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황토집을 짓고 텃밭을 구했다. 그러자 생각하지 못했던 기쁨이 다가온다. 공원이나 길에서 만나는 꽃들은 아름답지만 그것이 주는 기쁨은 다른 일상을 만나면 곧 잊혀진다. 그런데 집을 지은 후 내가 직접 심고 가꾼 꽃은 그냥 꽃이 아니다. 고추 하나도 그냥 고추가 아니다. 새싹이 돋고 그 여린 잎으로 온갖 해충과 추위를 견디며 자라나는 모습, 거센 바람에 부러진 가지가 뒤틀린 모습이나마 다시 살아가는 모습이 큰 감동을 준다. 아내도 이 기쁨이 큰지 더 젊었을 때 시골로 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올해는 집 뒤편에 작은 꽃밭을 가꾸고 싶어 대강 삽으로 파고 둔덕을 만들었다. 풀도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라 퇴비를 듬뿍 주고 싶었지만 냄새가 날 것 같아 아내에게 물었더니 꽃밭에는 퇴비를 주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꽃은 무엇을 먹고 사느냐고 면박을 주고 퇴비를 많이 갖다 덮었다. 아내는 도시에만 살아서 꽃에 대하여 잘 모르는데 괜히 상의해서 번거롭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내는 설령 자기 말이 틀렸을지라도 그 정도 요구 하나 들어주지 못한다고 심하게 나무랐다. 그런 아내가 못마땅하여 말도 아닌 소리 말라며 무시해버렸다.

어느 날 아내의 친구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꽃밭에 기어이 퇴비를 많이 줘 아내가 매우 속상해 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꽃을 심는 것은 함께 아름다움을 느끼자는 건데 나는 꽃을 잘 키우는 데만 생각이 머물러 있었다. 아내는 꽃밭에 독이 있는 퇴비를 많이 주면 좋지 않다는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말한 것인데,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간섭을 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유나 물어보고 결정해도 되고, 또 퇴비를 했더라도 다시 거두어들일 수도 있는 일인데…

사실 이번뿐만이 아니다. 한때 아내는 내가 벽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젊은 시절 시댁 식구 이야기를 하면 무조건 변호만 하느라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아내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이해시키는 것이 내 의무라도 되는 듯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열정을 다해 설명했다. 못견딘 아내는 “나도 모르는 게 아니니 그냥 들어달라”고 했지만 나는 가만히 듣고 있지 않았다. 아내는 점점 같이 대화하기를 꺼리고 말수가 적어졌다. 아내의 지적을 받으며 교편을 잡는 동안 학생들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대하는 것과 달리 아이들 이야기는 중간에 간섭하지 않고 잘 들었다. 듣다 보면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지만, 점점 아이들이 스스로 잘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는 나를 무조건 다 이해해 주리라 단정하고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도리어 아내가 억지를 쓴다고 생각했다. 밖에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으면서 아내에게는 마음의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젊은 날 수많은 밤을 이야기로 날을 새우며 아무리 사소한 것도 재미있게 이야기하던 그녀가 왜 이렇게 나의 의견을 듣고 싶지 않게 되었는가 깊은 성찰을 하게 되었고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내가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이제 알겠어요. 진심으로 당신을 존중했다면 퇴비를 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 후에라도 원상회복 했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합니다. 이제 당신의 말을 어떤 선입견도 없이 듣겠습니다”

그런데 아내도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동안 당신의 마음을 너무 몰라서 미안하다”면서 앞으로 절대로 말을 함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깊은 감동에 정신을 수습하기 어렵다. 그 수많은 고통을 나의 이런 작은 변화에 내려놓고 오히려 자기가 잘못했다고 사과하다니. 사과를 한 후 친구들에게 말하니 너무 잘했다면서 칭찬하더라고 수줍어한다.

조용히 꽃밭을 다시 파고 퇴비를 걷어내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가 미소 짓는다. 꽃들이 서로 다정하게 속삭인다. 나도 아내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점점 아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시 이야기로 밤을 새우는 날이 찾아왔다. 꽃밭은 이제 아내의 손길로 더욱 곱게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