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4주기를 맞이한 세월호 참사는 설비의 안전, 안전 관리, 사고 대책에 있어 거의 무방비한 사고였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각종 의혹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2011년 3월 원전 역사상 가장 큰 사고가 이웃나라인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했는데, 이 문제를 대처하는 모습은 커다란 인명 사고만 없을 뿐 사고와 대처 미흡성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현재 우리나라 원전에서 안전에 가장 큰 문제로 지목할 수 있는 대목은 사용후핵연료다. 물이 가득 찬 수조에 보관하는 사용후핵연료의 임시 저장 실태는 취약한 것으로 누차 지적됐으나 개선을 위한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의 경우 지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기간 동안 조성경 위원의 질의에 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제시했지만, 여기엔 ‘테러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는 답변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내 25개 원전 중 한 곳의 임시 저장조에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시 전체 원자로에 있던 핵연료와 맞먹는 양이라면 우리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더욱이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고를 둘러싼 벽의 두께가 격납 용기(돔 모형의 콘크리트)의 3분의 1수준으로 얇아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19일 고리 1호기 퇴역식에서 국가 안보 차원의 안전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의지가 여전하다면 정부는 곧바로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조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최근 원전에서는 각종 은폐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한빛 3호기 증기발생기 내부에서 발견된 망치, 격납 용기 콘크리트 공극 문제, 격납 용기 철판 부식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은폐 문제는 얼마나 더 잠복해 있는지 내부 고발에 의하지 않고는 규명이 불가능하다.

최근 망치 발견으로 교체된 증기 발생기의 경우 두산중공업에서 영광군 지역민에 사과문을 발표했는데, 관계 당국과 사업자는 ‘망치가 발견된 것은 사과했지만 어떻게 들어간 것인지 모른다’고 했다. 사과의 진정성도 떨어질 뿐더러 원인 규명도 없이 문제를 덮겠다는 것이어서 걱정이 앞선다.

범죄 행위에 가까운 이러한 행위에 사법경찰권까지 확보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제대로 조사해서 밝히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직무 유기에 해당된다. 영광 주민들의 불안을 감안하면, 원안위는 사법경찰권을 발동해서라도 증기 발생기에 망치가 들어간 원인을 반드시 규명해야한다.

원안위는 지난해 7월 영광 한빛원전 격납용기 콘크리트 공극 문제에 대해 “사업자가 문제가 없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여 원안위는 검토 중에 있다”고 발표했다.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국가기관, 즉 제3자적 전문가의 입장인데, 원안위는 마치 사업자 대변인 노릇을 하는 것처럼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원전 안전 관련 발표를 원안위 사무처 공무원들에 의해 보도자료 형태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들은 원전 설비나 안전 관련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사 당사자인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전문가들이 직접 조사 내용을 발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원자력안전기술원 전문가들의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사무처가 국민에게 보도자료 형태로 발표하는 것은 관료화된 보고 체계다.

국민은 고도화된 전문가의 3자적인 의견과 안전을 위한 책임있는 규제 조치 내용을 듣고 싶은 것이지 비전문가인 공무원의 보도자료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님을 원안위는 알아야 한다. 이 보도자료에는 당연히 기술 책임자와 실명은 거론되지도 않는다. 결과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을 발표만 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제3자적 전문가에 의해 안전에 대한 책임 있는 입장과 의견을 들을 수 없게 되는 동시에 원안위 스스로가 신뢰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