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원전 고장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영광주민들은 지속적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해체’를 촉구하는 시위를 열어왔다. 사안에 따라 이따금 영광주민들은 원안위가 있는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몰려가 ‘원안위 해체하라’는 상경 시위도 벌인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원안위의 원전 규제 실패가 도마에 오른다. 원자력 진흥 위주의 규제실패 책임을 물어 원안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반복된다. 원전 사업자(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안일한 원전 운영, 안전 비용 확대보다는 비용 절감은 공기업임에도 기업 특성상 그 비판이 규제기관인 원안위보다는 가볍지 않겠느냐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광주·전남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단체, 민간 원전 전문가들은 잇따르는 한빛원전 고장·사고부터 원전 안전에 대한 불신에 이르기까지 원안위의 책임이 적지않다고 지적한다. 원전에서의 설비 고장이나 결함, 사고 시마다 규제당국은 법에서 정한 요건대로 규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으나, 지역주민들은 원안위를 가리켜 ‘한수원의 거수기’, ‘한수원에 면죄부 주는 기관’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올해 원안위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은 “원안위의 결제 도장은 (위원회나 위원장이 아닌) 한수원 손에 쥐여져있다”고 주장하면서 한수원에 끌려다니는 원안위를 질타했다.

김 의원은 국감 자료에서 규제기관인 원안위가 한수원의 ‘검사 지적사항 조치요구 기간 연장’에 대해 100%받아들이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5년 이후 올 9월말 현재까지 3년 동안 한수원이 ‘각종 검사 지적사항 조치요구 시한을 연장해 달라’는 요청이 119건 있었는데, 원안위는 이중 단 한 건의 반려도 없이 100% 승인해 줬다는 것이다. 원전본부별로는 고리원전 51건, 한울원전 40건, 월성원전 10건, 한빛원전 18건에 달할 정도다.

한빛원전을 품고 사는 영광 주민들은 원전 사건사고 때마다 운영사인 한수원과 규제기관인 원안위를 지목한다. 원전 사고에 대한 불안, 실추되는 지역 이미지, 급감하는 영광산 농수산물, 급식용 쌀 등 농산물 공급 중단을 요청하는 전화 등 주민마다 다양한 걱정거리를 안고 산다.

규제권한과 적지않은 전문인력을 보유하고도 반복되는 원전 고장 사고를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원안위 해체’를 촉구하는 시위도 수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비판의 화살을 원안위가 맞아야 할까.

국회 입법조사처가 최근 발간한 ‘2017 국정감사 정책자료(2권)’와 민간에 있는 원전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원전 규제 실패’의 목소리가 팽배한 배경에는 원안위의 실책이 적지 않지만 입법적, 제도적 미비점 내지 개선점이 한 둘이 아니다. 이는 원안위 스스로 바꿔나가기엔 버거운 분야로, 정부와 의회 차원의 뒷받침을 요구한다.

제대로 된 원전 규제를 위해서는 우선 원안위 독립성 강화와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친환경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문재인 정부는 멀지 않은 시기에 원안위를 대통령 직속의 장관급 기구로 격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안위 위원 구성의 다양성과 대표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위원회 구성을 보면 그동안 원자력 진흥과 육성에 관련한 인사들(관계·학계·연구기관 출신) 이 주로 포진해왔는데, 원전 관련 부서 출신 위원들이 안전이나 규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원자력계로부터 연구기금 지원을 받는 학계 출신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원전 전문가, 환경단체 등에서는 “특정학교 출신 인사들이 원안위, 한수원을 장악하는데 제대로 된 규제가 이뤄지겠느냐”는 비판도 내놓고 있다.

원안위 위원의 근무 형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위원장과 사무처장을 제외한 다수 위원이 비상임위원으로 운영돼 회의가 열릴 때에만 심의를 하는 탓에 업무 연속성과 적극성이 떨어질수 밖에 없다는 구조라는 것이다.

전문위원의 독립성 내지 정치적 중립성을 위한 제도 확보도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위원들에게 기술적 자문을 하면서 원안위의 주요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만, 정작 그 중요성은 간과한 채 독립성 및 정지적 중립성을 확보하려는 제도는 미비한 탓이다. 위원 가운데 상임위원을 몇 명 둘 것인지(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 4조) 등 위원회 개선을 위한 상당 부분은 원안위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의회 또는 정부 차원의 협조가 필요한 사항이다.

원안위 개선 방안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자료집에서 ▲상임위원 숫자를 늘리고 ▲위원 간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확보하고 ▲전문위원의 전문성·독립성·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한 대책도 마련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원안위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대책으로, 국회 입법조사처는 원전 안전에 대해서 (원전 소재) 지방자치단체와 지속적으로 소통·협력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원전 안전성 검증부터 지자체 감시권한 및 주변지역 지원대책 등 시민불신과 불안을 덜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마련하는 것이 원안위의 독립성 강화, 주민 신뢰 확보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본 것이다.

민간의 한 원전 전문가는 “원안위 체질개선 등 원안위 외부에서 원안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뒷받침도 상당부분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원안위가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한과 전문인력을 이용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규제 정책을 펼칠 수는 없었는지를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전문가는 “국내 원전 상당수가 설계 수명의 절반을 넘고 노후화되는 지금부터가 원안위의 적극적이고도 합리적인 규제 정책이 중요하다”면서 “원안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원안위가 바로잡고 정부와 국회가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조속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