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 폐기 공공건축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6> 에필로그
2017년 12월 07일(목) 00:00 가가
프랑스 파리 19구에 위치한 ‘르 상카트르(104)-파리’는 공공 장의(葬儀)시설로 사용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 문화예술공간이다. 용도 폐기된 공공건축물을 활용한 도시재생은 각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도시는 유기체와 같다.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탄생하고, 성장하고, 쇠락하는 과정을 겪는다. 그래서 활기를 잃은 원도심에 숨을 불어넣기 위한 ‘도시재생’은 국내외 모든 도시들이 안고 있는 화두(話頭)다.
정부는 올해부터 5년간 사업비 50조원을 투입하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 추진에 발벗고 나섰다. 앞서 5차례에 걸쳐 국내와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용도 폐기된 공공건축물을 이용해 ‘문화’라는 새로운 옷을 갈아입은 모범적인 도시 재생 사례를 살펴봤다. 왜 도시재생을 해야 하고,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재생해야 할 것인가? “(도시재생은)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한 전문가의 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트라우마를 씻어낸다’는 제 공연의도와 옛 목욕탕 분위기가 잘 어울립니다.”
지난 9월 말 찾은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복합문화공간 ‘행화탕’. 한국의 1세대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은 굳이 옛 대중 목욕탕에서 공연을 여는 까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한국전쟁부터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시민들이 겪은 정신적 상처를 극복하는 ‘트라우마 목욕탕’ 공연을 선보였다. 공연은 옛 보일러실에서 시작해 중간에 욕탕 공간으로 옮겨 진행됐다. 관객들은 앉은뱅이 목욕탕 의자를 깔고 앉아 마임배우의 공연을 진지하게 지켜봤다.
본래 ‘행화탕’은 1958년(단기 4291년) 2월에 건립돼 2011년 문을 닫은 동네 대중목욕탕이었다. 방치됐던 공간은 젊은 문화기획자들에 의해 복합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내부에 들어서면 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붉은 벽돌로 거칠게 쌓은 벽체와 천장 구조가 그대로 노출돼 있다. 또 욕탕은 욕조와 샤워기 등을 모두 철거했지만 벽과 바닥에 사각 하얀 타일을 그대로 남겨 뒀다.
시대변화에 따라 낡은데다 쓰임새도 잃었지만 주민들의 추억은 물론 지역 정체성과 역사가 담긴 공공 건축물이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옛 것과 새 것 조화시켜야=용도 폐기된 공공 건축물을 대상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벌이고자 할 때 제일 먼저 부딪치는 문제는 건물을 원형대로 복원해야 할지, 아니면 어디까지를 살려 리모델링을 해야할지 여부이다.
그런 면에서 스페인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은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다. 과거 병원으로 사용되다 미술관으로 변신한 이 건물은 ‘옛 것’과 ‘새 것’을 조화시켰다. 1780년대 지어진 석조(石造) 종합병원 구관에 2005년 강철과 알루미늄, 유리 등 현대식 소재를 사용한 신관을 추가로 덧붙였다. 건물 외벽에는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까지 돌출되게 설치했다. 스페인 전통적 건물과 21세기 현대적 건물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더욱이 ㅁ자 형으로 된 건물 중정(中庭)에는 초록빛깔 나무들이 울창하다.
유럽의 용도 폐기된 공공건축물은 한국 사정과 너무 다르다. 일단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과 ‘오르세 미술관’ 등 종합병원이나 기차역으로 당초 설계됐던 유럽 건축물은 시야를 압도할만큼 거대하고, 견고하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행정기관이나 은행을 제외하면 1950∼1960년대 지어진 건축물은 대부분 시멘트 벽돌이나 콘크리트 소재로 돼 있는 우리와 대조적이다.
◇도시재생, 사회적 가치 더 중요=지자체가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할 때 일부 시민들은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목포나 군산에서 근대 건축물을 활용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며 “일제 때 지은 건물인데 왜 헐지 않는가?”라는 반대의견에 부딪히기도 했다. 실제로 옛 조선총독부로 쓰였던 건물이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구호 아래 헐리면서 전국 여러 곳에서 비슷한 철거작업이 뒤따랐다.
프랑스 파리시도시계획 연구소(APUR·Atelier Parisien D’Urbanisme) 크리스티앙 블랑코 도시설계프로젝트 디렉터(건축가)는 “도시디자인 측면에서 (낡은 공공건축물을 헐고) 새로 짓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거주하는 시민들은 (지역 정체성을 가진 옛 공공 건축물과) 굉장히 정서적으로 밀착돼 있다. 그래서 옛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으려고 하면 ‘그냥 쓰면 되는데’하고 정서적으로 반발한다. 특히 ‘파리지앵’(파리시민) 들은 그런 것에 민감하다. 돈이 더 들더라도 재개발(도시재생)은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를 더 중요시 해야 한다.”
APUR은 1967년 파리시의회에서 설립한 독립된 도시계획 연구 기관이다. 폐선된 고가철로를 이용한 공중 산책로인 ‘프롬나드 플랑테’와 ‘세느강변길 되찾기 프로젝트’ 등이 이곳 연구자들의 머릿속에서 나와 실행됐다.
파리의 경우 1960∼1970년대 개발과정에서 폐산업시설과 버려진 역사(驛舍)가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대한 반발로 반대여론이 형성돼 건축가 중심으로 폐건축물 활용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임기(1981∼1995년) 동안 오르세 역 등을 활용하는 사업이 국가적인 정책으로 제시되고 진행됐다. 이어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시장(2001∼2014년)이 파리시 전체를 리노베이션하는 새로운 도시디자인을 계획하면서 두 번째 (도시재생) 도약 단계를 맞았다.
◇주민 생활 속에 녹아든 옛 건축물= 전국 각 지자체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할 때 재원 마련이 급선무다. 많은 도시재생 사업이 정부나 지자체, 관(官) 주도로 진행되는 한국에서는 국비와 시·군비 5:5 비율로 재원을 마련한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을 대상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계획한 후 공모사업에 참여해 사업비를 확보하는 수순을 밟는다.
유럽 3개국 도시재생 성공사례를 돌아보며 우선 국가차원의 도시재생 프로그램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각 도시의 도시재생 사업이 함께 진행된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독일 연방정부는 동독과 서독지역을 대상으로 ‘도시 개조사업’(Stadttumbau)을 진행했고, 프랑스는 ‘국가도시 재생청’(ANRU)을 설립하고 ‘국가도시 재생프로그램’(PNRU)을 시행했다. 스페인 빌바오시의 경우 1992년에 공기업 형태의 ‘빌바오리아 2000’을 창설해 순차적으로 도시를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 여러 부처에서 지원하던 도시재생 보조금을 단일화해 ‘통합재생예산’(SRB)을 마련한 영국 사례를 눈여겨볼만하다.
또한 ‘우파 파브릭’처럼 자생력을 갖거나 ‘르 샹카트르(104)-파리’, ‘프롬나드 플랑테’와 같이 주민 생활 속에 녹아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주민’을 우선시했다.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 공간의 ‘자생력’과 ‘지속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다. 벽화마을 만들기처럼 타 지역의 사례를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비록 용도를 잃었지만 지역에 오래 자리 잡았던 공공 건축물은 지역공동체의 정체성과 역사, 이야기, 철학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인 가치를 제대로 살려내는 도시재생 프로그램만이 쇠락한 원도심내 용도폐기된 공공 건축물을 지속가능한 장소로 가능하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황재훈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청주 도시재생 센터장)는 “도시재생은 정답이 없다. 도시재생은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도시운동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라는 의식전환, 정책적 연관성과 제도의 뒷받침, 지자체 공무원과 시민 등 참여주체의 역량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정부는 올해부터 5년간 사업비 50조원을 투입하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 추진에 발벗고 나섰다. 앞서 5차례에 걸쳐 국내와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용도 폐기된 공공건축물을 이용해 ‘문화’라는 새로운 옷을 갈아입은 모범적인 도시 재생 사례를 살펴봤다. 왜 도시재생을 해야 하고,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재생해야 할 것인가? “(도시재생은)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한 전문가의 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 9월 말 찾은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복합문화공간 ‘행화탕’. 한국의 1세대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은 굳이 옛 대중 목욕탕에서 공연을 여는 까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한국전쟁부터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시민들이 겪은 정신적 상처를 극복하는 ‘트라우마 목욕탕’ 공연을 선보였다. 공연은 옛 보일러실에서 시작해 중간에 욕탕 공간으로 옮겨 진행됐다. 관객들은 앉은뱅이 목욕탕 의자를 깔고 앉아 마임배우의 공연을 진지하게 지켜봤다.
◇옛 것과 새 것 조화시켜야=용도 폐기된 공공 건축물을 대상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벌이고자 할 때 제일 먼저 부딪치는 문제는 건물을 원형대로 복원해야 할지, 아니면 어디까지를 살려 리모델링을 해야할지 여부이다.
그런 면에서 스페인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은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다. 과거 병원으로 사용되다 미술관으로 변신한 이 건물은 ‘옛 것’과 ‘새 것’을 조화시켰다. 1780년대 지어진 석조(石造) 종합병원 구관에 2005년 강철과 알루미늄, 유리 등 현대식 소재를 사용한 신관을 추가로 덧붙였다. 건물 외벽에는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까지 돌출되게 설치했다. 스페인 전통적 건물과 21세기 현대적 건물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더욱이 ㅁ자 형으로 된 건물 중정(中庭)에는 초록빛깔 나무들이 울창하다.
유럽의 용도 폐기된 공공건축물은 한국 사정과 너무 다르다. 일단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과 ‘오르세 미술관’ 등 종합병원이나 기차역으로 당초 설계됐던 유럽 건축물은 시야를 압도할만큼 거대하고, 견고하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행정기관이나 은행을 제외하면 1950∼1960년대 지어진 건축물은 대부분 시멘트 벽돌이나 콘크리트 소재로 돼 있는 우리와 대조적이다.
◇도시재생, 사회적 가치 더 중요=지자체가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할 때 일부 시민들은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목포나 군산에서 근대 건축물을 활용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며 “일제 때 지은 건물인데 왜 헐지 않는가?”라는 반대의견에 부딪히기도 했다. 실제로 옛 조선총독부로 쓰였던 건물이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구호 아래 헐리면서 전국 여러 곳에서 비슷한 철거작업이 뒤따랐다.
프랑스 파리시도시계획 연구소(APUR·Atelier Parisien D’Urbanisme) 크리스티앙 블랑코 도시설계프로젝트 디렉터(건축가)는 “도시디자인 측면에서 (낡은 공공건축물을 헐고) 새로 짓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거주하는 시민들은 (지역 정체성을 가진 옛 공공 건축물과) 굉장히 정서적으로 밀착돼 있다. 그래서 옛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으려고 하면 ‘그냥 쓰면 되는데’하고 정서적으로 반발한다. 특히 ‘파리지앵’(파리시민) 들은 그런 것에 민감하다. 돈이 더 들더라도 재개발(도시재생)은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를 더 중요시 해야 한다.”
APUR은 1967년 파리시의회에서 설립한 독립된 도시계획 연구 기관이다. 폐선된 고가철로를 이용한 공중 산책로인 ‘프롬나드 플랑테’와 ‘세느강변길 되찾기 프로젝트’ 등이 이곳 연구자들의 머릿속에서 나와 실행됐다.
파리의 경우 1960∼1970년대 개발과정에서 폐산업시설과 버려진 역사(驛舍)가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대한 반발로 반대여론이 형성돼 건축가 중심으로 폐건축물 활용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임기(1981∼1995년) 동안 오르세 역 등을 활용하는 사업이 국가적인 정책으로 제시되고 진행됐다. 이어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시장(2001∼2014년)이 파리시 전체를 리노베이션하는 새로운 도시디자인을 계획하면서 두 번째 (도시재생) 도약 단계를 맞았다.
◇주민 생활 속에 녹아든 옛 건축물= 전국 각 지자체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할 때 재원 마련이 급선무다. 많은 도시재생 사업이 정부나 지자체, 관(官) 주도로 진행되는 한국에서는 국비와 시·군비 5:5 비율로 재원을 마련한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을 대상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계획한 후 공모사업에 참여해 사업비를 확보하는 수순을 밟는다.
유럽 3개국 도시재생 성공사례를 돌아보며 우선 국가차원의 도시재생 프로그램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각 도시의 도시재생 사업이 함께 진행된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독일 연방정부는 동독과 서독지역을 대상으로 ‘도시 개조사업’(Stadttumbau)을 진행했고, 프랑스는 ‘국가도시 재생청’(ANRU)을 설립하고 ‘국가도시 재생프로그램’(PNRU)을 시행했다. 스페인 빌바오시의 경우 1992년에 공기업 형태의 ‘빌바오리아 2000’을 창설해 순차적으로 도시를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 여러 부처에서 지원하던 도시재생 보조금을 단일화해 ‘통합재생예산’(SRB)을 마련한 영국 사례를 눈여겨볼만하다.
또한 ‘우파 파브릭’처럼 자생력을 갖거나 ‘르 샹카트르(104)-파리’, ‘프롬나드 플랑테’와 같이 주민 생활 속에 녹아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주민’을 우선시했다.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 공간의 ‘자생력’과 ‘지속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다. 벽화마을 만들기처럼 타 지역의 사례를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비록 용도를 잃었지만 지역에 오래 자리 잡았던 공공 건축물은 지역공동체의 정체성과 역사, 이야기, 철학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인 가치를 제대로 살려내는 도시재생 프로그램만이 쇠락한 원도심내 용도폐기된 공공 건축물을 지속가능한 장소로 가능하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황재훈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청주 도시재생 센터장)는 “도시재생은 정답이 없다. 도시재생은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도시운동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라는 의식전환, 정책적 연관성과 제도의 뒷받침, 지자체 공무원과 시민 등 참여주체의 역량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