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계관시인 도널드 홀이 80세 이후에 쓴 에세이를 묶은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마치 다른 우주로 여행을 온 것”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낯설고 당혹스럽다는 의미일 게다. “다른 우주로” 들어섰다는 것은 노년의 삶이 ‘타자’로 인식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외계인’이 됐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다음의 내용을 보자.

“우리는 여든 살이 되면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잠시라도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반드시 깨우침이 온다. 앉은 자리에서 바로 일어서려 할 때 바로 느끼는 것이다. 우리를 녹색 피부에 머리가 둘 있고 거기에 안테나까지 달려 있는 존재처럼 쳐다보는 젊은이와 마주칠 때도 그렇다.”

이 세상에서 절대 진리 가운데 하나가 모든 사람은 늙는다는 것이다. 누구도 노년을 피할 수 없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특히 노령에 들어서면서는 이전과 다른 외부의 시선을 느끼게 된다.

늙어감에 대한 단상, 늙어감의 의미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 책이 나왔다.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은 ‘노인’, ‘늙음’, ‘나이듦’에 드리워진 두려움과 혐오를 걷어내고 자기다운 삶과 다른 몸들의 공존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공동대표이자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이다.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으며 페미니즘과 인권을 수련했다. ‘흰머리 희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노년은 아름다워’, ‘이미지 페미니즘’ 등의 책을 펴낸 바 있다.

책은 저자가 만난 각계 11명의 사람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농부와 요양보호사를 비롯해 예술가, 환경운동연구가, 장애여성 대표, 민권운동과 반빈곤운동의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과 나눈 대화가 담겼다.

전반부는 노년을 만나 우정을 쌓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 이들의 얘기다.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다 두물머리의 ‘데레사 농민’이 된 김현숙, 고령친화 맞춤형 주거관리 서비스 사업단의 김진구, 노년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문화예술작업을 하는 육끼 등의 삶을 만난다.

말기 중중 치매 환자 등 다양한 형태의 돌봄을 해온 이은주는 돌봄에 대한 매뉴얼을 강조한다. 기저귀를 가는 일상적 동작에도 요양보호사와 환자의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차별과 혐오,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싸우는 이들도 나온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어쓰, 홈리스행동 활동가 이동현과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김윤영 등이 그들이다. 노년 생애구술을 하면서 작가의 정체성을 갖게 된 소설가 최현숙의 사례도 만날 수 있다.

책의 글은 대개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싶나요?”라는 질문과 상대의 답으로 맺는다. 요양보호사 이은주는 어린이 성장을 돕는 할머니, 환경운동가 김신효정은 무언가를 살리는 할머니, 장애여성공감 대표 조미경은 공동체를 만드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 사이에 노년이 산다는 것이 우리 각자의 삶에서 중요한 공부의 실마리가 되길 희망하며 이 책을 펴낸다”며 “노년을 만나 노년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고, 노년과 우정을 쌓거나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답게 늙어가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쓸모 있는 선행 학습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한다.

<위즈덤하우스·1만75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