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여백이 너무 멋있었어요.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했습니다. 한국의 고유한 정서와 미를 제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만큼 멋있는 일은 없을 거에요.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한국화를 그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광양의 한국창의예술고 2학년에 재학중인 김혜원(17)양이 한국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고작 1년 전이다. 1학년 2학기 축제 때 ‘한국화의 미’를 주제로 미디어아트를 제작해 전시했는데, 여기서 ‘느낌’이 왔다. 한국창의예술고는 1학년 때 여러 과를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모르는 작품들도 보고 관련 책을 읽고 자신도 모르게 한국화에 매료된 것이다.

“도립미술관이 광양에 들어서 너무 즐겁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 한국화를 보고 있죠. 고 허백련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받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에 그린 그림인데, 너무 밀도가 높아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정성과 세세함이 남달랐어요.”

경기도 의왕에서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 김화중(51)씨와 광양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머니 정영아(49)씨의 남매 중 둘째인 김양은 방학중에는 경기도 분당의 미술학원을 다니며 실력을 높여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한국화를 전공하는 학생들 가운데 우선 10% 안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원래 미술은 취미였고, 정확한 진로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같은 중학교 선배가 자신의 예술고 진학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목표나 미래를 확실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머니가 권하기도 하고 해서 미술 선생님을 찾아가 예술고로 진로를 정하게 됐죠.”

김양은 자연 소재의 조형적 특징을 잘 표현하고, 한국화에 자부심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급하게 미술로 예술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가까스로 합격했지만, 한 때는 쟁쟁한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자신감이 크게 떨어지기도 했다. 10년 넘게 준비한 학생과 남다른 재능이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예술고 진학을 후회한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하나씩 미술을 배워가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입체조형 수업시간에 구체 만들기 과제에서 친구들에 비해 조금 다른 방법으로 구체를 만들었어요. 일일이 원을 그려 이어 붙인거죠. 선생님께서 훌륭한 예술가의 태도라고 칭찬하시면서 후배들이 보고 배울 수 있게 전시하겠다고 하셔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좀 시간이 걸리지만 무엇인가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거에요.”

처음에는 조소에 관심을 갖다가 뒤늦게 한국화를 전공한 김양을 위해 학교에서는 한국화 교사를 새로 채용하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학교에서 매주 8시간씩 수업을 듣고, 수업시간 외에도 5시간씩 추가로 개인지도를 받고 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더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김양은 잘 알고 있다.

“도립미술관이 개관하고, 수묵비엔날레도 개최되는 등 여러 조건들도 저를 성장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그림 외에도 학교 내 글쓰기 대회, 과학창의력 대회 등에도 참가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지난해 여름방학 때 벽화그리기 재능기부 봉사를 했는데 더운 날씨, 소나기 등으로 힘들었지만 나중에 보니 주민들이 너무 좋아하셔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3D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배워 한국화에 영화, 디자인 등 다양한 매체와 다양한 방법을 접목시켜 생동감 넘치고 더 아름다운 한국화를 그리고 싶다는 것이 김양의 목표다.

“전남의 남종화의 명맥을 다시 이어나가 한국화를 세계로 뻗어나가는 또 다른 흐름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어요. 다만 꿈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무엇인가 가져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강박이나 압박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것을 더 열심히 해나가면 최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