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모범 사례 현장을 가다] <2>담양·서천
2017년 11월 14일(화) 00:00 가가
주조장·미곡창고의 대변신 … 막걸리 대신 문화를 빚다
담양군은 정책기조를 ‘문화’로 전환했다. 쌀창고를 리모델링 한 ‘담빛 예술창고’를 비롯해 ‘해동 주조장’, 토요장터 ‘다미담(多美潭)’ 등 다채로운 문화재생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2010년까지 막걸리를 빚었던 ‘해동 주조장’ 내부공간.
대나무막걸리(담양), 고구마막걸리(완도), 쑥막걸리(여수), 솔잎막걸리(영암), 꾸지뽕막걸리(곡성), 고로쇠생막걸리(장성), 울금막걸리(해남), 단호박막걸리(함평), 대마할머니생막걸리(영광)….
지난 10월 28일 찾은 담양읍 지침리 138-5번지(지침1길 6) 옛 담양 해동주조장.
‘예술로 해동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해동문화 축제장에서는 전남 22개 시·군 주조장에서 빚은 갖가지 막걸리들을 선보였다. 작은 항아리에 담긴 막걸리들은 제각기 이름표를 달고 있어 주민과 관광객들은 취향대로 막걸리를 골라 음미할 수 있었다.
“막걸리 22종 중에서 10개를 맛봤어요. 나머지도 다 마셔보고 싶어요. 막걸리는 땅에서 나온(쌀로 빚은) 거라 취해서 땅에 넘어지더라도 괜찮아요.”
한국에서 40년 이상 생활한 미국출신 존 잭슨(71·전 대학교수) 씨는 시음코너에서 ‘막걸리 예찬론’을 펼쳤다.
◇‘문화발전소’ 담양 해동주조장과 담빛 예술창고=해동 주조장은 1950년대 말부터 60여 년간 전통적 방식으로 막걸리를 생산하던 곳이었다. 유류판매업을 하던 고 조인훈씨가 ‘선궁소주’라는 브랜드명의 소주와 ‘해동 막걸리’, ‘해동 동동주’를 빚어 판매해왔다. 지난 2003년 조 대표 작고 후에는 장남이 이어 주조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외국 주류의 수입과 소비패턴의 변화에 따라 어려움을 겪으며 부득이 2010년 4월 문을 닫았다.
옛 해동주조장은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하는 ‘산업단지·폐 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면서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았다. 담양군은 주조장과 인근 교회 건물·부지를 매입해 이곳을 ‘문화를 빚는’ 문화예술 체험 및 아트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주조장을 활용한 문화재생 사업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1단계로 연말까지 막걸리와 정종(사케), 수제 맥주, 와인을 만들어 보는 체험공간과 주조장 아카이브가 마련된다. 올해 본격적인 사업에 앞서 ▲100인 드로잉전-술공장에서 예술에 취하다(7월) ▲예술로 통하다-술(術)통(通)파티(8월) ▲해동 문화예술난장(9월) ▲담양 해동한마당·해동문화축제(10월) 등 다양한 사전 프로그램을 마련해 호응을 얻었다.
2단계(2018년)로 주조장을 신(新)산업시설과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3단계(2019년)로 주민쉼터와 교육·문화·예술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앞서 문을 연 ‘담빛 예술창고’도 타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찾는 공간이다.
담양 관방제림 옆에 자리한 ‘담빛 예술창고’는 1960년대에 지어진 정부양곡 보관창고였다. 2004년 추곡수매제도가 없어지면서 양곡창고는 본래 기능을 잃고 10년간 방치돼 있었다.
군은 2014년에 이듬해 열리는 ‘담양 세계 대나무박람회’를 앞두고 이곳을 문화·전시공간으로 조성키로 결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에 선정돼 확보한 국비와 군비 등 총 12억1200만원을 투입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폐창고는 복합 전시공간(A동)과 문예 카페, 문화예술 교육공간(B동)으로 재탄생, ‘담빛 예술창고’라는 이름을 내걸고 지난 2015년 9월에 개관했다.
특히 카페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대나무로 제작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돼 있어 눈길을 끈다. 토·일요일, 공휴일에는 직접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오르가니스트 송영훈 씨는 손과 발로 건반을 누르며 비도르의 ‘토카타’(Toccata)를 비롯해 ‘사랑의 인사’, 성가 ‘옮은 길 따르라’ 등을 들려줬다.
장현우(53) 담빛예술창고 관장(예술감독)은 “당초 해외에 있는 예술촌을 모델로 광역시 못지않은 ‘문화발전소’로 시도했다”며 “개관 3년째인 현재 월 1만 명 이상, 연간 15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올 정도로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한 자생력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관광객들은 죽녹원과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 길 등 ‘자연’을 보기 위해 담양을 찾았다. 그러나 담양군이 ‘문화’로 과감하게 정책기조 방향을 전환함에 따라 앞으로는 ‘담빛 예술창고’와 ‘해동주조장’, 토요장터 ‘다미담’(多美潭) 등 ‘문화’를 보기 위해 담양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제강점기 역사 품은 서천 ‘옛 장항 미곡창고’=금강을 사이에 두고 군산과 마주보고 있는 장항(1937년 읍 승격)은 일제강점기에 충남 유일의 쌀 집산항이자 미곡 수탈 전초기지였다. 1930년 10월 개항한 옛 장항은 갈대만 무성한 갯벌이었다. 일제는 주민들을 강제동원해 제방을 쌓고 매립해 항만시설을 구축하고 격자형 도로망을 조성했다. 경기와 충남, 강원 일대의 쌀과 물자를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일제는 1931년에 천안과 장항을 잇는 경남철도(장항선)를 개통했다. 이어 1932년 봄에 장항 항만공사에 들어가 1937년 가을에 완성했다. 3000t급 기선이 접안할 수 있는 대형 부잔교 2기와 소형 부잔교 1기, 목잔교 4기가 설치됐다.(서천군지 ‘일제강점기와 서천’)
‘서천군 문화예술 창작공간’은 장항선으로 실어온 쌀을 일본행 배에 싣기 전 장항항에 보관하던 ‘옛 장항 미곡창고’를 토대로 리모델링했다. 바깥에서 바라보면 ‘ㅅ’자 맞배지붕을 한 건물 3채가 나란히 붙어있는 모양새다.
한동안 방치됐던 이곳이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2012년 7월에 열린 ‘공장미술제’였다. 회화와 조각, 설치, 영상 등 젊은 작가 130명이 참여해 미곡창고와 어망공장 창고를 실험적인 예술창작 무대로 활용했다. 이후 미곡창고를 기반으로 한 도시재생 사업에 나선 서천군이 2013년 버려진 공간을 손본 후 2014년에 전시와 공연, 미술관련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범사업을 벌였다.
군은 리모델링을 하며 개·보수를 최소화했다. 일제 강점기 창고건축 원형이 고스란히 남은 미곡창고는 2015년에 등록문화재 591호로 지정됐다.
서천군은 같은 해에 미곡창고 공간을 활용한 위탁 공모를 실시해 ‘인형극단 또봄’(대표 이애숙)에 운영을 맡겼다. 2011년 창단된 ‘또봄’은 창단 작품인 ‘자전거’를 시작으로 ‘모시의 전설’(2012년), ‘새와 소년’(2013년), ‘창고 모탱이’(2014년), 한산모시 이야기 신비한 옷’(2015년), ‘학교 가는 길’(2016년) 등 창작 인형극을 210차례 이상 선보였다.
창작공간 실내에 들어서면 ‘1959.12.12’, ‘1980.12.19’와 같이 특정날짜가 써 있는 콘크리트 기둥들과 목재로 튼튼하게 짜인 트러스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또 인형극 무대와 객석, 갤러리, 카페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갤러리에서는 연중무휴로 전시가 마련된다. 공연장은 처음에 인형극을 주로 하다가 청소년 밴드나 지역 전통 춤, 플라멩코 춤을 추는 팀을 유치해 소규모 공연무대를 열고 있다. 또한 건물내 카페에서는 커피를 마시는 것 외에도 가죽공예나 모시꽃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길가에 큰 건물만 덜렁 있는’ 셈이다. 아직까지는 주민의 무관심과 더불어 인근에 창작공간과 관련된 인프라 형성이 부족한 실정이다.
서천군 관계자는 “내년부터 ‘장항 6080프로젝트 사업’과 장항 역사문화 시공간 ‘장항 도선장 가는 길사업’ 등을 순차적으로 연계 추진한다. 앞으로 창작공간은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지난 10월 28일 찾은 담양읍 지침리 138-5번지(지침1길 6) 옛 담양 해동주조장.
‘예술로 해동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해동문화 축제장에서는 전남 22개 시·군 주조장에서 빚은 갖가지 막걸리들을 선보였다. 작은 항아리에 담긴 막걸리들은 제각기 이름표를 달고 있어 주민과 관광객들은 취향대로 막걸리를 골라 음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40년 이상 생활한 미국출신 존 잭슨(71·전 대학교수) 씨는 시음코너에서 ‘막걸리 예찬론’을 펼쳤다.
◇‘문화발전소’ 담양 해동주조장과 담빛 예술창고=해동 주조장은 1950년대 말부터 60여 년간 전통적 방식으로 막걸리를 생산하던 곳이었다. 유류판매업을 하던 고 조인훈씨가 ‘선궁소주’라는 브랜드명의 소주와 ‘해동 막걸리’, ‘해동 동동주’를 빚어 판매해왔다. 지난 2003년 조 대표 작고 후에는 장남이 이어 주조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외국 주류의 수입과 소비패턴의 변화에 따라 어려움을 겪으며 부득이 2010년 4월 문을 닫았다.
우선 1단계로 연말까지 막걸리와 정종(사케), 수제 맥주, 와인을 만들어 보는 체험공간과 주조장 아카이브가 마련된다. 올해 본격적인 사업에 앞서 ▲100인 드로잉전-술공장에서 예술에 취하다(7월) ▲예술로 통하다-술(術)통(通)파티(8월) ▲해동 문화예술난장(9월) ▲담양 해동한마당·해동문화축제(10월) 등 다양한 사전 프로그램을 마련해 호응을 얻었다.
2단계(2018년)로 주조장을 신(新)산업시설과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3단계(2019년)로 주민쉼터와 교육·문화·예술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앞서 문을 연 ‘담빛 예술창고’도 타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찾는 공간이다.
담양 관방제림 옆에 자리한 ‘담빛 예술창고’는 1960년대에 지어진 정부양곡 보관창고였다. 2004년 추곡수매제도가 없어지면서 양곡창고는 본래 기능을 잃고 10년간 방치돼 있었다.
군은 2014년에 이듬해 열리는 ‘담양 세계 대나무박람회’를 앞두고 이곳을 문화·전시공간으로 조성키로 결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에 선정돼 확보한 국비와 군비 등 총 12억1200만원을 투입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폐창고는 복합 전시공간(A동)과 문예 카페, 문화예술 교육공간(B동)으로 재탄생, ‘담빛 예술창고’라는 이름을 내걸고 지난 2015년 9월에 개관했다.
특히 카페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대나무로 제작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돼 있어 눈길을 끈다. 토·일요일, 공휴일에는 직접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오르가니스트 송영훈 씨는 손과 발로 건반을 누르며 비도르의 ‘토카타’(Toccata)를 비롯해 ‘사랑의 인사’, 성가 ‘옮은 길 따르라’ 등을 들려줬다.
장현우(53) 담빛예술창고 관장(예술감독)은 “당초 해외에 있는 예술촌을 모델로 광역시 못지않은 ‘문화발전소’로 시도했다”며 “개관 3년째인 현재 월 1만 명 이상, 연간 15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올 정도로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한 자생력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관광객들은 죽녹원과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 길 등 ‘자연’을 보기 위해 담양을 찾았다. 그러나 담양군이 ‘문화’로 과감하게 정책기조 방향을 전환함에 따라 앞으로는 ‘담빛 예술창고’와 ‘해동주조장’, 토요장터 ‘다미담’(多美潭) 등 ‘문화’를 보기 위해 담양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제강점기 역사 품은 서천 ‘옛 장항 미곡창고’=금강을 사이에 두고 군산과 마주보고 있는 장항(1937년 읍 승격)은 일제강점기에 충남 유일의 쌀 집산항이자 미곡 수탈 전초기지였다. 1930년 10월 개항한 옛 장항은 갈대만 무성한 갯벌이었다. 일제는 주민들을 강제동원해 제방을 쌓고 매립해 항만시설을 구축하고 격자형 도로망을 조성했다. 경기와 충남, 강원 일대의 쌀과 물자를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일제는 1931년에 천안과 장항을 잇는 경남철도(장항선)를 개통했다. 이어 1932년 봄에 장항 항만공사에 들어가 1937년 가을에 완성했다. 3000t급 기선이 접안할 수 있는 대형 부잔교 2기와 소형 부잔교 1기, 목잔교 4기가 설치됐다.(서천군지 ‘일제강점기와 서천’)
‘서천군 문화예술 창작공간’은 장항선으로 실어온 쌀을 일본행 배에 싣기 전 장항항에 보관하던 ‘옛 장항 미곡창고’를 토대로 리모델링했다. 바깥에서 바라보면 ‘ㅅ’자 맞배지붕을 한 건물 3채가 나란히 붙어있는 모양새다.
한동안 방치됐던 이곳이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2012년 7월에 열린 ‘공장미술제’였다. 회화와 조각, 설치, 영상 등 젊은 작가 130명이 참여해 미곡창고와 어망공장 창고를 실험적인 예술창작 무대로 활용했다. 이후 미곡창고를 기반으로 한 도시재생 사업에 나선 서천군이 2013년 버려진 공간을 손본 후 2014년에 전시와 공연, 미술관련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범사업을 벌였다.
군은 리모델링을 하며 개·보수를 최소화했다. 일제 강점기 창고건축 원형이 고스란히 남은 미곡창고는 2015년에 등록문화재 591호로 지정됐다.
서천군은 같은 해에 미곡창고 공간을 활용한 위탁 공모를 실시해 ‘인형극단 또봄’(대표 이애숙)에 운영을 맡겼다. 2011년 창단된 ‘또봄’은 창단 작품인 ‘자전거’를 시작으로 ‘모시의 전설’(2012년), ‘새와 소년’(2013년), ‘창고 모탱이’(2014년), 한산모시 이야기 신비한 옷’(2015년), ‘학교 가는 길’(2016년) 등 창작 인형극을 210차례 이상 선보였다.
창작공간 실내에 들어서면 ‘1959.12.12’, ‘1980.12.19’와 같이 특정날짜가 써 있는 콘크리트 기둥들과 목재로 튼튼하게 짜인 트러스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또 인형극 무대와 객석, 갤러리, 카페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갤러리에서는 연중무휴로 전시가 마련된다. 공연장은 처음에 인형극을 주로 하다가 청소년 밴드나 지역 전통 춤, 플라멩코 춤을 추는 팀을 유치해 소규모 공연무대를 열고 있다. 또한 건물내 카페에서는 커피를 마시는 것 외에도 가죽공예나 모시꽃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길가에 큰 건물만 덜렁 있는’ 셈이다. 아직까지는 주민의 무관심과 더불어 인근에 창작공간과 관련된 인프라 형성이 부족한 실정이다.
서천군 관계자는 “내년부터 ‘장항 6080프로젝트 사업’과 장항 역사문화 시공간 ‘장항 도선장 가는 길사업’ 등을 순차적으로 연계 추진한다. 앞으로 창작공간은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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