, 한신을 들 수 있다. 소하는 동향 출신으로 평생 뜻을 같이한 동지다.

그가 전선에서 싸움을 벌일 때 후방에서 식량과 병기를 챙긴 것은 소하의 몫이였다. 관중 지방을 잘 방어해 유방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준 것도 소하였다. 당태종 이세민이 “유방이 천하를 얻은 것은 장량의 계책 덕분 이었다”고 극찬한 명 참모 장량이 평생 충성을 다한 것은 유방이 보여준 인간적 매력 때문이었다. 한신과 천하를 나눌 것을 건의한 것도 장량이었다. 한신이 군 최고 사령관이 되었기에 항우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한신은 원래 항우의 부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여러 차례 군략을 건의해도 수용되지 않았다. 한신이 유방 쪽으로 돌아선 것이 천하 대세를 갈라놓았다.

그는 오만불손했지만 부하의 주장을 경청했다. 진평의 건의를 받아들여 항우와 참모 범증을 이간질 시키는 계략을 채택했다. 장량이 공천하(共天下) 즉 천하를 함께 나누어 가지는 계획을 내놓았다. 한신과 팽월에게 큰 영토를 줌으로써 반(反) 항우 전선을 구축하는 구상이었다.

그가 천하의 인재들을 누르고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권력의지와 시커먼 마음일 것이다.

리쭝우는 저서 후흑학에서 “한신은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모욕을 참았으니 낯이 두껍기로는 유방을 능가하나 마음을 시커멓게 하는 데는 수련이 모자라 망했다”고 평한 바 있다. “인재를 잘 쓴 것이 천하를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다”는 자평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초당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