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 은빛 억새·금빛 바다 … 어느새 충만한 가을
2013년 11월 07일(목) 00:00 가가
뽀얀 속살 가득 바다 품은 ‘백합’
수천년 세월이 그린 예술품 ‘격포’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생태공원’
산·들·바다 … 다 있는 가을 여행
수천년 세월이 그린 예술품 ‘격포’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생태공원’
산·들·바다 … 다 있는 가을 여행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차다. 한여름을 달리고 가을을 넘어 겨울이 오고 있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외치고 나니 이제 2013년의 끝이 보인다.
한해를 달려오느라 지쳐버린 몸, 찬바람 앞에서 서니 으슬으슬 힘겹다. 이럴 땐 따뜻한 밥 한끼가 보약이다. 맑은 국물이 더해진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부안으로 달린다. 변산반도로 백합을 맛보러 달리는 길이다. 조선시대 수라상에 오르기도 했던 백합은 영양가가 풍부하고 소화가 잘되는 부안의 특산품이다.
3면이 바다와 접한 부안 변산반도는 갯벌의 품에 안겨있다. 당연히 갯벌에서 나는 조개류를 재료로 한 음식이 발달했다.
격포항 인근에는 백합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있다. 풍성한 맛을 보기 위해 백합정식을 시킨다.
통통한 갑오징어가 새콤한 무침이 되어 먼저 상에 오른다. 갑오징어로 입맛을 돋우고 나니 진짜 주인공인 백합죽·백합찜·백합탕으로 차례차례 등장한다.
부안을 대표하는 백합죽으로 속을 달래본다. 백합죽을 쑥 떠서 입에 넣는다. 녹두의 고소함 뒤에 백합의 담백함이 은은하게 퍼져난다. 녹두와 야채가 어우러진, 특별할 것 없을 것 같지만 특별한 맛이다.
은박 호일에 싸여나온 백합찜은 크리스마스 선물 같다.
조심조심 호일을 벗기면 ‘백가지 무늬를 가지고 있다’는 백합이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백합찜은 뽀얀 속살도 속살이지만 백합이 머금고 있는 진주빛 국물이 진국이다. 짭조름하면서 담백한 국물을 조심조심 비워낸다. 별미 중에 별미다. 백합의 영양가를 마신 뒤에는 알맞게 간이 베어진 조갯살이 기다린다.
보글보글 말갛게 끓어오르는 백합탕은 백합찜보다는 조금 더 강렬하고 시원한 맛을 낸다. 얼큰하니 술안주로도 손색없다. 이리저리 젓가락을 옮기며 백합의 다양한 맛을 음미한다.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은 덤. 알이 차다 말아서 손님들에게 팔기 미안하다며 게장 한 접시를 내어온다. 주인장 눈에는 부족한 찬이지만 식객에게는 근사한 찬, 이내 밥그릇이 쓱쓱 비어진다.
백합 정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비로소 바다 풍경이 보인다. 오랜만에 찾은 격포항의 채석강은 기억과 많이 달라져있다.
중국의 채석강만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닭이봉 일대의 층암절벽과 바다가 만든 풍경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시시각각 그 모습도 다르다. 물이 들고 날 때, 해가 뜨고 질 때 다양한 얼굴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격포항에서 등대까지 방파제를 걷는다. 아니 바다 위를 걷는다. 파도가 철썩이며 바다를 몰고 온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가 바위에 부셔졌다 다시 밀려나가기를 반복한다.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너머로 바위 위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이 또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다. 바다를 가로질러 나가는 고깃배는 강태공들과 함께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바다의 산책을 끝내고 길을 거슬러 부안 자연생태공원으로 달려간다. 똑같은 길이지만 그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있던 갯벌에 바닷물이 그득 찼다. 햇볕이 부서지면서 눈이 부시다. 듬성듬성 바위산을 물들이고 있는 단풍도 탄성을 이끌어 낸다.
계절이 급격히 바뀌는 11월. 자연생태공원의 황량한 첫 인상과 달리 너른 들판 곳곳에 보물같은 자연이 숨겨져 있다. 가장 먼저 색색의 코스모스가 눈에 띈다. 정신없이 계절을 흘려보내느라 코스모스를 잊고 있었다.
“아직 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 하늘하늘 채 지지 못한 코스모스가 바람을 따라 사람들을 부른다. 찬바람과 함께 지워질 풍경 앞에 한참 넋을 놓고 있다. 코스모스의 마중을 받고 들어선 길 너머에는 갈대가 서걱거리고 있다. 키를 넘어 껑충 서있는 갈대 사이를 거닐면서 잠시 사색에 빠져본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뉘엿뉘엿 해가 기울어진다. 갈대 사이로 빨갛게 퍼지는 가을 저녁이 새색시의 볼처럼 곱다.
바다로 떨어지는 가을해와 작별을 하기 위해 급히 생태공원 앞 산책길로 자리를 옮긴다. 눈 앞에 너른 갯벌이 보인다. 람사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줄포만의 갯벌이다. 고요하지만 생명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생명의 보고다.
속살을 드러낸 줄포의 갯벌 위로 해가 진다. 풍성했던 부안의 여행도 조용히 저물어 간다.
/글·사진=김여울기자 wool@kwangju.co.kr
한해를 달려오느라 지쳐버린 몸, 찬바람 앞에서 서니 으슬으슬 힘겹다. 이럴 땐 따뜻한 밥 한끼가 보약이다. 맑은 국물이 더해진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부안으로 달린다. 변산반도로 백합을 맛보러 달리는 길이다. 조선시대 수라상에 오르기도 했던 백합은 영양가가 풍부하고 소화가 잘되는 부안의 특산품이다.
격포항 인근에는 백합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있다. 풍성한 맛을 보기 위해 백합정식을 시킨다.
통통한 갑오징어가 새콤한 무침이 되어 먼저 상에 오른다. 갑오징어로 입맛을 돋우고 나니 진짜 주인공인 백합죽·백합찜·백합탕으로 차례차례 등장한다.
부안을 대표하는 백합죽으로 속을 달래본다. 백합죽을 쑥 떠서 입에 넣는다. 녹두의 고소함 뒤에 백합의 담백함이 은은하게 퍼져난다. 녹두와 야채가 어우러진, 특별할 것 없을 것 같지만 특별한 맛이다.
조심조심 호일을 벗기면 ‘백가지 무늬를 가지고 있다’는 백합이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백합찜은 뽀얀 속살도 속살이지만 백합이 머금고 있는 진주빛 국물이 진국이다. 짭조름하면서 담백한 국물을 조심조심 비워낸다. 별미 중에 별미다. 백합의 영양가를 마신 뒤에는 알맞게 간이 베어진 조갯살이 기다린다.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은 덤. 알이 차다 말아서 손님들에게 팔기 미안하다며 게장 한 접시를 내어온다. 주인장 눈에는 부족한 찬이지만 식객에게는 근사한 찬, 이내 밥그릇이 쓱쓱 비어진다.
백합 정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비로소 바다 풍경이 보인다. 오랜만에 찾은 격포항의 채석강은 기억과 많이 달라져있다.
중국의 채석강만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닭이봉 일대의 층암절벽과 바다가 만든 풍경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시시각각 그 모습도 다르다. 물이 들고 날 때, 해가 뜨고 질 때 다양한 얼굴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격포항에서 등대까지 방파제를 걷는다. 아니 바다 위를 걷는다. 파도가 철썩이며 바다를 몰고 온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가 바위에 부셔졌다 다시 밀려나가기를 반복한다.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너머로 바위 위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이 또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다. 바다를 가로질러 나가는 고깃배는 강태공들과 함께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바다의 산책을 끝내고 길을 거슬러 부안 자연생태공원으로 달려간다. 똑같은 길이지만 그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있던 갯벌에 바닷물이 그득 찼다. 햇볕이 부서지면서 눈이 부시다. 듬성듬성 바위산을 물들이고 있는 단풍도 탄성을 이끌어 낸다.
계절이 급격히 바뀌는 11월. 자연생태공원의 황량한 첫 인상과 달리 너른 들판 곳곳에 보물같은 자연이 숨겨져 있다. 가장 먼저 색색의 코스모스가 눈에 띈다. 정신없이 계절을 흘려보내느라 코스모스를 잊고 있었다.
“아직 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 하늘하늘 채 지지 못한 코스모스가 바람을 따라 사람들을 부른다. 찬바람과 함께 지워질 풍경 앞에 한참 넋을 놓고 있다. 코스모스의 마중을 받고 들어선 길 너머에는 갈대가 서걱거리고 있다. 키를 넘어 껑충 서있는 갈대 사이를 거닐면서 잠시 사색에 빠져본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뉘엿뉘엿 해가 기울어진다. 갈대 사이로 빨갛게 퍼지는 가을 저녁이 새색시의 볼처럼 곱다.
바다로 떨어지는 가을해와 작별을 하기 위해 급히 생태공원 앞 산책길로 자리를 옮긴다. 눈 앞에 너른 갯벌이 보인다. 람사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줄포만의 갯벌이다. 고요하지만 생명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생명의 보고다.
속살을 드러낸 줄포의 갯벌 위로 해가 진다. 풍성했던 부안의 여행도 조용히 저물어 간다.
/글·사진=김여울기자 wool@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