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며칠 전 오랫동안 소원했던 선배 한분이 냉면이나 한 그릇 하자는 반가운 연락이 왔다. 하지만 애주가인 그 선배에게 소주잔이 더 낫지 않겠냐는 이심전심으로 인근 대폿집으로 갔다. 이런 저런 얘기는 뒤로하고 우선 ‘건강이 최고야’ 하며 첫 잔을 부딪쳤다. 선배 왈 “내 인생 수명의 목표를 백세로 정했으니 그리 알고, 동생도 건강관리 잘 해서 백세로 가는 나의 황혼 길에 이렇게 거뜬히 술잔 잡으며 아름다운 동행의 자리를 꼭 채우라”는 반농 진담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었다.

하기야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백세라는 말이 더 이상 생소하거나 어색하지도 않다. 첨단 의료 기술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 그리고 국민건강에 대한 정부의 건강 증진 정책의 영향으로 난치병의 조기 발견과 치료는 곧, 불치의 영역을 축소시키면서 100세 수명을 가능케 하는 장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의 여정인 길흉화복과 생로병사가 이미 정해 져 있다는 사주팔자론이 더불어 변천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도별 평균 수명을 보면 1500여 년전 삼국시대에는 25세가 평균 수명이었으며, 그 후 1800년대에는 37세, 1900년대에는 45세에 이르다가 급기야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80세를 기록할 만큼 괄목한 수명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장수에 따른 장병(長病)과 노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분주한 사회의 일상을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긴 병환의 부모님이 계신 집안은 병간호와 수발 때문에 가정의 평화가 깨진다고 하니, 일부분 ‘장병에 효자 없다’는 속설이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병환의 부모님을 돌보게 하는 요양병원이라는 전문 의료 시설이 성업 중에 있다. 생각해 보건대, 평생을 살아온 정든 내 집이며 자식 손자 친지 등 만상(萬象)을 뒤로 하고 다시 돌아간다는 희망을 포기한 채 낯설은 시설에서 쓸쓸히 계실 부모님을 생각할 때 자식은 가슴 미어지는 처절한 슬픔이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영별하는 장례식장에서는 천수를 다 하셨다며 낙낙한 표정의 상주들을 가끔 보게 되는 요즘의 세태가 대비가 된다. 이를 장수 시대가 낳은 어쩔 수 없는 불효의 단면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풍속도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애물의 백세 시대가 될지언정 최소한의 초상 장사 기간 동안만이라도 부모님을 잃은 슬픔에 통곡하며 근신하는 것이 영원히 이승을 떠나시는 분에 대한 기본 예의며 최소한의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냐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리 인간 살이에 있어서 관혼상제 중 상례를 가장 정중히 여기는 까닭은 한 인간의 일대기를 총 정리하는 지엄한 종막의 장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문상객 또한 진중한 행동과 옷차림을 하고 문상하는 것이 예의 질서가 아닐까 싶다. 효는 백행(百行)의 근본으로서 부모님을 공양하는 것이 그 첫 번째라는 증자(曾子)의 말씀이 있다. 효행에 대해 각론이 있을 수 있으나 부모님께 근심을 드리지 않는 것이 담백한 의미의 효도가 아닐까 싶다. 노망한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80세가 다 된 나이에 때때옷을 입고 어릿광대 노릇을 했다는 중국의 노래자(老萊子)를 효성(孝聖) 이라 칭송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자식이라는 사회적 통념이라면, 가까이서 부모님을 모시며 봉양하는 일은 지순한 효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와 핵가족 중심 사회로 변천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지근(至近)에서 봉양하는 효도는 시간적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되고 있으니 이를 불효라고 이르기에는 억울함이 있다. 다만, 얼마든지 편리하게 발달된 교통과 통신이 있으니 종종 찾아 뵙고 살펴서 외로운 백세 시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식의 소임이라는 소박한 견해를 드린다.

오직 의지와 자랑이 전부가 되는 자식은 노구의 부모님께는 든든한 후견인이며 존재 가치를 드리는 소중함이 있다.

노령의 부모님 또한 가시는 날까지 자식에게 금은보화를 남겨 주는 것 보다 병약해서 신세지지 않는 건강한 모습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