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해안 77번 국도가 동해안 7번 국도를 만난다. 파주에서 목포, 여수, 부산을 지나 고성까지 굽이굽이 해안을 따라간다. 총 2794㎞에 전남 구간만 1099㎞다. 바다를 품은 한국인의 길(Korean Road), KR 777의 출발이다. 앞으로 신의주를 거쳐 요동(랴오둥), 함흥을 거쳐 연해주(프리모르스키)까지 연결할 꿈을 갖고 있다. 2007년 부산에서 출발한 아시안 하이웨이(AH)가 흑해와 지중해로 가는 길이라면, KR 777은 숨겨진 연안을 소통시키는 동행로가 된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풍광을 느끼고 생각 나누기를 할 수 있게 하자는 시도다. 엄마 뱃속에서 느꼈던 태아의 신비와 포근함으로 일상에 찌든 현대인의 몸과 마음을 치유케 하고,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동반한 아름다운 노래가 끊이지 않게 될 것이다. 매사에 철저하고 어려운 일도 흥이 나게 하는 익산지방국토관리청 김철흥 청장의 생각이다.

KR 777이 미국 키웨스트 해상 교량과 해저 터널 42개소 37㎞에 견주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신안, 진도, 완도~고흥, 여수 금오도 등 섬과 해안을 더 연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도민의 염원을 담아 최근 ‘2030 전남 기반 시설 계획’을 수립했다. 115개소에 15조 원 규모다. 현재 56개소는 공용 중이고, 17개소 공사를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42개소에 9조 원이 더 들어가야 한다.

낙도, 낙후, 지역 차별이란 말을 없애는 길이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3050 클럽’ 국가의 경제 규모에 맞는 투자를 해야 한다. 경제성만 따지지 말자는 거다. 인접 일본이 그랬다. 국민소득 2000달러에 불과한 1960년대 초부터 이미 북해도로 가는 해저 터널 53.8㎞를 착수했다. 청함(세이칸) 터널 개통 이후, 2000년대 초까지 명석해협(아카시)을 건너는 등 섬을 잇는 찻길 또한 대부분 완성했다. 작은 것도 고루 쓰는 그들의 국토 활용 정책이다.

도로는 우마차를 이용하면서부터 빠르게 진화했다. 한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 정복자의 통치로요, 상인의 교역로, 신문물의 전달로였다. 오늘날까지 유럽 주요 도시의 근간이 되었으며, 독일 남부에선 ‘로맨틱 가도’로 이름을 바꾸어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어땠는가? 육로보다는 해로였다. 그 시절에 청해진 장보고와 압해 수달장군 능창이 중국과 왜를 잇는 해상 왕국을 이룩하기도 했지만, 조선이 개국되면서 차단되고 만다. ‘죄를 짓고 섬으로 숨어 버리며,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공도 정책은 확대되었고 바다와 섬을 천시한 ‘우물 안 개구리’ 정책은 왜란과 호란, 급기야 망국의 길로 이어졌다. 우리의 도로는 일제 강점기에 수탈 목적의 신작로부터 시작됐다. 구불구불 지방 도로는 당시 저항의 상징이지만, 오늘날엔 보행로도 없는 굴곡 위험 도로가 되고 말았다.

이런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6월 18일 정부에서 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4년간 32조 원을 투입한다. 우리 몸의 핏줄과 같은 도로가 막히고 끊기면 먹고 사는 경제 활동 또한 끝나기 때문이다. 서남해안을 잇는 국도 77호선은 2001년 DJ정부 때 지정됐다. 파주~부산까지 1254㎞, 전남 구간만 535㎞다. 바다가 들고 난 산과 들에 선을 긋고 정부 관계자를 찾아 다녔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게 되겠어요?’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20여 년이 흘렀다.

신안 섬으로 가는 7.2㎞ 바다 위 찻길, 천사(1004) 대교는 그렇게 시작했다. 올 연말이면 영광~무안 칠산대교와 고흥~여수을 연결하는 네 개 교량도 개통한다. 그 시절 국도 노선 조정 담당자였던, 이용욱 도로정책과장을 7월 26일 국토교통부 장관 현장 투어에서 만났다. ‘이 선은 미쳤죠?’ 당시 그가 들어야 했던 고뇌와 보람이 섞인 말이다. 그의 생각과 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끝없는 감사를 드리며 서남해안 신성장 관광벨트 지원을 위한 남도의 섬 연결 계획이 그의 머리에서 다시 한 번 찬란하게 피어나길 기대한다. ‘전남은 이제 동력을 얻었어요?’ 김현미 장관의 이목만목(二目萬目)을 생각하는 눈빛이 새롭다. 세상 어디에 이만한 곳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