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저 능선과 산자락 굽이마다/ 설레임으로 피어난/ 그리움의 바다를 보아라/…/ 그러나 그대는 알리라/ 또 전설처럼 봄이 오면/ 눈물과 설움은 삭고 삭아/ 무량한 그리움으로/ 다시 피어날 것을.
여수 영취산의 진달래는 영변 약산의 진달래와 사뭇 다르다. 약산의 진달래가 가시는 님의 걸음걸음 아래서 사뿐히 즈려 밟히는 ‘이별의 꽃’ 이라면 영취산의 진달래는 모진 삼동을 기어이 딛고 피어나는 ‘만남의 꽃’ 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는 꽃이라면 산행 초입에 있는 김종안의 진달래는 눈물과 설움을 삭혀 무량한 그리움으로 마냥 기다리는 꽃이다.
산에 불이라도 난 걸까. 가을의 단풍보다 더 곱고 맑고 뜨거운 선홍빛. 영취산에 봄물이 오를대로 올랐다. 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푸른 바다와 대비돼 진달래꽃더미가 더욱 눈 부시다. 꽃잎 하나 뜯어 고소한 화전이라도 붙여 탁주 한잔 걸치면 어깨 춤이 덩실, 흥겨운 노랫가락이 절로 뽑아질 것 같다.
영취산(501m)은 여천시 동남방에 위치해 있으며 여수반도에서 제일 높고 자연마을로 에워싸여 있다.
주변에는 기암괴석과 수많은 수종들이 울창하며 산 북방 중간지대의 광할한 면적에는 진달래가 자생군락을 이루고 있다. 20년 이상 된 진달래 수만 그루가 산을 뒤덮고 있다. 창녕 화왕산, 마산 무악산과 함께 남도 3대 진달래 명소로 이름높은 이 산은 높이가 510m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해수면으로부터 바로 솟아 결코 작지 않게 느껴지는데다 골망재 산비탈의 여성미와 봉우재 남쪽 암봉의 남성미가 어우러져 온 산이 연분홍으로 물들면 상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진다.
3월말부터 피기 시작하는 진달래는 4월하순까지 이어진다. 가장 화려한 빛깔을 자랑할 때는 4월10일부터 일주일 간이지만 올 해는 10여일 빨리 개화해 4월초에 농염함을 한 껏 뽐낼 것 같다.
진달래는 산간의 양지에서 자라고 봄에 연분홍색의 꽃이 핀다. 진달래를 두견화, 산척촉, 참꽃이라고 부르며 ‘부끄럼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별명처럼 눈발이 휘날리는 이른 봄에 수줍은 듯 꽃눈을 맺다가 남풍이 조금만 불어와도 이내 꽃망울을 터트리는 가냘픈 꽃이다. 살랑이는 바람만 불어도 연약한 가지와 연분홍 꽃잎이 마구 흔들려 그 모습이 애잔하기까지 하다.
영취산에 오르면 진달래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여수 바다를 함께 조망 할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산허리쯤 오르면 바다가 보이는데 가슴이 탁 트인다. 진달래 군락 역시 이즈음부터 볼 수 있다. 특히 진달래 정원에서 산책하던 태양이 여자만 너머 고흥반도로 가라앉으면 광양만은 여수국가산업단지와 광양제철소의 불빛으로 인해 환상적인 야경을 연출한다.
진례봉 아래의 도솔암을 거쳐 수백개의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영취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재 군락지가 반긴다. 봉우재 남쪽의 암봉은 다른 진달래 군락지와 달리 뾰족뾰족한 기암괴석과 연분홍 진달래가 만들어내는 또렷한 색조가 눈을 황홀하게 한다.
동백처럼 황홀하지도 않고 매화처럼 고고하지도 않지만 유난히 시인들의 영감을 자극해온 진달래. 꽃송이 하나하나는 순박하기 그지없는 시골처녀의 수줍은 모습이지만 무리지어 분홍빛 속살을 드러낼 땐 성숙한 여인의 자태로 다가오는 영취산 진달래. 그리움의 화신인 진달래가 오늘도 영취산 정상에서 그리움의 바다를 향해 꽃 같은 미소를 흘리고 있다.
오는 4월 13일까지 영취산 일원에서 ‘제 15회 진달래 축제’가 열린다. 산신제와 진달래 아가씨 선발대회, 사물판 굿공연등 다양한 볼거리와 굿판이 열려 상춘객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한다.
/최재호기자 lio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