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모범 사례 현장을 가다] <5> 프랑스
2017년 11월 30일(목) 00:00 가가
기차 떠난 자리 문화가 정차했다
1900년 건립한 오르세 역을 리모델링한 ‘오르세 미술관’
20세기 초, 산업화 시대에 기차는 중요한 운송수단이었다. 지역 곳곳에 웅장한 기차역이 들어서고 두 지점을 핏줄처럼 연결하는 철로와 아치형 고가철로가 깔렸다. 이러한 산업시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쓸모가 없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 선택은 두 가지이다. 철거하는 것과 리모델링하는 것. 프랑스는 기차역과 고가 철로, 그리고 장의(葬儀) 관련 시설 등 역사적인 공간을 부수지 않고 재활용하는 길을 택했다. 파리에 자리한 오르세 미술관과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 ‘르 샹카트르-파리’(Le Centquatre-Paris)가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고가 철로의 변신, ‘프롬나드 플랑테’=파리 12구 베르시 지구에 위치한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는 꽃과 나무가 심어진 공중 산책길이다. 본래 이곳은 1859년에 바스티유 역에서 뱅센을 거쳐 생 마우르 역을 연결하는 고가철로가 놓였던 자리였다. 1969년에 지하철 건설로 기능을 잃으면서 운행을 멈춘 구간이다. 110년간 사용된 아치형 고가철로는 1980년대 중반까지 뾰족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채 방치돼 흉물로 전락했다.
그러다 미테랑 행정부의 대대적인 문화예술시설 확충 프로젝트인 ‘그랑 프로제’(Grands Project) 추진에 따라 1993년에 4.7㎞ 길이의 선형(線形) 도심 공원이자 공중 정원으로 거듭났다. ‘플랑테’(plantee)는 식물, ‘프롬나드’(Promenade)는 산책길이라는 의미다.
9월 중순 오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 우선 폐선부지를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 발상에 놀랐다. 기존 철도 구조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상부는 산책로와 정원을 꾸몄고, 아치형 하부 64개 공간은 예술가들과 수공업자들의 공방(작업공간), 아트샵, 카페 등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흉물스런 폐 고가 철도가 공원으로, 방치됐던 아치형 구조물이 문화예술 및 상업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도로에서 계단을 타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밑에서 상상하던 것과 다른 ‘반전’이 있다. 삭막한 도심 속에서 눈앞에 초록세상이 펼쳐진다. 직선으로 뻗은 보도 좌우로 꽃과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또한 산보를 하거나 조깅을 즐기는 ‘파리지앵’이 눈에 들어왔다. 남녀 시민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조깅을 하거나 엄마가 유모차를 한가롭게 밀고 가기도 했다. 그만큼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길이지만 이용하는 ‘방식’이나 즐기는 ‘속도’는 개인별로 달랐다. 도로에 심어진 가로수 높이에 공중 산책길이 조성돼 있어 걷는 내내 ‘푸름’의 안복(眼福)을 누릴 수 있다.
폐 고가철로를 철거하는 대신 공중 정원을 조성함으로써 파리 시민들이 얻는 혜택은 많다.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녹지공간을 확충할 수 있었고, 상가를 임대해 유지관리 비용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공공성’과 ‘상업성’이라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효과를 거뒀다. 이곳은 미국 뉴욕 맨해튼 ‘하이라인’(High line)과 서울역 앞 고가 보행로인 ‘서울로 7017’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민을 위한 복합 문화예술공간 ‘샹카트르-파리’=파리 19구 오베르빌리에 거리 104번지에 자리한 ‘르 샹카트르-파리’(Le Centquatre-Paris)는 복합 문화예술공간이다. 본래 장례식장으로 이용됐다고 알려져 있다. 정확하게는 관·비석 등 장례용품을 만들고, 묘지 선정 등을 지원하는 공공 장의(葬儀)시설로 사용된 건물이었다고 한다. 1873년부터 1997년까지 120여 년간 사용됐다. 이곳은 리모델링을 거쳐 2008년 10월 주민과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매년 60여만명이 찾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공간 이름 ‘샹카트르’는 건물이 위치한 번지 수(104)에서 따왔다. 프랑스어로 ‘샹(cent=100)+카트르’(quatre=4), 104를 뜻한다.
지난 9월 16일, 이곳을 찾았을 때 마침 27개국 작가 40여명과 20여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비주얼 아트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출입문에 들어서자 로리스 체치니(이탈리아) 작가의 ‘수인성’(waterbones)이라는 조각작품이 방문객을 반겼다. 안쪽 건물 바닥에는 카데르 아티아(프랑스) 작가의 작품이 설치돼 있었다. 수많은 거울을 깨뜨려 바닥에 사각으로 깔아놓은 작품이다. 이반 아르고트(콜롬비아)의 시소 같은 작품과 이완(한국) 작가의 작품도 찾을 수 있었다.
2010년 디렉터로 선임된 조세 마뉴엘 곤살베스는 이곳을 ‘공동 프로젝트를 하는 예술적인 플랫폼’(collaborative artistic platform)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현재 창작 아틀리에(18개)를 비롯해 일반인 창작공간(인큐베이터 104), 컨벤션홀 2개(큐리알 홀, 오베르빌리에 홀), 카페, 아트샵, 어린이집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전시와 공동작업, 워크숍이 연중 진행된다. 디렉터가 선정한 작가들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거주하면서 창작활동을 한다. 그렇지만 작가들만의 창작공간은 아니다. 시민들에게도 항상 열려있다. 지역주민들에게 프리마켓과 일일장터, 북페어 등 공간을 제공하거나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도록 해 창작활동의 주체가 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창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12년 9월부터 ‘창조와 혁신’을 모토로 예술과 연구, 산업의 협업을 강조하며 자체 비즈니스 모델로 ‘인큐베이터 104’를 오픈했다.
◇철도역에서 오르세 미술관으로 재탄생=오르세 미술관은 본래 기차역 건물이었다. 오르세 역이 개장한 때는 파리 만국박람회를 앞둔 1900년 7월 14일. 건축가 빅토르 랄루(Victor Laloux)는 일반적인 철도역보다 ‘좀 더 편안하고도 품위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노력하며 역사(驛舍)를 설계했다. 역과 호텔을 함께 갖춘 형태였다. 전동 열차용으로 설계된 최초의 현대식 철도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르세 역은 철도 관련 기술의 빠른 변화로 새로 개발된 열차와 플랫폼의 규격이 맞지 않게 되면서 1939년부터는 통근 열차만 운행됐다.
1960년대에 30년 동안 이어진 경제 성장에 힘입어 쓸모없어진 역사를 헐고 세계적인 호텔을 신축하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졌다. 하지만 1971년 공공시설 및 주택성은 ‘프로젝트의 규모와 높이가 해당 부지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건축을 불허하며 제동을 걸었다. 1973년에 오르세역 건물이 역사유적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건축 콩쿠르가 열린 1978년에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됐다.
1979년에 산업 건축물인 기차역을 대형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에 이탈리아 여성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를 선임해 내부 개조를 위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86년 12월 1일 문을 연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와 함께 ‘파리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루브르는 고대에서 19세기까지, 오르세는 제2공화국 시점인 1848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까지, 퐁피두는 1914년 이후 현대미술로 전시영역을 분명하게 가르고 있다.
동선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여러 전시실에서 밀레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고갱, 고흐 등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20세기 초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프랑스 파리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가 철로의 변신, ‘프롬나드 플랑테’=파리 12구 베르시 지구에 위치한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는 꽃과 나무가 심어진 공중 산책길이다. 본래 이곳은 1859년에 바스티유 역에서 뱅센을 거쳐 생 마우르 역을 연결하는 고가철로가 놓였던 자리였다. 1969년에 지하철 건설로 기능을 잃으면서 운행을 멈춘 구간이다. 110년간 사용된 아치형 고가철로는 1980년대 중반까지 뾰족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채 방치돼 흉물로 전락했다.
9월 중순 오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 우선 폐선부지를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 발상에 놀랐다. 기존 철도 구조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상부는 산책로와 정원을 꾸몄고, 아치형 하부 64개 공간은 예술가들과 수공업자들의 공방(작업공간), 아트샵, 카페 등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흉물스런 폐 고가 철도가 공원으로, 방치됐던 아치형 구조물이 문화예술 및 상업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또한 산보를 하거나 조깅을 즐기는 ‘파리지앵’이 눈에 들어왔다. 남녀 시민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조깅을 하거나 엄마가 유모차를 한가롭게 밀고 가기도 했다. 그만큼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길이지만 이용하는 ‘방식’이나 즐기는 ‘속도’는 개인별로 달랐다. 도로에 심어진 가로수 높이에 공중 산책길이 조성돼 있어 걷는 내내 ‘푸름’의 안복(眼福)을 누릴 수 있다.
폐 고가철로를 철거하는 대신 공중 정원을 조성함으로써 파리 시민들이 얻는 혜택은 많다.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녹지공간을 확충할 수 있었고, 상가를 임대해 유지관리 비용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공공성’과 ‘상업성’이라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효과를 거뒀다. 이곳은 미국 뉴욕 맨해튼 ‘하이라인’(High line)과 서울역 앞 고가 보행로인 ‘서울로 7017’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민을 위한 복합 문화예술공간 ‘샹카트르-파리’=파리 19구 오베르빌리에 거리 104번지에 자리한 ‘르 샹카트르-파리’(Le Centquatre-Paris)는 복합 문화예술공간이다. 본래 장례식장으로 이용됐다고 알려져 있다. 정확하게는 관·비석 등 장례용품을 만들고, 묘지 선정 등을 지원하는 공공 장의(葬儀)시설로 사용된 건물이었다고 한다. 1873년부터 1997년까지 120여 년간 사용됐다. 이곳은 리모델링을 거쳐 2008년 10월 주민과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매년 60여만명이 찾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공간 이름 ‘샹카트르’는 건물이 위치한 번지 수(104)에서 따왔다. 프랑스어로 ‘샹(cent=100)+카트르’(quatre=4), 104를 뜻한다.
지난 9월 16일, 이곳을 찾았을 때 마침 27개국 작가 40여명과 20여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비주얼 아트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출입문에 들어서자 로리스 체치니(이탈리아) 작가의 ‘수인성’(waterbones)이라는 조각작품이 방문객을 반겼다. 안쪽 건물 바닥에는 카데르 아티아(프랑스) 작가의 작품이 설치돼 있었다. 수많은 거울을 깨뜨려 바닥에 사각으로 깔아놓은 작품이다. 이반 아르고트(콜롬비아)의 시소 같은 작품과 이완(한국) 작가의 작품도 찾을 수 있었다.
2010년 디렉터로 선임된 조세 마뉴엘 곤살베스는 이곳을 ‘공동 프로젝트를 하는 예술적인 플랫폼’(collaborative artistic platform)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현재 창작 아틀리에(18개)를 비롯해 일반인 창작공간(인큐베이터 104), 컨벤션홀 2개(큐리알 홀, 오베르빌리에 홀), 카페, 아트샵, 어린이집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전시와 공동작업, 워크숍이 연중 진행된다. 디렉터가 선정한 작가들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거주하면서 창작활동을 한다. 그렇지만 작가들만의 창작공간은 아니다. 시민들에게도 항상 열려있다. 지역주민들에게 프리마켓과 일일장터, 북페어 등 공간을 제공하거나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도록 해 창작활동의 주체가 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창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12년 9월부터 ‘창조와 혁신’을 모토로 예술과 연구, 산업의 협업을 강조하며 자체 비즈니스 모델로 ‘인큐베이터 104’를 오픈했다.
◇철도역에서 오르세 미술관으로 재탄생=오르세 미술관은 본래 기차역 건물이었다. 오르세 역이 개장한 때는 파리 만국박람회를 앞둔 1900년 7월 14일. 건축가 빅토르 랄루(Victor Laloux)는 일반적인 철도역보다 ‘좀 더 편안하고도 품위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노력하며 역사(驛舍)를 설계했다. 역과 호텔을 함께 갖춘 형태였다. 전동 열차용으로 설계된 최초의 현대식 철도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르세 역은 철도 관련 기술의 빠른 변화로 새로 개발된 열차와 플랫폼의 규격이 맞지 않게 되면서 1939년부터는 통근 열차만 운행됐다.
1960년대에 30년 동안 이어진 경제 성장에 힘입어 쓸모없어진 역사를 헐고 세계적인 호텔을 신축하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졌다. 하지만 1971년 공공시설 및 주택성은 ‘프로젝트의 규모와 높이가 해당 부지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건축을 불허하며 제동을 걸었다. 1973년에 오르세역 건물이 역사유적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건축 콩쿠르가 열린 1978년에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됐다.
1979년에 산업 건축물인 기차역을 대형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에 이탈리아 여성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를 선임해 내부 개조를 위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86년 12월 1일 문을 연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와 함께 ‘파리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루브르는 고대에서 19세기까지, 오르세는 제2공화국 시점인 1848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까지, 퐁피두는 1914년 이후 현대미술로 전시영역을 분명하게 가르고 있다.
동선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여러 전시실에서 밀레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고갱, 고흐 등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20세기 초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프랑스 파리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