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 30년 한빛원전 진단한다] ⑦ 탈핵선언 독일의 고민 <상>
2017년 11월 01일(수) 00:00 가가
당시 최고기술도 무위 … 소금광산 핵폐기물 30년째 골머리
아세광산 지하에서 작업자들이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이 담긴 드럼을 운반하는 모습. 〈아세(ASSEⅡ) 제공〉
독일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을 선언했다.
‘원전처럼 위험한 에너지 대신 안전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선택한 것이다. 독일은 전체 원전 17기를 오는 2022년까지 완전히 폐쇄하기로 하고 현재 9기의 원전 문을 닫았다.
탈원전 국가로 향하는 독일에는 대체에너지 확보라는 ‘선택 과제’를 제외하고 반드시 해야하는 ‘의무 과제’가 남아있다. 어쩌면 짧게는 현세대, 멀게는 수백년이 흘러도 완벽하게 풀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큼지막한 숙제다. 그건 바로 그동안 원전을 가동하면서 나온 ‘핵 쓰레기’를 어떻게 안전하게 처리하는지에 관한 문제인데, 이는 원전을 도입한 모든 나라의 숙제이기도 하다.
핵쓰레기는 방사선 준위(쉽게 말하면 세기나 농도)에 따라 고준위핵폐기물(방사성폐기물·원자로에서 타고 남은 폐연료봉)과 중저준위핵폐기물로 나뉜다. 고준위의 경우 최소 10만년 이상 안전하게 가둬둬야 할 정도로 위험성이 큰 물질이다. 원전에서 사용된 폐부품, 폐필터, 작업자의 작업복, 장갑 등 방사능 함유량이 다소 적은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역시 인간 생활권에서 안전하게 격리돼야 한다.
◇“당시 최고 기술로는 안전하지 않더라”=지난 9월 6일 독일 북부 소도시 볼펜뷔텔의 작은 마을 렘링겐 마을.
주민 1000명 남짓의 작은 시골 마을 렘링겐은 유럽의 여느 시골처럼 평화롭고 고요하기만 했다. 하지만 마을 뒷산에서 지난 1988년 끔찍한 일이 일어난 이후 주민은 물론 독일 전역이 30년 동안 고민을 안고 산다. 돌처럼 단단한, 아니 돌보다 훨씬 단단했던 소금 광산 지하 내부가 조금씩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소금광산(아세광산) 내부에 깊숙이 묻어둔 것은 다름 아닌 원전에서 나온 핵폐기물(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무너지는 틈새로 물이 스며들어 핵폐기물을 담아둔 드럼통 인근의 소금 벽까지 점차 녹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던 최상의 기술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렇게 단단했던 소금 광산에서 문제가 생길 줄 아무도 몰랐어요.”
이날 아세광산에서 만난 아네트 팔리츠씨는 광주일보 취재진에게 거듭 “당시 최고수준의 기술로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세광산 홍보담당자인 그는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소로) 소금광산을 택한 이유는 이곳의 소금 자체가 굉장히 견고한데다 당시 방사능을 측정했는데, 소금벽에 막혀 전혀 투과되지 않았다는 점”라고 전했다. 물론 한적한 시골 마을의 폐광산이라는 점도 부지 결정에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팔리츠씨는 “어쩌면 무너져내린 소금에 눌려 폐기물을 담아둔 용기(드럼)가 깨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가감 없이 전했다. 다만, 광산 외부로 유출되거나 기준치를 넘는 방사선이 관측되지는 않고 있다는 설명을 빼놓지 않았다.
◇무너진 광산 아래 12만개 핵폐기물 드럼은 어떻게=아세광산은 지난 1916년부터 1964년까지 소금을 캐는 광산이었다.
이후 1967년부터 1978년까지 원전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을 저장하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으로 쓰였다. 광산 지하 750m 부근에 가로·세로·높이 각각 60·40·15m 규모의 공간 130곳이 만들어졌다. 모두 견고한 소금벽에 사방이 둘러싸인 빈틈없는 공간이었다. 이곳에는 원전에서 나온 핵폐기물이 드럼 12만5787개에 저장돼 있다.
아세광산 운영사인 아세측에 따르면, 정부는 아세광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데 매년 1억2000만 유로(1560억원가량)를 쓰고 있다. 앞으로 지하에 담긴 드럼을 옮기는 데 쏟아부어야 할 예산도 최소 40억유로(5조2000억원가량)는 들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최신 기술로 지금은 물론 장래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아세광산에 저장된 폐기물 드럼을 모두 꺼내기로 결정했으나, 옮기는 과정에서 광산이 통째로 무너지지는 않을지, 대체 부지 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곳은 정말 안전할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그나마 독일은 몰스레벤처분장과 콘라드처분장 등 2곳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에서 현재까지 이렇다할 문제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 기술…투명한 정보공개가 최선 =아세광산 운영사와 아세광산을 비롯해 독일에서 운영 중인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모두 감독하는 연방방사선방호연맹(BGH) 측은 무엇보다 시설에 관한 정보 공개에 필사적이었다. 처분장 인근에는 최신식 홍보관을 운영하면서 지역 주민 등 누구에게나 처분장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감 없이 공개하는 모습이었다. 처분장마다 운영하는 홈페이지는 물론 홍보관에 비치된 팸플릿에도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격리하는 데 실패한 자신들의 사례를 상세히 적고 있다.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운영 주체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많은 전문가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말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문제가 없다’는 식의 확신하는 표현은 찾기 힘들었다.
우리 같으면 반대 시위를 벌이거나 광산 주변에 현수막을 걸어두는 등 수십 년째 운영사와 주민, 정부와 주민 간 불신의 골이 깊어졌을 법 하지만 렘링겐 마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찾아볼 수가 없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12만여개가 녹아내리는 소금광산 지하에 묻혀있는데도 말이다.
아네트 팔리츠씨는 “광산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와 1990년대 후반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지역주민과 환경운동가들의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다”고 소개한 뒤 주민들과의 신뢰가 쌓인 배경을 전했다.
그는 “불편과 불안을 겪는 주민들의 교육, 복지 향상을 위해 지방정부를 통해 매년 일정부분 자금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민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연방방사선방호연맹 홍보담당 마뉴엘 빌만스씨 역시 “(핵폐기물 등 관련시설을 짓거나 사고가 일어날 경우)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위험성을 알려야한다. 그리고 현재 최고수준의 기술이 결코 다가올 미래의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볼펜뷔텔(독일)=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원전처럼 위험한 에너지 대신 안전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선택한 것이다. 독일은 전체 원전 17기를 오는 2022년까지 완전히 폐쇄하기로 하고 현재 9기의 원전 문을 닫았다.
탈원전 국가로 향하는 독일에는 대체에너지 확보라는 ‘선택 과제’를 제외하고 반드시 해야하는 ‘의무 과제’가 남아있다. 어쩌면 짧게는 현세대, 멀게는 수백년이 흘러도 완벽하게 풀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큼지막한 숙제다. 그건 바로 그동안 원전을 가동하면서 나온 ‘핵 쓰레기’를 어떻게 안전하게 처리하는지에 관한 문제인데, 이는 원전을 도입한 모든 나라의 숙제이기도 하다.
주민 1000명 남짓의 작은 시골 마을 렘링겐은 유럽의 여느 시골처럼 평화롭고 고요하기만 했다. 하지만 마을 뒷산에서 지난 1988년 끔찍한 일이 일어난 이후 주민은 물론 독일 전역이 30년 동안 고민을 안고 산다. 돌처럼 단단한, 아니 돌보다 훨씬 단단했던 소금 광산 지하 내부가 조금씩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소금광산(아세광산) 내부에 깊숙이 묻어둔 것은 다름 아닌 원전에서 나온 핵폐기물(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무너지는 틈새로 물이 스며들어 핵폐기물을 담아둔 드럼통 인근의 소금 벽까지 점차 녹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날 아세광산에서 만난 아네트 팔리츠씨는 광주일보 취재진에게 거듭 “당시 최고수준의 기술로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세광산 홍보담당자인 그는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소로) 소금광산을 택한 이유는 이곳의 소금 자체가 굉장히 견고한데다 당시 방사능을 측정했는데, 소금벽에 막혀 전혀 투과되지 않았다는 점”라고 전했다. 물론 한적한 시골 마을의 폐광산이라는 점도 부지 결정에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팔리츠씨는 “어쩌면 무너져내린 소금에 눌려 폐기물을 담아둔 용기(드럼)가 깨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가감 없이 전했다. 다만, 광산 외부로 유출되거나 기준치를 넘는 방사선이 관측되지는 않고 있다는 설명을 빼놓지 않았다.
◇무너진 광산 아래 12만개 핵폐기물 드럼은 어떻게=아세광산은 지난 1916년부터 1964년까지 소금을 캐는 광산이었다.
이후 1967년부터 1978년까지 원전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을 저장하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으로 쓰였다. 광산 지하 750m 부근에 가로·세로·높이 각각 60·40·15m 규모의 공간 130곳이 만들어졌다. 모두 견고한 소금벽에 사방이 둘러싸인 빈틈없는 공간이었다. 이곳에는 원전에서 나온 핵폐기물이 드럼 12만5787개에 저장돼 있다.
아세광산 운영사인 아세측에 따르면, 정부는 아세광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데 매년 1억2000만 유로(1560억원가량)를 쓰고 있다. 앞으로 지하에 담긴 드럼을 옮기는 데 쏟아부어야 할 예산도 최소 40억유로(5조2000억원가량)는 들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최신 기술로 지금은 물론 장래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아세광산에 저장된 폐기물 드럼을 모두 꺼내기로 결정했으나, 옮기는 과정에서 광산이 통째로 무너지지는 않을지, 대체 부지 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곳은 정말 안전할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그나마 독일은 몰스레벤처분장과 콘라드처분장 등 2곳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에서 현재까지 이렇다할 문제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 기술…투명한 정보공개가 최선 =아세광산 운영사와 아세광산을 비롯해 독일에서 운영 중인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모두 감독하는 연방방사선방호연맹(BGH) 측은 무엇보다 시설에 관한 정보 공개에 필사적이었다. 처분장 인근에는 최신식 홍보관을 운영하면서 지역 주민 등 누구에게나 처분장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감 없이 공개하는 모습이었다. 처분장마다 운영하는 홈페이지는 물론 홍보관에 비치된 팸플릿에도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격리하는 데 실패한 자신들의 사례를 상세히 적고 있다.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운영 주체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많은 전문가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말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문제가 없다’는 식의 확신하는 표현은 찾기 힘들었다.
우리 같으면 반대 시위를 벌이거나 광산 주변에 현수막을 걸어두는 등 수십 년째 운영사와 주민, 정부와 주민 간 불신의 골이 깊어졌을 법 하지만 렘링겐 마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찾아볼 수가 없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12만여개가 녹아내리는 소금광산 지하에 묻혀있는데도 말이다.
아네트 팔리츠씨는 “광산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와 1990년대 후반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지역주민과 환경운동가들의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다”고 소개한 뒤 주민들과의 신뢰가 쌓인 배경을 전했다.
그는 “불편과 불안을 겪는 주민들의 교육, 복지 향상을 위해 지방정부를 통해 매년 일정부분 자금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민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연방방사선방호연맹 홍보담당 마뉴엘 빌만스씨 역시 “(핵폐기물 등 관련시설을 짓거나 사고가 일어날 경우)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위험성을 알려야한다. 그리고 현재 최고수준의 기술이 결코 다가올 미래의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볼펜뷔텔(독일)=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