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의 이름에는 그의 중요한 특징이 담긴다. 일정한 특징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름부터 얻는 사람의 경우야 조금 다르지만, 나무처럼 사람과 함께 오래 살면서 생긴 이름이라면 그 안에 사람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기게 마련이다. 프랑스의 언어생태학자 루이-장 칼베는 “모든 것은 명명(命名)에서 시작된다”라고 했다. 이름은 대상에 대한 인식 태도의 직접적 반영이라는 이야기다.

우리의 경우, 나무 이름의 유래와 관련한 정확한 기록이 별로 많지 않아 대개의 나무 이름에는 둘 이상의 불명확한 이야기가 전한다. 이 즈음 하얀 꽃을 무더기로 피우는 이팝나무의 이름에도 여러 이야기가 있다. 우선 이팝나무의 꽃이 입하(立夏) 즈음에 피어나기 때문에 ‘입하목’ ‘입하나무’라 부르다가 이팝나무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쌀밥을 뜻하는‘이밥’이나 ‘이팝’에서 유래됐다고 보는 이야기도 있다. 나뭇가지 위에 하얀 꽃을 무성하게 피우는 이팝나무의 꽃차례가 마치 하얀 사발 위로 소복이 담은 쌀밥, 즉 고봉밥을 연상하게 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이 나무를 ‘눈꽃나무’라고 부른다. 같은 꽃차례를 보고 우리는 ‘밥’을, 다른 나라에서는 ‘눈꽃’을 떠올린 것이다.

이팝나무와 비슷하게 조팝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도 있다. 낮은 키로 자라는 나무의 가지마다 앙증맞은 하얀 꽃을 줄줄이 매단 나무의 모습이 마치 꽃방망이를 연상하게 하는 나무다. 영어권에서 이 나무의 이름을 ‘새 색시의 화환’이라고 부르는 게 금세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생김새를 가진 나무다. 우리가 이 나무를 조팝나무라고 부르는 건, 하얀 꽃송이의 안쪽에 촘촘히 돋아난 노란 꽃술이 마치 좁쌀을 섞어 지은 조밥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나무를 바라보며 사람들마다 연상하는 게 전혀 다르다. 어떤 환경, 어떤 문화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나타나는 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나무에 따라서는 세계 어디에서나 같은 느낌의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회화나무가 그렇다. 곧은 줄기가 기개 있게 솟아올라,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이 뻗어 내는 가지를 보고, 서양 사람들은 ‘학자나무’(Scola Tree)라 했고, 우리는 ‘선비수’ 혹은 ‘학자수’라고 불렀다. 물론 우리의 옛 선비들은 회화나무에서 꽃이 피는 걸 보고 과거 시험 철이 다가온다는 걸 알아챘다는 남다른 의미까지 덧붙었지만, 서양과 우리의 명명 근거에 큰 차이는 없다.

나무 이름을 보면 무엇보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이팝나무나 조팝나무에서 밥을 연상한 건, 무엇보다 우리가 가난하게 살았던 굶주림의 시절을 오래 견뎌 왔다는 방증이다. 배부르게 먹고 사는 걸 가장 소망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늘의 뜻에만 기대어 살아야 했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곁에서 피어나는 하얀 꽃을 보면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쌀밥을 떠올렸고, 낮은 키로 피어나는 조팝나무 하얀 꽃에서는 꽃송이 가운데에 돋은 노란 꽃술을 보면서 맛난 조밥을 떠올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나무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나무 이름도 있다. 역시 먹고 사는 게 가장 절박했던 우리 살림살이를 그대로 대변하는 나무 이름인데 진달래와 철쭉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두 꽃은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둘 중 하나는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계절에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나서, 따 먹으며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다른 하나는 꽃송이에 약간의 독이 들어 있어 잘못 먹으면 배탈이 났다.

그래서 먹을 수 있는 꽃을 피우는 진달래는 ‘참꽃’이라 불렀고 먹을 수 없는 철쭉은 ‘개꽃’이라 했다. 먹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 사람들은 진달래에 ‘참’이라는 최고의 호칭을 붙였고, 진달래보다 화려하게 피어나는 철쭉에는 ‘가짜’라는 뜻의 ‘개’를 붙였다. 배고픈 시절에 화려함이나 아름다움은 별무소용(別無所用)이었다는 이야기다.

나무 이름에는 이 땅의 삶과 역사가 들어 있다. 나무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결국 사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은 사람살이의 역사를 짚어 나가는 길이다. 길섶에 피어난 작은 꽃들의 이름을 더 간절히 부르게 되는 까닭이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