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일본에 갔을 때다.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한 정거장을 남겨두고 꽤 오랜 시간 버스가 움직이질 않았다. 차량이 많은 대도시가 아니었기에, 한국의 버스 운행 체계에 익숙했던 나는 슬슬 짜증이 났다. 그런데 잠시 후, 버스가 멈춘 이유를 알았을 때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버스가 멈춘 이유는 지체 장애인으로 보이는 한 승객 때문이었다. 얇은 플라스틱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그 승객은 서너 명의 승객이 먼저 오른 뒤 힘겹게 몸을 움직여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얼핏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 장면이 내 뇌리에 박힌 건 버스 기사와 다른 승객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우선 버스 기사는 그 승객이 요금을 내고 자리에 완전히 앉아 편안한 자세를 잡을 때까지 출발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버스에 타고 있던 다른 승객들도 음악을 듣거나 심지어는 책을 보는 등 각자 할 일에 열중했을 뿐, 장애인 승객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후 버스는 모든 승객이 완전히 자리를 잡고 기사의 안내 멘트와 함께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다. 마지막 목적지로 향하는 약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부끄러움과 놀라움이 동시에 몰려 들었다.

먼저 부끄러움은 내 직업과 관련이 있다. 장애인의 직업 재활과 고용 촉진을 위해 설립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근무하면서 수많은 장애를 경험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가진 승객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할 3분을 참지 못하고 짜증이 났던 순간을 생각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반면에 일본의 일반 승객들과 버스 기사의 장애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배려가 정말 놀라웠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모두 장애인 승객이 자신 때문에 버스가 지연된다는 미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장애인이 걸어가기에 먼 거리를 가는 데 버스를 이용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특별하게 생각한 것은 나뿐이었다. 무엇보다 장애인이 주위의 편견으로 인해 장애 이상의 심적 고통과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와 배려가 부러울 뿐이었다.

2018년 지금, 한국은 어떠한가. 장애인의 취업과 장애인을 고용한 기업을 지원하는 공단에서 근무한 지 30년이 가까워 온다. 처음 입사했을 때와 비교하면 근무 현장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이 놀라울 정도로 변화됨을 느낀다. 하지만 일본의 어느 소도시에서 일어난 잠깐의 경험은 결국 장애라는 것은 우리 사회 작은 부분, 일상생활에서까지 장애인 당사자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그에 대한 배려가 선행되어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결국은 사람들의 의식, 즉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으로 오는 29일부터 시행되는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의무화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개정되는 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1년에 1회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교육 내용은 장애의 정의 및 유형에 대한 이해, 직장 내 장애인 인권, 차별 금지, 관련 법규 등이다.

직장에서 교육받은 국민들이 그들의 가족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장애에 대한 이해와 인권 등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가정에서 장애에 대한 얘기가 무겁지 않은 주제로 다뤄졌으면 좋겠다.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작은 홀씨가 민들레 되듯 장애가 사회 곳곳에서, 일상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