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홍 수필가·목사] 무엇을 위한 속도입니까
2018년 05월 08일(화) 00:00 가가
도로에는 차선이 있다. 자동차의 소통을 위함이요, 서로를 위한 안전 장치이다. 사람들에게도 각자 주어진 길이 있다. 각자 앞에 놓인 그 길을 정해진 속도로 가면 서로가 안전하며, 목적지까지 무사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운전석에만 앉으면 마음이 급해진다. 난폭해지기도 한다. 정해진 차선과 법규에 따른 표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곡예사처럼 선을 넘나드는 것은 예사요, 어떻게 하면 더 빨리 갈 수 있을까 속도로 넘나든다. 제 길, 제 속도, 제 질서대로 가고 있는 운전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란한 솜씨를 뽐내며 차선을 바꿔 달린다. 차선을 바꾸겠다는 표시등도 켜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달린다. 다름 아닌 내 고장 광주의 이야기다.
자동차 운전은 흔히 흐름이라고들 한다. 그러므로 남들이 흐르는 대로 같이 흘러 주어야 소통이 원활해진다.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교통의 흐름이란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정해진 속도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저속 차선에서 규정된 속도를 지키며 운전하면 어느새 뒤에서 빵빵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도 내 차선에서 내 속도로 그냥 가고 있으면 어느 틈에 옆 차선으로 치고 나가며 눈을 부라리고, 하얀 눈을 뒤집고, 나를 흘겨보며 지나가는 이들이 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점잖은 편에 속한다. 심지어 소리를 질러 욕설을 퍼붓고 내 차를 받을 듯이 스치며 지나가기도 한다.
도로에 자동차를 가지고 올라탄 현대인들은 마치 속도의 덫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속도를 행복의 필수적인 가치로 여기는 것 같다. 우리나라 도로는 전국이 사통팔달이다. 그리고 자동차도 갈수록 그 성능이 높아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느슨하면 경쟁력이 없고 낙오된다는 것이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수칙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스마트폰 세대나 디지털 세상이 모두 다 그렇다. 속도는 경쟁을 붙여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현역에 있을 때 스위스에서 일곱 분의 목사님들이 시무하는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20여 일 동안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 관광과 휴식을 갖는 일정에 동참했다. 총회 선교기관에서 후원해준 차량으로 길을 떠났다. 바쁜 일정을 끝내고 한국을 소개하는 시간이니 가면서 구경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가야 하는데, 여느 때 처럼 쉬지 않고 속력을 내어 달렸다. 목사님 한 분이 쉬어가자고 했다. 그러자 운전을 맡은 분은 차에 속도가 붙었을 때 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나 빨리 도착했음을 자랑하던 그는 운전을 하고 와서 피곤하니 먼저 가서 자야겠다며 혼자 일어나 숙소로 가버렸다.
손님들의 대부분은 한국이 처음인지라 국토를 종단하면서 한국의 역사, 지리나 환경 이야기 들을 나누며, 피차 얼굴도 익히고 일정들을 소화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에 여유를 주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경기도에서 거제도 6·25 포로수용소까지 거의 쉼 없이 달려 왔으니, 쉼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은 셈이었다. 그 때 한 분이 편치 않은 인상으로 ‘무엇을 위한 속도입니까?’라며 묻기에 사과드리느라 진땀을 뺀 적이 있었다.
팔십을 직전에 두고 광주에 내려와 살면서 요즈음은 50여 년 전 헤어졌던 고등학교 동창들을 하나하나 찾으며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친구가 자동차를 없앴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흥분한다. 그 친구 역시 나처럼 평생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한 제법 성공한 친구다. 광주에 내려와 차를 조심스럽게 운전하면 무엇 하느냐고 하소연이다. 와서 들이받는다는 표현이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러랴 싶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다. 그 친구의 이야기가 바로 내 일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자동차가 무엇일까? 우리를 목적지까지 옮겨주는 도구다. 그러나 그 유익한 도구는 제한 속도를 무시하고 달릴 때, 고장일 때, 제 길이 아닌 여러 차선을 그것도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마치 재주나 부리듯 넘나들며 끼어들 때는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살상 도구가 된다는 것을 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앞에 놓인 길을 안전 속도에 맞춰 가는데, 왜 그것밖에 못 달리느냐고 비아냥거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다. 우리는 가야할 목적지가 있고, 그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두가 함께’ 가야 한다. 이 차선, 저 차선으로 함부로 넘나듦이 없이 남의 길에 솔깃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길을 내 속도로 가야 한다. 값비싼 외제차를 타면 무엇 하며, 성능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무엇 할꼬. 정해진 법규를 지키는 것이 곧 생명 보존이거늘.
현역에 있을 때 스위스에서 일곱 분의 목사님들이 시무하는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20여 일 동안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 관광과 휴식을 갖는 일정에 동참했다. 총회 선교기관에서 후원해준 차량으로 길을 떠났다. 바쁜 일정을 끝내고 한국을 소개하는 시간이니 가면서 구경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가야 하는데, 여느 때 처럼 쉬지 않고 속력을 내어 달렸다. 목사님 한 분이 쉬어가자고 했다. 그러자 운전을 맡은 분은 차에 속도가 붙었을 때 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나 빨리 도착했음을 자랑하던 그는 운전을 하고 와서 피곤하니 먼저 가서 자야겠다며 혼자 일어나 숙소로 가버렸다.
손님들의 대부분은 한국이 처음인지라 국토를 종단하면서 한국의 역사, 지리나 환경 이야기 들을 나누며, 피차 얼굴도 익히고 일정들을 소화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에 여유를 주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경기도에서 거제도 6·25 포로수용소까지 거의 쉼 없이 달려 왔으니, 쉼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은 셈이었다. 그 때 한 분이 편치 않은 인상으로 ‘무엇을 위한 속도입니까?’라며 묻기에 사과드리느라 진땀을 뺀 적이 있었다.
팔십을 직전에 두고 광주에 내려와 살면서 요즈음은 50여 년 전 헤어졌던 고등학교 동창들을 하나하나 찾으며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친구가 자동차를 없앴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흥분한다. 그 친구 역시 나처럼 평생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한 제법 성공한 친구다. 광주에 내려와 차를 조심스럽게 운전하면 무엇 하느냐고 하소연이다. 와서 들이받는다는 표현이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러랴 싶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다. 그 친구의 이야기가 바로 내 일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자동차가 무엇일까? 우리를 목적지까지 옮겨주는 도구다. 그러나 그 유익한 도구는 제한 속도를 무시하고 달릴 때, 고장일 때, 제 길이 아닌 여러 차선을 그것도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마치 재주나 부리듯 넘나들며 끼어들 때는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살상 도구가 된다는 것을 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앞에 놓인 길을 안전 속도에 맞춰 가는데, 왜 그것밖에 못 달리느냐고 비아냥거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다. 우리는 가야할 목적지가 있고, 그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두가 함께’ 가야 한다. 이 차선, 저 차선으로 함부로 넘나듦이 없이 남의 길에 솔깃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길을 내 속도로 가야 한다. 값비싼 외제차를 타면 무엇 하며, 성능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무엇 할꼬. 정해진 법규를 지키는 것이 곧 생명 보존이거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