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허리가 굽은 채 지팡이를 짚고 불편하게 걷고 계시는 할머니들을 보면,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에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돌이켜보면 지금부터 45년 전 일이다. 시골에서 초·중등 부부 교사로 근무할 때다. 우리 장남을 키울 여건이 안돼서 갓난이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광주에 사시는 시부모님께서 지극 정성으로 키워주셨다. 금쪽 같은 손자를 아플세라, 다칠세라 단 한순간도 소홀함이 없이 잘 돌보셔서 구김살 없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광주에 올라가면 식사 준비도 성심성의껏 해 주셨다. 음식 솜씨도 일품이셔서, 맛깔스럽고 영양 만점인 음식들이 입속에서 살살 녹았다. 맛있는 밥상을 받을 때마다 늘 고맙고 송구스러웠다. 다시 시골로 내려갈 땐 좋은 재료와 양념으로 김치, 마른 반찬, 장조림, 찌개 등 한동안 반찬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음식을 챙겨주셨다. 아직도 어머님의 정성이 담긴 음식이 많이 생각나고 그립다.

둘째 아들이 중학교 들어갈 무렵, 광주로 이사해 어머니를 모시고 한 집에서 살았다. 어머님의 음식 솜씨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전수된 것 같다. 초봄이 되면 서울에서 대학교 다니는 큰 외손자가 좋아하는 김 부각을 만들어 달라고 하셔서 4년 동안 만들었다. 또 설 쇠고 서울 사는 셋째 아들 주려고 장 담그고 메주를 갈라서 간장과 된장을 서울로 부친다. 가을에도 셋째 아들 주려고 고추장을 담그는데, 큰 주걱으로 재료를 섞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어머님의 주부 실습 덕분에 이젠 살림 고수가 되지 않았을까? 시행착오를 거쳐 정성어린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하는 길만이 진정한 주부의 손 맛이 나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자식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어머님의 허리 통증이었다. 허리가 아프심에도 불구하고 장남 손자를 키워달라고 해서 정말 송구스럽고 면목이 없었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실 때마다 어머님을 모시고 한의원가서 침도 놔드리고 한약이랑 보약도 지어드렸지만 잘 낫지 않으셨다. 여기저기 팔방으로 허리에 좋은 단방약을 알아보기도 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시골에 살고 있는 큰딸 집에서 2년간 사셨다. “시골은 공기도 맑고 할머니들도 많고 큰딸이랑 살면 오죽 좋아하실까?”라고 생각한 사위의 배려였다. 한 달에 한 번씩, 명절이나 생신, 어버이날이면 우리 장남 내외, 차남 내외가 어머님 생활비와 영양제, 간식 등을 챙겨서 어머님을 찾아 뵙곤 했다. 우리들이 돌아가려고 일어서면 “자고들 가지.” 하시면서 말리신다. 혈육이 당기신 모양이다. 자식들을 몰라보시니까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이 안타까웠다. 치매는 참 고약한 병이다.

치매가 심해지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다. 정상적인 언어 소통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병원 입원실에 오가는 간호사들을 보시곤 “절에 웬 처자들이 저렇게 많이 왔다 갔다 한다냐?” 장남이 와도 못 알아보시고 “우리 큰오빠 왔네.” 하신다. 원래 성품이 유순하시고 인정이 많으신 분이라서 항상 웃으시니까 간호사들이 “이영임 할머님은 귀여우시다.”고 놀리곤 했다.

어머님이 젊으셨을 땐 줄줄이 어린 육 남매를 키우시면서 집안 살림이 궁핍하여 밥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쌀 한 톨이라도 자식들 입에 넣으려고 물로 배를 채우시면서 그렇게 모진 세월을 살아오셨다고 한다. 이젠 자식들이 살 만해서 어머님 모시고 여행도 가고, 용돈도 많이 드리고, 좋아하신 음식도 맛있게 만들어 드리고 싶은데 곁에 계시지 않으니 생각할수록 아쉽다.

해마다 음력 11월은 시부모님 기일이다. 살아 생전에 못 다한 효도를 제사라도 정성껏 차리려고 음식을 골고루 장만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지낸다. 어머님,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