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계절은 어느새 혹한의 계절을 지나 우리 곁에 연분홍 매화와 따스한 봄바람을 보내고 있다. 저 들녘의 아낙네들의 옷차림에서 봄이 살아나고 있다. 계절은 이렇게 자연의 섭리가 정한 시간표대로 찾아오지만, 우리네 삶은 여전히 혹한의 계절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7년 출산율과 사망률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OECD 평균 출산율은 1.68명, 이웃 나라 일본은 1.46명인 것에 비해 한국은 1.05명에 불과하다.

또 저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청년 실업도 9.8%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도시화의 진전에 따른 교통 체증을 비롯한 제반의 문제점들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는 개발과 성장을 모토로 지역 분권화 대신 중앙 집중화, 합리성 대신 효율성, 공동체의 연대 대신 개인주의, 다양성 대신 획일성을 추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편리함과 신속함을 얻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적 빈곤과 심리적 불안감, 문화적 상실 등을 겪으며 삶의 행복은 점차 잃어가고 있다. 그 과정을 몸으로 겪으면서 편리함보다는 삶의 질, 즉 행복지수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연대(SDSN)는 매년 세계의 150여개 국가를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평가하고 있다. 평가 항목은 GDP, 건강 수명, 관용, 정부와 기업의 신뢰 지수 등 7가지다.

지난해 평가 결과를 보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랜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에 있었다. 또 일본이 51위,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56위를 차지했다. 경제 규모가 일본은 3위, 한국이 12위인 점을 감안하면 행복지수는 많이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사회의 안녕과 가치 척도의 기준을 GNP(국민총생산) 보다는 GNH(국민총행복)로 삼아야한다는 강한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 사회가 산업화의 성과인 편리함과 신속함에 익숙해지는 동안 간과하고 있던 역기능에 대해 모두가 자각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다.

나는 이 대안으로 농업과 농촌이 가지고 있는 가치들을 제시하고 싶다. 농업은 농산물 생산의 본원적 기능과 함께 식량 안보, 농촌 경관 및 환경 보전, 수자원 확보, 홍수 방지 등의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문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산업화 사회가 주는 경쟁, 긴장, 속도감의 피로에 지친 현대인에게 관광, 쾌적한 휴식, 체험을 제공해준다. 요즘처럼 환경 오염 등으로 먹거리가 불안한 시대에 국내 토산 식품의 안전한 공급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는 생각도 한다.

우리 농업과 농촌은 발전과 성장으로 상징되는 산업화 시대에 인적 자원과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소외와 홀대를 받았다. 지금 우리 농업은 외적으로는 FTA라는 농업 강대국들과의 경쟁의 파고를 넘어야한다.

내적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 소비 위축, 만연한 가축 질병 등 농업이 안고 있는 내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산업화의 문제점까지도 포용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시기가 오고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산업화의 편리함과 신속함이 자연 생태계와 공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농업은 ‘여백이 있는 삶’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