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과제’ 가운데 79번째 과제이다. 광주와 대전, 군산 등 많은 도시들의 경우 산업구조 변화와 도시발달에 따라 원도심 공동화(空洞化) 현상을 겪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대다수 도시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이들 국내외 지자체들은 방치되고, 쇠퇴한 구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한 묘안을 짜냈다. 공통적인 대안은 버려진 오래된 공공 건축물과 폐산업시설을 ‘도시재생’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재활용하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은행이 근대건축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기차역과 병원이 미술관으로, 도살장과 쌀 창고가 문화예술 센터로 탈바꿈했다. 국내를 비롯해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용도 폐기된 공공 건축물을 이용하는 등 ‘문화’라는 새로운 옷을 갈아입은 도시재생의 모범적 사례를 5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식민시대 건축물이 관광자원으로 탈바꿈=“…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하나가 올라앉았다.”

군산 출신 백릉 채만식(1902∼1950)이 1937년 발표한 장편소설 ‘탁류(濁流)’의 도입부이다. 이 소설의 무대이면서 황해와 금강이 만나는 길목에 자리한 ‘대처’는 바로 군산이다.

1899년 5월에 개항한 후 일제 강점기 동안 미곡 수탈의 창구 역할을 했던 군산은 요즘 ‘근대역사의 중심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바로 식민시대 아픈 역사적인 흔적을 부수거나 지워버리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해 독특한 지역 관광자원으로 만든 ‘역발상의 전환’ 덕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본정통이었던 현재 해망동 근대역사거리에 가면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군산 근대건축관)과 옛 일본 18 은행 군산지점(군산 근대미술관), 옛 군산세관(관세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다. 현재 군산 시내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근대 건축물은 170채 가량.

“외관으로는 4층 정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2층입니다.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직속 금융기관 역할을 하다가 광복된 이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30여년정도 은행 업무를 봤었죠. 그리고 그 이후에는 개인에게 넘어가서 잘 안 믿어지시겠지만 나이트클럽으로 사용됐습니다. 예식장으로 사용되기도 했었고요. 그 전면에는 노래방도 했었죠.”

이효숙 군산시 문화관광 해설사는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374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23년 건립된 건물은 현재 ‘근대 건축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내에 들어서면 군산에 남아있거나 또는 사라져버린 건물 10여 곳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인근 ‘옛 일본 18 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373호)은 한때 중고품 판매장으로 쓰이다 보수를 거쳐 ‘군산 근대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둔 은행으로, 숫자 18은 은행 설립인가 순서를 뜻한다. 1907년에 설립됐으며 무역에 따른 대부업을 주로 취급했다.

본관 건물에서는 기획전시가 잇따라 열린다. 또한 본관 뒤편 부속건물 1층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금고를 볼 수 있고, 안중근 의사의 여순 감옥을 재현해놓았다. 군산항 내에는 물 수위 변화에 따라 오르내리는 선착장인 ‘뜬다리’ 부잔교(浮棧橋) 3기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민·관 함께 호흡하는 사업 추진 기대=군산시가 원도심 공동화에 대해 고심한 때는 1998년께부터. 원도심에 자리 잡고 있던 시청과 법원, 검찰청 등이 외곽 신시가지인 조촌동으로 옮겨간 이후이다. 자연히 내항과 월명동 원도심은 공동화됐고, 일제강점기 근대건축물도 방치되다시피 했다.

군산시는 2008년부터 근대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에 본격적으로 발벗고 나섰다. 한해 전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한 지역문화 재생 공모사업에 군산시 ‘근대산업유산 벨트화 사업’이 뽑혀 사업비 100억원을 확보하면서 추진동력을 얻었다. 시는 ‘원도심이 갖고 있는 문화적 특징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심했다. 결론은 군산항 일대에 산재한 근대 건축물을 최대한 활용해 관광자원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물론 사업이전에 시행착오도 겪었다.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6년에 일제잔재인 옛 조선총독부를 철거한 것처럼 군산에서도 붉은 벽돌로 쌓은 군산부청(1928년 건립)이 헐렸다. 또한 식민시대에 일본인들이 세웠던 보국탑과 자우혜민비, 개항 35주년 기념탑 등 석조 기념물도 철거됐다.

근대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자원화는 군산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

군산을 찾는 관광객들의 숫자는 유료 운영되는 근대박물관 입장객 수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시는 개관한 2012년 찾아오는 탐방객들이 예상외로 많자 이듬해부터 유료화했다. 2013년에 22만명을 시작으로 2014년 48만명, 2015년 82만명, 2016년 102만명으로 급증했다. 시간여행을 테마로 한 축제도 매년 10월에 개최해 오고 있다.

반면 군산 원도심의 활성화는 지가(地價) 상승이라는 부정적 측면도 함께 뒤따랐다. 개발전 보다 수 배 껑충 뛴 땅값 오름세는 사업추진을 위해 필수적인 부지 매입에 부담감을 안겨주었다.

처음 사업추진시 “우리 것도 활용 못 하면서 일본식 건물에 투자하느냐”는 일부 시민들의 반발도 있었다. 2002년에 ‘등록문화재법’이 만들어지며 근대 문화유산을 관리한다는 개념이 도입돼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서 사업추진에 탄력이 붙었다. 이처럼 군산시가 지난 2006년부터 10년 이상 ‘앞만 보고’ 한결같이 관련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데는 3선(選) 지자체장의 의지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아직 사업추진에 한계도 있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사업 진행을 위해서는 민·관이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현재는 관(官)이 주도하고 있다.

김중규 군산시 근대역사박물관 운영계장은 “군산은 근대기 모습을 볼 수 있는 특화된 공간이자 빼앗긴 시대에 대해 교육할 수 있는 장소”라면서 “신흥동에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조선인촌(村)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