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빌딩 10층에서 36년 만에 발견된 총탄 자국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의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과학수사를 담당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발견된 탄흔의 발사 각도와 크기를 종합하여 헬기에 의한 사격으로 결론지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는 국가 기관이 공식적으로 헬기사격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에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1980년 5월 계엄군의 헬기사격은 전일빌딩에서의 탄흔 발견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가 있기 전까지는 광주시민들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치부되었다. 왜냐하면 전쟁상태도 아닌데 자국의 국민을 상대로 국군이 헬기 사격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일당은 헬기사격에 대한 주장을 5·18민주화운동의 대표적인 유언비어라면서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전두환은 최근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헬기사격을 처음 세상에 알린 조비오 신부와 아놀드 피터슨 목사를 “종교인의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일빌딩에서 헬기사격의 탄흔이 발견되면서 누가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인지 명약관화해졌다. 만약 전일빌딩의 탄흔이 규명되지 않았다면 전두환의 회고록을 계기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더욱 기승을 부렸을 것이다.

전일빌딩의 총탄 자국은 시간은 흘러도 진실은 규명될 수 있다는 희망의 증표가 되면서, 5· 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은 기억 투쟁뿐만 아니라 진실을 담고 있는 역사적 공간의 보전 또한 중요한 문제임을 깨닫게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80년 5월 당시의 실체적 진실을 간직한 역사적 공간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라지는 현실이다. 옛 전남도청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최후 항쟁 공간이자, 계엄군의 집단 발포 장소였던 옛 전남도청은 아시아문화전당으로 탈바꿈했다.

시민군의 주요 활동 공간이었던 도청 본관은 5·18전시공간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시민군이 상황실과 방송실로 이용했던 공간은 새롭게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서 흔적 자체가 사라졌다. 1980년 당시의 급박한 상황과 절박한 목소리들이 담겨 있던 공간을 대체하고 편의시설이 들어선 것이다.

새롭게 단장한 옛 전남도청은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37년 전 광주의 목소리를 단 한마디도 담지 못하고 있다. 사라진 목소리를 대신하기 위하여 수많은 전시 콘텐츠가 빼곡하게 들어섰다. 물론 그 과정에 또 많은 역사적 공간이 사라지거나 변용되었다. 괴이한 리모델링이 아닐 수 없다. 공교롭게도 옛 전남도청 본관의 리모델링 기간은 보수정권이 5·18민주화운동을 부당하게 왜곡하고 폄훼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5월의 역사가 지워지고 있는 옛 전남도청의 모습은 진상규명에 기반하지 못한 5·18민주화운동의 기념사업과 명예회복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겉은 화려해졌지만 역사가 사라진 옛 전남도청에서 전두환의 궤변은 힘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쇠락했지만 국가폭력의 역사를 간직한 전일빌딩에서 전두환의 주장은 단박에 거부된다. 진실의 목소리는 백 마디의 말보다 때로는 하나의 역사적 공간 자체일수도 있다는 것을 전일빌딩은 증명하고 있다. 지금 시급하게 옛 전남도청의 복원사업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