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불위(呂不韋)는 전국시대 말, 천하의 거상이었다. 하남성 양책 출신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해 천금의 재산을 모았다. 그의 과감한 베팅이 없었다면 진시황의 천하 통일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조나라 수도 한단에 인질로 가 있는 진 왕족 자초와의 만남이 그를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켰다. 자초를 보자 “이 진귀한 물건은 사 둘만 하다. 당신의 가문을 크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지원 의사를 밝힌다. 자초는 “당신 계획대로 된다면 진나라를 그대와 함께 나누어 가지도록 하겠소”라고 화답한다. 그는 진 태자 안국군의 처 화양부인을 설득하여 자초를 양자로 만든다.

56년 집권한 소양왕이 죽자 안국군이 효문왕으로 즉위했으나 3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자초가 뒤를 이으니 장양왕이다. 장양왕도 3년만에 병사하니 13세 아들 영정이 제왕의 자리에 올랐다. 후일의 진시황이다.

진시황이 사실은 여불위의 소생이라는 설이 분분했다. 사마천이 쓴 사기 〈진시황 본기〉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없지만 〈여불위 열전〉에는 그의 아들로 되어 있다. 자초가 여불위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가 총애한 여인을 보고 한눈에 반해 아내로 삼는다. 그녀는 여불위의 아이를 가진 사실을 숨긴채 진시황을 낳았다고 한다.

영정이 진왕에 오르자 그는 재상이 되어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진왕은 그를 중부(仲父)라 부르며 국사를 위임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발탁했고 군사력을 대폭 강화했다.

진왕이 22세 친정할 때까지 국력 신장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진의 재상인 내가 약소국의 공자들에게 질 수는 없다”며 천하의 인재를 초청했는데 그 수가 삼천을 넘었다. 그는 식객들에게 각각 보고 들은 것을 쓰게 하여 20여만 자에 달하는 〈여씨춘추〉를 출간하였다. 책이 완성되자 수도 함양의 시장 문앞에 진열하고 “전 26권 가운데 한 글자라도 덧붙이거나 깎을 수 있는 자에게 천금의 상을 내리겠다”는 현상금을 걸었다. 〈여씨춘추〉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왕의 중부로서 재상의 지위에 오르고 낙양의 10만 호를 식읍으로 거느렸다. 유일한 근심거리는 진왕의 생모인 태후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었다. 신하로서 태후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모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그는 꾀를 부려 노애라는 젊은이를 태후에게 붙여주었다.

둘 사이에는 두명의 아들이 생겨났고 노애는 태후의 총애에 힘입어 권력을 농단했다. 집 문전에 벼슬하려는 빈객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진왕 9년 태후와 노애의 관계를 왕에게 밀고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노애가 자신의 아들을 옹립하여 나라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진왕은 신속히 노애의 반란을 진압했다. 노애를 참형에 처하고 태후가 낳은 두 아들도 참수하였다. 태후는 유폐시켰고 여불위는 재상의 지위를 박탈해 하남 지방으로 추방하였다.

귀양간 여불위에게 빈객, 호상, 제후 등 많은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반란설이 끊이지 않았다. 친정에 나선지 얼마 안돼 경험이 일천한 진왕으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자신을 왕위로 오르게 한 생부의 문제였다. 냉혹한 진왕은 여불위에게 다음과 같은 친서를 보냈다. “그대가 진나라에 무슨 공로가 있기에 진나라가 그대를 하남에 봉하고 10만 호의 식읍을 내렸소? 그대가 진나라와 무슨 친족 관계가 있기에 중부라고 불리오? 그대는 가족과 함께 촉 땅으로 옮겨 살도록 하시오.” 여불위는 이 편지를 보자 독주를 마시고 죽는다. 진왕 12년(BC225)의 일이다.

그는 대국적인 안목을 가지고 큰 계략을 부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 남다른 수완으로 천하를 좌우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진시황에게 너무나도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된 이유다.

<초당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