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穀雨)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옛날부터 곡우에 내린 비는 농사에 이롭다 하여 이런 절기를 만들었을 것으로 본다. 학창시절 배운 남구만 선생의 농사와 계절의 중요성을 알리는 시조가 떠오른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나 갈려 하나니”라는 구절이다.

최근 어느 대중가수가 보릿고개를 소재로 노래를 불러 인기를 얻고 있지만, 그 가사를 이해하고 동의하는 세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문전옥답의 개념을 아는 이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골에 땅이 있어도 농사를 짓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이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8㎏에 달한다고 한다. 매년 연례적으로 쌀이 남게 되자 정부 당국에서는 금년과 내년에 각각 5만ha를 목표로 쌀 생산 조정제를 계획하여, 이달 20일까지 농업인들의 신청을 받고 있다. 하지만 농업인들은 최근 시중 쌀값 상승과 재배할 대체 작목 등을 쉽게 찾지 못한 탓에 계획의 절반 정도만이 신청하고 있는 등 추진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쌀을 원조할 수 있는 식량 원조 협약(FAC)에 가입하여 중동 지역과 아프리카 등에 5만 톤의 쌀을 원조할 계획을 갖고 있다.

올해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민소득 증가와 경제 발전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국민소득 증가와 산업의 발전이 진행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그늘진 곳은 없는지 다시 한 번 뒤돌아 볼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이다.

경제 발전과 함께 국가 정책이 수출에 많은 무게 중심이 쏠린데다 국정 최우선 과제로 여겨 체결했던 자유무역협정(FTA) 과정에서 우리의 농업이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들을 상실하지 않았는지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여러 선진국에 비하여 우리 농업에 지급되는 보조금 지원 수준은 하위권에 맴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과거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사이먼 구츠네츠 는 “공업 발전을 통해 중진국까지는 도약할 수 있을지라도 농업의 발전 없이는 선진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역설했는데, 매우 공감되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한 국가 가운데 식량의 자급을 달성하지 않고 선진국으로 가는 나라는 오직 유럽의 산악 국가인 스위스가 유일하다.

작금에 국민총생산(GDP)에서 농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상 크지 않다. 그렇지만 농업의 공익과 다원적인 가치는 국민들의 안전한 먹거리를 책임지는 식량 안보를 시작으로 환경 보전과 홍수 조절, 경관·전통문화 계승, 지역 사회와 경제 발전, 관광과 휴식의 장소, 전원 생활의 공간, 농촌의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하다. 국격(國格) 제고까지 포함한 공익적 가치를 합산하면 수백 조에 이를 만큼 헤아리기 어려운 수준이다.

다행히 농협 등 관련 단체들의 많은 관심과 노력에 힘입어, 현재 발의·진행되고 있는 대통령(정부)의 헌법 개헌안 제129조에는 “국가는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과 생태 보전 등 농어업의 공익적 기능을 바탕으로 농어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농어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 등 필요한 계획을 시행해야 한다”는 조문이 포함돼 있다. 농업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신설하여 농업인의 권익 신장과 주권 시대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해당 조문이 당연히 존치되도록 농민은 물론 국민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온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우리의 농업 가치가 헌법에서 새롭게 태어나 영속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