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라는 괴물을 만나서 고생한 아버님으로부터 약소민족의 비극을 들으며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서 소변을 보려고 숲이 우거진 곳을 찾다 보면 자주 만나는 물체. 그것은 짐승의 것이 아닌 사람의 뼈였다. 그 뼈의 아픈 사연도 모른 채 거기에 실례를 했다.

5·16 때 헬리콥터에서 뿌리는 ‘삐라’(전단)를 신나게 주우러 다니던 철부지 소년은, 5·18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다. 늦게나마 우리의 과거사를 공부하면서, 분단된 역사의 의인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구나 하며 후회했다. 6월에 대한 뼈저린 상처는 어디 필자에게만 남아 있겠는가?

우리는 6월에 두 분의 훌륭하신 분과 이별을 해야 했다. 한 분은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을 만나 한평생을 기다림과 한과 고통으로 사신 이희호 여사님이다. 그리고 또 한 분은 윤석동 어르신인데, 전두환 노태우가 이끄는 공수부대와 맞서 민주주의 새벽을 밝히다 산화한 윤상원 열사의 아버님이시다. 어르신은 하늘로 가시기 전, 후손들의 손을 꼭 잡아 주며 “나, 내일 떠난다. 미안하다. 너희들이 있어 행복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들을 찾아 떠나셨다. 우리는 5월의 진상도 밝히지 못한 채 겨우 ‘임을 위한 행진곡’만 부르며 보내 드렸으니 또 한 번 죄인이 된 셈이다. 그래서 일 년의 절반을 흘려보내며 6월의 마지막 날을 한숨으로 보낼 줄 알았다.

그런데 소름 돋는 대사건이 마치 폭발처럼 일어났다. 뇌관을 연결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요, 성냥을 갖고 온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며, 불을 지핀 사람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화산 폭발이 아닌, 번개 모임으로 이뤄 낸 아름다운 평화의 불꽃. 휴전협정을 맺은 지 66년 만의 쾌거였다. 2019년 6월 30일 오후 3시 46분. 그 시각에 그리기 시작한 평화의 지도를 상상하면서 엄청난 감동을 느꼈다. 장사꾼 대통령으로, 약소국가를 수탈하는 제국주의 악질 대통령으로만 인식되던 트럼프 대통령이 달리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들 정상들의 행동이 ‘순간의 쇼’가 아닌, 분단을 녹이는 신명 나는 불꽃놀이와 세계평화를 위한 축제로 진화하면 좋겠다.

7월 19일에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광주에서 열린다. 193개국 7266명의 선수가 모여 우정을 다지며 기량을 뽐내는 대회다. 여기에 북한 선수단이 참여하고, 깜찍스러운 북한 응원단이 분위기를 살리면, 더욱 신명 나는 대회가 될 수 있으리라. 게다가 6월 30일에 약속한 세계 평화에 대한 거창한 실무회담 이전에, ‘북한 모란봉악단’과 ‘미국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협연을 한다면 진정한 세계 평화를 잇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 앞 분수대 광장에서 우리 민족의 혼이 서린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그리고 광주 정신이 흐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연주된다면 세계가 덩실덩실 춤추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진정한 평화의 출발이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세계인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아닐까? 6·25와 5월 항쟁 당시 슬프게 떠난 의인들에게 희열의 눈물을 흘리게 할 일은 살아 있는 자의 의무다. 그대들이여, 평화를 아름답게 춤추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