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한승원 등과 같은 고향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문학사 연구에 대한 통찰을 얻었습니다. 아무래도 고향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다보니 문학에 대해 깊은 유대 정서를 갖지 않았나 싶어요.”

조선대 글로벌인문대학 유럽언어문화학부 이경민(스페인어 전공) 교수가 2021년 전미 스페인·포르투갈어 교사 협회(AATSP)가 주관하는 제103차 국제학술대회에서 우수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AATSP’는 1917년에 설립돼 전 세계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교육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학술활동을 펼치는 학술단체다.

이 교수의 논문 주제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문학과 한국의 수용 과정 연구’. 한국에서도 희소성 높은 중남미 현대문학을 다뤄, 해외에서 먼저 연구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은데 상을 받게 돼 기쁘면서도 담담했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중남미 문학이 조금이라도 더 알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역 학계에서 흔치 않은 중남미 현대문학 전공 연구자다. 20년 넘게 이 분야에 매진해온 원동력은 ‘문림 장흥’이라는 자부심이다. 고향의 걸출한 문인들 작품을 읽으며 “비록 문학가는 아니지만 연구논문을 매개로 우리나라에서 많이 읽히는 외국문학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실 중남미문학이 한국어로 번역되고 연구가 된 것은 그리 길지 않다. 타 전공에 비해 연구 자료가 미비한 편이다. 이번 논문은 학술지 ‘이스파니아’에 게재됐는데 ‘이전의 중남미 문학들의 국내 수용과는 다른 결을 짚어내며 문학에 대한 사유를 넓힌 논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칠레 출신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문학이 우리나라에 수용된 과정을 보면 흥미로워요. 제 3세계 국가, 그 중에서도 주변부 작가의 작품이 지닌 저항적 특징이 새로운 문학사조의 불씨가 된 셈이지요.”

그는 볼라뇨의 영향으로 21세기 한국 문단에서도 젊은 작가들이 주류 문학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문학운동을 전개했다고 설명했다. 중남미 문학 번역본 자체가 드물었던 20년 전만 해도 이렇게 다양한 문학사조가 생겨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얘기다.

이 교수는 그처럼 볼라뇨의 작가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그 또한 중심부 부패와 타락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저항정신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필수 요소라고 믿는다.

이 교수는 조선대 스페인어학과 재학 시절 쌀 수입 반대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했다 감옥에 끌려간 적이 있다. 엄혹했던 시기 민주화 투쟁의 마지막 세대로서 저항의 힘을 온 몸으로 체감했다.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열망은 그렇게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옮겨 붙었다.

“3개월 수감생활을 마치고 군대도 다녀온 뒤 스페인으로 해외연수를 갔었죠. 당시 혼란스럽고 치열했던 우리나라와 다르게 여유로운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같은 지구인으로 살면서 이렇게나 다른 삶의 방식이 있을 수 있구나. 한국사회도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 다른 나라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공부에 전념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후 멕시코로 건너가 메트로폴리탄 자치대학교에서 로베르토 볼라뇨 연구로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를 지내다 2018년 모교인 조선대로 옮겨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제가 항상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한국인으로만 살려고 하지 말고, 지구인으로 살라’고요. 한국이라는 공간, 전공이라는 한계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서 세계를 보는 지평을 넓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