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볼라벤으로 큰 피해를 봤는데, 올해는 태풍이 오지 않아 좀 살만한가 했더니 이런 일(적조피해)이 벌어지네요. 죽은 전복만 보면 속이 상해서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5일 오후 3시 완도군 금일읍 도장리 일정항에서 동쪽 해상으로 1㎞ 떨어진 한병철(43)씨의 전복양식장. 7.9t급 전복양식어장 관리선이 크레인을 이용, 가로 2.4m·세로 2.4m 크기의 가두리 그물 한 칸을 끌어올렸다. 그물 한 칸엔 1∼3년생 전복 2000∼2500마리가 살고 있다.

그물 안엔 폐사한 10㎝ 크기의 씨알 굵은 전복 빈 껍데기만 수북했다. 이른바 ‘셀타’라 불리는 전복 집엔 전복 한두 마리만 붙어 있었다. 한씨는 지난 3년간 애써 키운 전복 한 마리라도 건져보려고 빈 껍데기 속을 손으로 뒤적거렸지만 살아 꿈틀거리는 전복은 5∼6마리에 불과했다.

그나마 상품가치가 있는 전복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올해 추석 출하를 앞둔 이날 현재 전복 가격은 1㎏ 10마리 기준 3만9000원. 이번에 전복양식장 160칸 중 90% 이상의 폐사 피해를 본 한씨는 눈 앞에 사라진 전복 껍데기를 보면서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임형식(56) 도장이장은 “이 맘 때 쯤이면 출하를 앞둔 어민들이 양식장에서 전복 선별작업을 하느라 한창 바빠야 하는데, 보다시피 100ha 달하는 양식장에 어민들 일하는 모습이 보이느냐”라고 물었다.

한씨의 양식장 주변엔 100ha의 양식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어민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텅 빈 전복 집만 양식장 위에 남아 있었다. 한씨는 “추석을 앞두고 재미 좀 보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라며 “돈을 떠나 지난 3년간 애써 키운 전복이 한순간에 이렇게 되니까 할 말이 없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완도군은 이날 기준 금일(348어가)·생일(34어가)·약산(20어가)·신지(4어가) 등 모두 406어가에서 4400만 마리·350억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이들 피해어민 중엔 전남도의 ‘청년이 돌아오는 전남’ 정책에 따라 귀어한 청년이 최소 50명 이상으로, 지난 2∼3년간 단 한 번도 출하를 못 한 어민도 일부 있다는 게 어민들의 설명이다. 전복은 최소 1년6개월 이상 자라야만 상품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어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번에 폐사한 전복이 적조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마치 고수온이 원인인 것처럼 소문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어가 중 재해보험(태풍·강풍·풍랑·적조 등)에 가입한 수는 381어가로, 고수온으로 인한 피해는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남해수산연구소는 최근 완도 12곳 전복양식 생산해역 중 금일을 중심으로 4곳에서만 피해가 일어난 점으로 미뤄 적조가 원인인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 고수온이 주원인이었다면 완도 전 해역에서 같은 피해가 일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어민들의 걱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경남 거제지역에서 해산물을 섭취한 3명이 콜레라에 걸린 것으로 확인되면서 완도 전복도 덩달아 피해를 입고 있다. 삼치 등 수산물 기피현상이 적조처럼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다.

군은 지난달 27일 완도전복·해수·식당 수족관수 등을 채취한 뒤 전남도보건환경연구원에 콜레라균 검출검사를 의뢰, ‘이상 없음’ 통보를 받았다. 이 같은 조치는 청정해역에서 키운 전복이 소비자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완도군 관계자는 “현재 어민들의 경우 적조 추정피해에 김영란법 시행, 콜레라 확산 등 직간접적으로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정부에서 해당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종행기자 golee@kwangju.co.kr

/완도=정은조기자 · 서부취재본부장