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다른 아이들은 산에 안 올라도 건강한데 꼭 우리는 산에 올라야만 건강해요?” 학교 뒷산을 오르는 학생이 소리친다. 처음에는 그렇게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즐겁게 장난치며 산에 오르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30대 초반 선생님보다 발걸음이 가볍다.

이 아이들이 ‘사랑반’ 교실로 들어선 첫날. 그렇지 않아도 학교가 싫은데 방과 후에도 공부를 한다고 잡아놓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랴. 국어 교사로서 선생님들께 한글을 해득하지 못한 학생들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스무 명 남짓이 왔는데 선생님을 감옥의 ‘간수’ 보듯하다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앉는다. ‘사랑반’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우울한 교실이었다.

80년대 초반, 중학교 1학년뿐 아니라 3학년 학생들도 한글을 잘 읽지 못하거나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한 반에 두세 명은 있었다. 당시에도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으로 중1에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사교육은커녕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한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꼭 공부하기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닙니다. 만화책도 있고 축구공도 있으니 같이 놀면서 서로 사랑을 나누자고 모였습니다.” 뜻있는 분이 챙겨주신 만화책도 보이고 공이나 배트도 보이면서 호감을 얻어 보려했다. 그러나 만화나 축구공에 관심을 보인 학생도 더러 있었으나 서로 사랑은커녕 끝날 시간만 기다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이들에게 읽는 것은 고역이다. 특히 다른 사람 앞에서 읽기를 시키면 머리가 하얘지며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감 없으니 아는 단어도 힘없이 읽어서 전체적으로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다행히 만화책은 그림 때문에 전체 내용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어서 받침이 어려운 글자나 어려운 단어도 짐작할 수가 있다. 또 어려운 것은 모둠(조)을 이룬 친구들 중 누군가 바르게 읽으면 같이 웃으며 읽는다. 서너 달 지나니 동화책을 찾는 아이들도 생기고 친구에게 읽어주는 것을 재미있다고 했다. ‘사랑의 반’은 읽기를 비롯하여 학습이나 놀이 등 모든 것을 서로 도우며 함께 즐기도록 마음을 썼다. 선생님의 사소한 기쁨도 아이들과 같이 나누었다.

이들은 담임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로 했다. 받아쓰기를 못하는 학생들이라 처음 쓰는 글은 읽기가 힘들다. 맞춤법도 틀리려니와 제대로 문장을 이룬 글을 찾기가 어렵다. 우선 글자 모양을 만들고 몇 번에 걸쳐 단어 잇기에서 문장으로, 문장 나열에서 문단으로 만들어 갔다.

아이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자신이 쓴 글을 담임 선생님께 보내게 된 것이다. 며칠 후 선생님들로부터 답장이 왔다. 아이들의 얼굴색이 바뀌며 목소리에 건강한 힘이 실리고 발걸음도 가볍다. 부모님께 편지 쓰기는 부모님이 안 계신 학생들에게 아픔을 주지 않기 위해 쓰지 않는 대신 친구에게 편지 쓰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는 선생님은 글 내용을 보지 않고 모둠 별로 학생들끼리 서로 고쳐 주기로 했다. 친구의 답장을 받은 학생들은 밝은 얼굴로 “편지를 보내 주어서 고맙다네요.” 쑥스러워하면서도 가져오는 모습이 어떤 보물을 얻었을 때보다 기쁘고 환했다.

‘사랑반’이 토론 끝에 웅변대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책도 못 읽던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주장하다니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도 격론 끝에 결정되었다. 감격스러운 일이었으나 상처받는 아이는 없을까 걱정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과감하게 결정했다.

자신의 주장이 다른 학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면서 그동안 말하지 못하던 얘들도 점점 말하기의 두려움을 떨쳐냈다. 주장을 과감하게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여 온몸을 움직이며 손뼉친다. 웅변을 잘하는 연사들의 흉내를 내는 아이도 있고 ‘내 마음을 알겠지’ 하는 눈빛으로 강렬하게 파고드는 아이도 있다. 수업시간에 다른 학생들 있는 데서도 발표를 한 친구들도 있다. 젊은 교사의 국어시간은 물론이고 잘 이해하는 선생님들이 협조하여 발표할 기회를 많이 주었는데 이 아이들은 학교의 스타가 되었다. 80년대 후반이라 일반 학생들도 발표를 잘하지 않던 시절에 이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발표하고 선생님과 많은 아이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