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장 2절)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었고 다 누렸던 솔로몬왕은 그가 기록한 성경 속 전도서를 통해 허무함의 절정을 고백했다. 천하를 다 가진들 진정한 안식을 구하지 못한다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탄식이었을 것이다. 세속의 영광이나 쾌락의 덧없음을 일찍이 깨달았던 솔로몬은 그래서 ‘지혜의 왕’이기도 했다.

서양미술에서 이 같은 ‘덧없음’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정물화로 표현한 그림을 ‘바니타스(Vanitas)’라고 한다. 라틴어로 허무, 허영, 덧없음을 뜻하는 바니타스는 17세기 네덜란드 레이덴을 중심으로 매우 인기 있는 장르였다. 레이덴은 인간의 죄 많음을 강조하고 윤리적 기준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칼뱅주의 신학의 중심지였던 까닭에 죽음의 불가피성과 세속의 업적이나 부귀영화를 경계했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네덜란드의 위대한 정물 화가이자 바니타스 정물화의 거장이었던 하르멘 스텐비크(1612∼1655)의 ‘인간 생활의 허영’(1645년경)은 바니타스의 전형이다. 이 정물화에는 해골을 중심으로 책과 일본도, 조개껍질, 끈이 달린 술병, 류트, 불 꺼진 램프, 시계, 비단 천 등이 뒤섞여있다. 인간 지식의 허영을 의미하는 책, 죽음을 상징하는 조개껍질, 무기의 힘으로도 죽음을 막을 수 없음을 상기시키는 일본도, 세속적인 쾌락을 의미하는 악기 류트, 술병과 더불어 시계와 불 꺼진 램프는 인생의 덧없음을 암시한다.

가장 눈길을 모으는 해골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주인공이다. 탐욕이나 집착의 순간에 마주한 ‘해골’은 ‘죽음의 불가피성’을 각성하게 해주는 모티브여서 한없이 느슨해진 우리를 문득 긴장시킨다.

〈광주비엔날레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